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5년 전 이야기. 우리 나이 많은 강아지는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상담]마인드카페 네이버블로그 링크마인드카페 페이스북 링크마인드카페 유튜브 링크마인드카페 인스타그램 링크마인드카페 앱스토어마인드카페 플레이스토어마인드카페 라이트 앱스토어마인드카페 라이트 플레이스토어
알림
black-line
커피콩_레벨_아이콘gloom4
·3년 전
이제는 5년 전 이야기. 우리 나이 많은 강아지는 3살때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 산책하면 많이 산책한거였다. 그런 채로 16까지 살았다. 강형욱이 뜨기 시작할쯤 부터 우리 가족은 깨달았지만 그땐 이미 우리 강아지는 늙고 병든 상태였고 우리 가족은 여전히 산책의 의미를 크게 잘 알지 못하기도 했고 모두가 바빠서 산책을 많이 시켜주지 못한채로 영장류의 사랑 표현을 했다. 강아지와 나는 내가 20살때부터 떨어져 지내다가 23이 되어 다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서로의 행복을 채웠다. 그러다 25, 나는 일년간 거의 하루종일 집을 비워야 했다. 당시에는 모든 가족들이 일을 했고 강아지는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특히 애착이 강해진 나와 떨어져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전보다 더 큰 우울을 겪게 되었다. 밤 늦게 집에 돌아오면 강아지는 ***듯이 반겨주었고 다음 날 새벽같이 나가야하는 나는 얼른 자기에 바빠 강아지와 시간을 보내주지 못했다. 내가 그런 생활을 한지 5개월이 지났을 때 이미 늙어있는 강아지는 병에 걸리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다니면서 약을 먹였다. 9개월째에는 큰 수술도 했다. 그러다 11개월차에 접어든 11월. 정신을 놓아버린 강아지는 영혼이 없는 강아지처럼 여기저기 부딪히고 다녔다. 다치지 않도록 울타리를 치고 물과 밥을 넣어주었다. 이미 의식이 없어 물과 밥을 먹기는 커녕 밟고 다니기까지 하였다. 안쓰럽고 보기 괴로운 장면이었다. 그 날 밤 아버지는 아이가 누워 팔 다리를 들어올린 채 발작하는 듯한 모습을 보셨다고 했다. 2016년 11월 12일 토요일. 가족들은 회의를 하였고 결정을 내렸다. 깔끔한 모습으로 보내주기로 하고 깨끗이 씻었다. 언니는 씻는동안 소리내어 울었고 나는 소리죽여 울었다. 아이를 안고 아이가 좋아하던 곰인형과 옷 몇 벌을 챙겼다. 2차 의료기관으로 갔다. 결정을 말하는 상담실에서 아이는 갑자기 의식이 돌아온 듯 눈빛이 살아났다. 그래서 나는 당장에라도 그만두자고 외치고싶었지만 어머니는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자리인걸 알아 그런가보다며 가족들은 아이에게 덕분에 행복했다고 한 마디씩 건냈다. 아이를 재운 뒤 보내주는 과정을 설명듣고는 과정을 지켜보시겠냐는 말에는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마치 자는 모습으로 아이가 나왔다. 화장터로 가기 전 어머니의 가게에 아이와 함께 잠시 들렀다. 무엇을 챙기려던 길이었던 걸로 기억나지만 그것이 무엇인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겸사겸사 구경을 하라며 같이 내린 길이었다. 이미 아이는 그 자리에 없었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아직 함께 할 것이라 믿었다. 화장터에 도착하여 아이를 화장하고 유골함을 받았다. 유골함은 생분해성으로 이루어 진거라 원하는 곳에 묻어주면 되었다. 드넓은 초원으로 갔다. 살아있는 동안 못 한 산책을 하고 이것 저것 구경하며 행복하라고 결정지은 장소. 아이를 그렇게 완전히 보내주었다. 오늘 SNS를 보던 중 나이 많은 강아지 이야기에서 안락사 관련 얘기를 보았고 우리 강아지를 안락사로 보내주었던 것이 다시 기억났다. 잊지 못한채로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지만 이젠 조금 나아진 줄 알았는데. 차속에서 한바탕 울고 마음을 달랠 공간이 필요했다.
가족강아지우울죄책감
지금 앱으로 가입하면
첫 구매 20% 할인
선물상자 이미지
따옴표

당신이 적은 댓글 하나가
큰 힘이 될 수 있어요.
댓글을 한 번 남겨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