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저. 한 히키코모리의 이야기입니다. 제법 길 듯 하네요.
시작은 뭐로 할까요.
부끄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이정도면 어떨까 싶네요.
대여섯살때를 떠올려본들 참 오래된 얘기입니다만, 그 시절 저는 참 책을 좋아하는 꼬마였죠.
유치원에 갔을때 선생님이 애들 모아놓고 놀아줄 때 혼자 몰래 구석에서 책읽다가 걸릴 정도였으니까요. 지금이야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그 시절엔 그냥 친구 사귀기보단 책읽는게 좋은 꼬마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친해질 애들은 친해졌고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전학가기 전까진.
흔히 말하는 범생이었군요. 그 시절에야 조금만 해도 성적 낼 수 있고. 조금만 관심있어도 학교에서는 뭐든 할 수 있으니까요.
그 시절 대인관계엔 이렇다할 흠결은 없었습니다.
사람 웃기는 것도 좋아하고, 다른 사람한테 말 거는걸 거리끼는 유형은 아니었으니까요. 그건 지금도 그렇습니다.
다만, 그 시절 한 가지 신경쓰이는 점이라면 역시 이거네요.
6학년 쯤. 엄해도 친절하신 여선생님이 담임이셨고. 저를 개인적으로 불러서 신경써주면서 속내를 잘 드러내질 않는다고 걱정하시던 분이었죠. 그러려니 하고 넘겼습니다만 역시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틀린것도 아니지 싶네요.
글쎄. 사람의 마음이란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그정도로 다른 사람 신경 써주신 분이라면. 진심으로 생각해서 하는 말이었나. 조금은 생각해보게 됩니다.
중학교 시절 , 주변 학교로 전학을 갔습니다.
인간관계가 예전에는 좋았으니까.
그리 먼 곳으로 전학을 간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런만큼 아는 친구도 제법 있으니까.
전학 간 다음에도 잘 지낼거라 생각하며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고 싶었지만.
그건 제 생각이었을 뿐입니다. 인생이란건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이란 말이 있는데, 이게 제법 들어맞을 듯 하네요. 다만 그때는 그걸 몰랐죠.
그 아는 친구란게 독이 될 거라고도 생각 못했네요. 스스로 인간관계에 너무 서둘렀던걸지도요.
그 시절 따돌림을 당했었고, 주동자는 그 아는 친구들이었습니다.
당시 담임이란 분은 그 문제에 그리 관심없던 분이었죠. 지금도 그 선생님만큼은 진심으로 싫어하고 있습니다.
그것 말고는, 집안 사정이 안 좋아진게 있으려나요. 병든 어머니라던가...언제나 욕지거리를 하면서 들어왔던 아버지라던가요. 그 전에는 범생이 취급도 받던 아이였습니다만, 그땐 그때고. 저는 점점 틀어박히기 시작했죠.
책은 좋아했으니 거기엔 빠져들었지만, 학교에 관해서는 멀어지게 되었네요.
분명 마음도 생각도 머리에서 일어나는걸텐데, 우울한 마음이 들땐 가슴이 아픈건 왜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굉장히 가슴아팠던 기억입니다.
틀어박힌건 결국 그렇게 아픈 만큼 다른 곳에 빠져있고 싶었던 셈일테고요.
누군가의 속내를 의심하기 시작했던것도. 그리 믿지 않기 시작한것도 그때가 시작이었을겁니다.
고등학교 시절을 말하자면. 광대일까요. 리쌍의 광대나, 플래터스의 더 그레이트 프리텐더. 딱 그런 유형의 인간이요.
망가졌던 인간관계를 보답받으려는 심리도 분명 있었을겁니다. 사람 웃기는것도 좋아했고요. 사람한테 말 거는걸 꺼리지도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속내를 드러내기도 누군가를 믿기도 힘들었으니까.
그 결과 내린 결론은 연기였습니다.
주변을 신나게 웃기는것도, 밝게 입꼬리 올리는 것도 할 수 있었지만, 진심으로 누군가를 믿고 속내를 털어놓는건 어려웠습니다. 공부에는 관심을 잃었고, 그냥 어떻게든 겉치레로 웃는게 나았던 모양입니다. 하면 된다면서 분명히 얘기해주시던 분도. 너라면 나중에 대학가서 잘 할 수 있을테니 해보라고 얘기해주신 분도 있었습니다만. 역시나 그런 말도. 애초에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야만 들리는 일이었겠지요.
