또다. 또 이런 끔찍한 기분. - 마인드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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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bula
2달 전
또다. 또 이런 끔찍한 기분. 저 발 끝에서부터 턱끝까지 눈물로 가득 차오르다 결국 눈물로 이루어진 바다에 질식하는 기분. 이런 기분을 느끼는게 정말 신물나고 징그럽게 싫은데 언제 여기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 아득하기만하다. 죽으면 끝나겠지. 지독한 자기혐오로 이루어진 내 내면도 그냥 죽으라고 속삭인다. 가끔 내가 천천히 미쳐가는 것 같다. 그게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차리리 아예 망가져버리자 싶기도 한다. 어디서부터지. 분명 이 지옥에 시작이 있었을텐데. 태어나자마자 외조부모 손에 길러졌다. 엄마 말로는 그 당시 육아휴직이란게 생긴지 얼마 안되어 쓰기가 눈치보였다 했다. 그래서 한 3살까지는 산골짜기 시골집에 살았다. 3살 때 내 첫 동생이 생겨 그때 부모님 집에가서 살았다. 정말 잠깐 부모 정을 받았으나 동생이 태어나니 확 줄었다. 매번 혼나기만 했던 기억이 흐릿하게 남는다. 동생이 아팠다. 그때 동생이 몇개월 정도밖에 안됐는데 서울 큰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았다. 무슨 병인진 모르나 머리에 종양이 생겼다고 들었다. 그 바람에 다시 부모님과 떨어지게 되었다. 그래도 정들었던 외조부모님과 같이 지냈다면 좋았을텐데 두분도 엄마와 동생의 뒷바라지를 하신다고 이번엔 친조부모님 댁에 맡겨졌다. 낯을 많이 가리던 나는 계속 울었던 기억이 난다. 다시 부모님을 만났을 땐 5살이 되던 해 겨울, 동생 장례식에서였다. 다른건 다 흐릿한데 차 안에서 엄마가 초췌한 얼굴로 동생 유골함에다가 인사하라는건 아직도 뚜렷이 생각난다. 솔직히 동생과 함께 있던 시간이 짧아 별 감흥이 없었다. 부모님과 같이 원래 집에 들어갔을 때 많이 낯설었지만 조금 설렜던것 같다. 이제 부모님과 같이 살 수 있으니까. 한동안은 부모님의 애정을 느꼈고 어색했지만 행복했다. 혼자 눈치를 조금 보긴 했지만. 그러다 애정이 좀 찰 만할 때인 8살에 또 동생이 태어났다. 부모님에게 그 애는 애틋한 존재였다. 떠난 동생이 생각나서 였을까. 당연히 애정이 줄었다. 목마른 사람에게 물 몇방울주면 더 갈증이 생기는 것처럼 애정에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물론 엄마가 동생에 신경을 쓰는 만큼 아빠가 나와 많이 놀아주긴 했다. 그러나 그 시간이 많지도 않고 아빠가 무뚝뚝한 편이라 계속 갈증을 느꼈다. 외로웠다. 그 외로움에 익숙해져가면서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왕따가 되었다. 주도자가 있었다. 매일 나를 돌려까고 지들끼리 나를 보며 소근거리다 뭐가 그렇게 재밌던건지 낄낄웃었고 누가 나와 놀고있으면 걔한테 눈치를 줘 내가 다시 혼자가 되게 했다. 한번은, 그림과 일기를 쓰던 내 비밀공책을 주도자 중 한명이 뺏어다가 내가 다시 못가져가게 화장실 칸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내 공책을 봤다. 빨리 돌려달라고 했지만 그 아이는 끝까지 다 보고 아무렇지않게 주고 지네 무리에 갔다. 수치스러웠다. 아마 자기들 험담을 적었다고 생각하고 뺐어다 본것 같다. 참다참다 엄마에게 말했을 때, 그때 엄마가 내뱉었던 "니가 뭘 잘못했겠지."라는 말이 내 인생의 첫 깊은 상처가 되었다. 처음으로 죽고싶단 생각이 들었고 엄마에 대한 기대를 조금 저버렸다. 한땐 나에 대한 관심까지도 없었다. 언제였지.. 언젠 되게 꼬질한 상태였었다. 며칠 씻지도 않고 대충 세수만 하고 학교에 갔던 때가 있었던것 같다. 심지어 옷도 작아져서 꽉 꼈었지만 한동안 부모님은 몰랐다. 그때 뭐랄까.. 진짜 세상에 동떨어진것 같았다. 집에있어도 외로웠다. 내 학창시절 내내 아빠는 무뚝뚝했고 엄마는 변덕스러웠다. 어떨 땐 다정하고 어떨 땐 예민해서 눈치를 많이 봤었다. 육아휴직에서 복직하면서 엄마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것 같다. 그 스트레스를 나한테 풀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거 아닌일에 나는 밀대 막대기로 머리를 맞고 뺨을 맞고 머리채를 잡혔다. 소리 지르는 것이야 흔하게 들었다. 중2때 나를 때리려던걸 내가 막고 인생에서 제일 크게 악을 내지른 후론 때린 적은 없었다. 주변 친구들은 엄마아빠랑 친구처럼 지냈었는데 그게 되게 부러웠다. 엄마는 대부분 피곤하고 예민해 했고 아빠는 무뚝뚝했기 때문이다. 내가 외로워서 울면서 엄마에게 쏟아내었을땐 엄마는 그저 웃으면서 넘어갔다. 나는 진짜 진심이였는데. 