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셔츠에 남색 반 - 마인드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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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yLet
17일 전
흰 셔츠에 남색 반바지를 입은 사람의 등이 점점 멀어져 갔다 넓고 튼튼한 어깨와 구릿빛 피부를 뇌리에 새겼다 그는 이내 다른 이들의 뒷모습에 파묻혔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그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우두커니 서서 그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멍하니 지켜보았다 바보처럼 카운터 쪽으로 간 그는 잠시 헤매는 듯했다 이내 짐을 보내고 다시 두리번거렸다 출구를 찾아 방황하는 모양새였다 빙 돌아서 입구 반대쪽으로 나왔다 내 쪽으로 돌아와서는 방금 짐을 부쳤다고 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서로를 꼭 안았다 그의 어깨 근처에 물자국이 생겼다 나는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건물 안은 크고 깨끗했고 분주했다 전형적인 공항의 모습이었다 왼쪽에는 큰 전광판이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앞쪽으로 가자 체크인 카운터가 보였다 그이가 떠난다는 게 점점 실감이 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둘 다 알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안아주었다 우리 앞에 커다란 회전문이 있었다 거대한 칸은 짐을 들고 들어가기 용이해 보였다 그이가 앞장섰고 나는 뒷 칸으로 들어갔다 나 한 사람 들어가기에는 지나치게 큰 공간이었다 내게는 짐이 없었으니 당연했다 주변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답답하고 복잡하고 어려웠다 우리가 처음 서로를 대면한 곳은 점점 가까워졌다 터미널 4번이 보였다 델타 항공사가 사용하는 터미널이었다 야외 체크인 카운터가 보였다 미리 체크인을 했기에 지나쳐서 본관 앞에 내렸다 나는 그가 짐을 내리는 걸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아직 실감하지 못했지만, 곧 뼈저리게 느낄 터였다 택시 앱으로 택시를 불렀다 호텔에서 차로 10~15분이면 가는 거리였다 생각보다 택시는 빨리 도착했고 이미 호텔 정문 앞에 와 있었다 그가 짐 싣는 걸 나는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도와주고 싶었지만 짐이 내 몸뚱아리만했다 우리는 뒷자리에 타고 안전벨트를 고정시켰다 가는 내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오늘은 8월 19일 그이가 신청한 휴가가 끝나는 날이었다 나는 공항까지 배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와 동생이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면 배웅은 그가 우리에게 해줬을 터였다 그가 가고 나면 덩그러니 홀로 남아서는 옆에서 자던 사람의 온기를 더는 느낄 수 없게 되겠지 그가 떠나는 날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잠에 들기 전에 옆에 누운 이에게 물었다 네가 가고 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다시 만날 때까지 어떻게 버티냐고 사랑하는 사람의 온기를 맛본 대가는 가혹했다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울었다 그러다 지쳐서 잠이 들었다 ......천천히 되짚는다 하나씩 하나씩 시간을 되감듯이 그가 떠나고 며칠 동안 울었다 눈앞에서 사탕을 뺏긴 아이처럼 유치했다 티비를 보다가도 울었고 잠들기 전에도 울었다 며칠 동안 그렇게 울고 지쳐 잠들었다 8월 21일부터 속옷에 피가 묻어 나왔다 지난 생리 시작일 기준 15일만이었다 살면서 스트레스로 하혈을 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이 일로 나는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무슨 병이라도 생겼을까 싶었다 나는 그이가 집으로 돌아가는 날 깨달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뒷모습을 뇌리에 새기는 고통을 그리고 찢어질 듯한 심정과 차디찬 현실을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감정들이었다 모든 게 새로웠다 나는 파도에 휩쓸린 영유아였다 구해달라고 살려달라고 소리칠 수도 없었다 말하는 법을 아직 배우지 않았으니까 그와는 어쩌다 한 번씩만 만날 수 있다 이번 미국 여행을 첫 단추로 해서 가끔 만나겠지만 6개월은 기본, 오랫동안 서로를 만날 수 없다 긴 기다림 끝에 감격의 상봉을 하더라도 오직 2주 안팎의 시간만이 허락된다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뒷모습의 시간'이 시작된다 떠나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이 정해져야만 하는 냉혹하고 고요한 운명의 순환 아이보리색 셔츠에 검은색 바지를 입은 사람의 등이 점점 멀어져 갔다 유달리 작은 체구와 가는 손목을 뇌리에 새겼다 그녀는 이내 다른 이들의 뒷모습에 파묻혔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우두커니 서서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멍하니 지켜보았다 바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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