그렇게 3년이 흘렀고, 졸업식이었습니다. 애시당초에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도 아니었으니 졸업하는게 문제는 없었죠. 직접 와서 제 졸업식을 축하해주셨던 선생님도 계셨습니다만. 그때는 그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봤던건 다만 형식적인 졸업식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마음이 열렸다. 마음이 닫혔다.
이런 표현을 비교적 최근까지는 믿지 않았습니다만. 저는 결국 마음을 닫은 인간이었던 모양입니다.
어딘가에 빠져 있는게 좋았고, 사람을 꺼리게 된 인간한테. 집은 꽤나 매력적인 공간이었단 점입니다.
히키코모리라.
그런건 저와는 상관없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아니. 그게 오히려 편견이더군요.
상관없는 일은 없었습니다.
처음은 사람을 안 만난 채로 있고, 다른건 별 기대도 안했으니 고른 셈입니다만. 결국 하루가 이틀이 되었고, 몇 주로 바뀌었고, 몇 달... 그렇게 3년이 되었습니다. 내심 문제가 있다곤 생각했지만, 그게 수면으로 떠올랐을땐. 시간은 제법 지났죠.
그제서야 나는 그런 사람이 되었구나. 어딘가에 틀어박혀서.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면서. 그런 종류의 인간이었음을 마주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납득할 수밖에요. 그렇지 않으면 바뀔 수 없으니까.
그리고. 그대로. 뭐라도 낫겠단 심정으로. 군대를 골랐습니다. 병영부조리나 폭력사건이 심심찮게 나오는건 사실입니다만. 그래도 틀어박혀 있는것보단 나았으니 골랐습니다.
훈련소 기간이 끝나고 몇 개월의 기간동안 공군으로 산 꼭대기에서 지냈죠.
사회생활이라곤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스스로 선택한게 군대라. 막상 써보니 희한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더 희한한것은 나쁘지 않았단 점입니다. 체질이라는게 아닙니다. 전 그런 사람이 못 됐죠.
다만 죽은듯이 집에 틀어박혀 있는 대신에 몰두할 일이 생겼단게 좋았던 모양이고. 여러 일이 있었음에도 사람을 상대하는게 좋았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기엔.
제 편견과는 달리 군대에서도 좋은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 생활이 나쁘지 않았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어찌저찌 전역을 했습니다. 좋을거란 생각은 안했는데. 생각보다 좋은 시간이어서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 후 몇 달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몇 몇 친구를 만나고, 책을 읽고, 비슷하게 저처럼 사람한테 상처받아 틀어박힌. 그런 종류의 사람 얘기를 들으면서요.
마음은 세상을 보는 눈이라고 흔히 말합니다만. 말 만으로는 역시 쉽게 믿기 어려웠습니다. 그렇다면 그 근거를 찾아봐야겠지요. 학창시절, 히키코모리 시절, 군복무 시절.
제 주변 환경은 대체로 차이가 없었습니다. 다만. 주변을 보는 눈이 조금씩이라도 바뀌었단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주변을 보는 눈이 바뀌었단 것을 마음이 조금이라도 바뀌었다고 보는건 어떨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기억이건 추억이건 전부. 결국 주관적인 것이고 그걸 보는건 마음이라서. 사람이 제각각 다른 삶을 사는 것이라면. 그게 정말 그러하다면. 조금은 마음속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와중에도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줬던 누군가가 있었거나, 제게도 그 마음을 바꿀 기회가 있었고. 앞으로도 그렇다면 어떨까.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 사람을 믿는건 힘듭니다. 홀로 틀어박혀있던 시간이란것은 지울 수 없고요. 전 보통의 사람이란 기준에서는 여러모로 돌고 돌아 온 것일겁니다.
아직. 제 상황이 좋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겠네요.
그래도 어떻게 마음 먹느냐에 따라서는... 글쎄요. 조금은 정말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게 되었습니다.
마음 바꿔서 대학에 가고, 제 갈 길을 가고. 자리잡는것. 그게 꼭 남의 얘기인 건 아닐지도요. 아직은 모르지만. 그래도 스스로 아니라고 하진 않을 셈입니다.
써놓고 보니 짧은 글은 아니네요. 제법 시간도 걸렸고요. 진심으로 봐주신 분이 있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렇게 글을 쓰니 한결 나아지는것은.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