그때 완전히 엄마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 다시는 이런 속얘기 꺼내지 않겠다고. 가정에서의 애정결핍을 학교에 친구들에게 채울려하니 나중엔 교우관계에서도 삐걱되었다. 그래서 그냥 고2부터는 혼자 지냈다. 매번 내가 매달리는게 지쳐서 그냥 혼자가 더 편했다. 그치만 정말 정말 외로운건 어쩔 수 없었다. 세상에 달랑 나혼자 있는 것 같았다. 본격적으로 우울하고 죽고싶고 무기력했던건 고1 2학기부터였다. 입시 스트레스도 있었지만 나에 대한 자기혐오가 제일 컸다. 다른 애들은 다 잘하는게 있고 자기목표를 향해 스펙쌓는것도 착착 잘해나가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잘하는것도 없고 뭐 제대로 스펙쌓아놓은 것도 없고 그냥 이렇게 존재만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한 자기혐오가 점점 커져 사람 몸집만해졌다. 그리고 그게 나를 갈기갈기 죽여버리고 싶게 만들었다. 수능무렵엔 시험을 못치는 것 보단 못쳐서 나오는 엄마아빠의 한숨소리를 듣는 상황이 그 무엇보다도 싫어서 내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팔을 그었다. 깊진 않았다. 그래서 아무도 몰랐다. 다행이였다. 수능끝나고 전혀 홀가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자살충동과 우울감이 감당할 수 없게 커져만 갔다. 종국엔 내가 죽겠다고 생각한것도 아닌데도 차가 생생 달리는 도로에 나도 모르게 발을 내딛고 있고 나도 모르게 옥상 난간으로 몸을 기울고 있던거였다. 이때 무서워 바로 지역정신건강복지센터로 갔고 상담사분이 위험하다 판단해서 병원으로 직접 연결해 주셨다. 그렇게 검사도 받고 약도 처방받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 우울증의 원인이 대학입시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대학입시는 끝난지 한참 지났고 해결도 되었다. 근데 우울증은 낫지않고 지금은 다시 심해졌다. 그래서 깨달았다. 원인은 오래묵은 애정결핍과 자기혐오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감정을 숨기는 오래된 버릇때문이라는 걸. 그런데 이젠 모르겠다. 그 원인들은 너무너무 오래되어 썩어문드러져 해결할 수가 없을 정도가 되버렸다. 그냥 평생 이 ***은 병과 기분을 안고 살아야하나... 지친다. 다 지겨워졌다. 내가 왜 이따구인지 왜 망가졌는지 생각하는것도 귀찮다. 그냥 사라지고 싶다. 누가 날 죽여주든지 납치해줬음 좋겠어.
전문답변 추천 0개, 공감 4개, 댓글 4개
elimene
2달 전
저는 아마 글쓴이님에게 공감하지 못할거예요. 일부분만 이해할 수 있겠죠. 그래도 글쓴이님이 조금만 덜 힘들어하셨으면 좋겠어요. 그 모든게 글쓴이님 탓이 아닌데. 왜 글쓴이님이 죽고 싶어하는지. 왜 그 누구도 글쓴이님 편을 들어주지 않았는지. 조금 많이 늦은거 같지만. 저라도 글쓴이님 편을 들어주고 싶네요. 글쓴이님이 잘못하지 않았어요. 글쓴이님 잘못이 아니예요. 그저 운이 안좋았고, 그저 외로웠고, 그저 편이 없었을 뿐이예요. 그러니깐 너무 많이 아파하지 말아요. 너무 많이 갉아 먹지 말아요. 그냥 평범하게 살아도, 괜찮게 살아도, 좋게 살아도 아픈 세상인데. 글쓴이님이 조금이라도 덜 아팠으면 좋겠어요.
nabula (글쓴이)
2달 전
@elimene 제가 이런 말이 듣고 싶었었나봐요. 댓글보고 한참을 울었어요. 정말 오랜만에 소리내어 엉엉울었네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름도, 성별도,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지만 항상 행복하시길 기도할게요. 당신이 제 진정한 첫 위로가 되어주셨어요.
RONI
AI 댓글봇
Beta
2달 전
앞으로 만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 텐데요. 부모님 말고도 당신을 사랑해 줄 사람은 많습니다. 많이 아프죠. 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좋은 날이 기다리고 있길 바라요. 지켜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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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isionreverse
2달 전
40년 넘게 모친땜에 화병걸려 힘들게 살다가 정말 내가 미치지 않은게 이상할 정도로 극도의 스트레스 를 주던 그 모친을 지금 연락끊은지 한달도 안 되었는데 너무 편안하고 행복하네요 내 머릿속에 떠나보내니 이렇게 평화롭네요 글쓴님도 이런 날 오실거예요 ᆢ힘 냅시다 !! 꼬옥 마음으로 안아줄게요 꼬옥 꼬오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