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10년 전 그러니까 올 5월 둘째주 부터 나의 자유는 시작 됐죠~ - 마인드카페
알림
심리케어센터
마인드카페 EAP
회사소개
사연글
자유
haneuljin55
6달 전
전~ 10년 전 그러니까 올 5월 둘째주 부터 나의 자유는 시작 됐죠~~ 그동안 일들은 머리속 지우개 있다면 싹 다 모조리 지우고 싶을정도로 지옥 이였죠 제 맘과 몸 상태가 말을 대신 해줬어요. 일단, 교수님 소개로 도와주라는 명을 받고, 소개를 받았죠. 소개 받았을땐 기절할 정도로 못생겨서 어찌 이런 사람?을 보통, 로맨스 사기? 할 정도면 잘생긴건 기본인데 말이죠~ 전 어떤 책임감~ 내지는 쓰레기 같은 그놈의 연민 으로 인한 나의 잘못된 판단이 가져다 주는 파장이 이렇게 크게 다가 올줄은 생각도 못한, 가족들 만류에도 뿌리치고 , 무작정 상경 했죠. 아이는 1남1녀 를 낳았고, 애들 아빠와는 결국 이혼해서 제건 빼고 애들 양육비로 2억을 받고 교수님 소개 해준 사기꾼 따라서 딸아이만 데리고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점잖고 얌전하며 다정했던 사람이 충북 이란곳 자신의 고향 근처로 가니, 완전 본색이 들어나더군요. 매일 술이 없음 못사는 알콜중독에 언어폭력 부터 물건들 던지는, 나중엔 저까지 저 딸아이까지 폭력 행하는 아주 극에 달한 분노조절장애에 나르시스트, 소시오패스, 섹스중독에 바람끼 까지 이루 말할수없는 짓꺼리를 서슴치 않게 했으며 , 그기엔 조금의 양심의 가책 또한 전혀 없었죠. 매일같이 전쟁 이 시작 되는 날들 이였고, 딸 아이의 상처는 이루 말할수가 없었습니다. 방학이라 잠시 부산에 계신 어머니께 맡겨놓고, 전 다시 올라오게 되었죠~ 그때부터 전, 제 자신 선택한 책임에 대해 저 자신에게 물었죠~ 어떤 대답도 찾아내질 못했어요. 그래서 수면제로 자살 시도를 2번씩 했어도, 위 세척 하곤 다시 살아난 제 자신이 원망 스러웠죠~ 거의 두달을 죽으로 때울 정도로 아파오는 통증에 힘들었습니다. 그리곤, 여태껏 자살 시도는 생각지도 않고 있죠. 왜냐구요? 인명은 하늘의 뜻이라 제맘되로 할것들이 아니였기 때문이죠. 그냥 순리되로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곤, 제가 아동미술을 2년간 지도하다 개인 사정으로 나오면서, 황기 호두 매장을 인수 받아서 개인 메인카페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하루, 쳇바퀴 도는 하루로 , 어떨땐 택배 주문이 밀리면, 자정 늦은 시간 까지 일에 매여만 했고, 알콜 없이는 못사는 옆지기는 그렇게 해서 새벽 3시까지 잠을 재우지 않는 계속 되는 나날에 제 몸과 마음은 피폐 해져 가기만 했습니다. 그다음날, 아침 일찍 매장을 오픈해야 되는 부담감이 절 숨을 못쉬게 끔 힘들게 하더군요 또, 그 많은 시간들을 뭘 하면서 보낼까? 최대의 고민 이였죠. 그렇게, 시작된 저의 피난처가 공부로 이어지고, 자격증및 공부 핑계로 외출을 시도하며 틈틈이 피아노와 음악들으며 워쉽을 연습 하면서, 극복 할려고 노력 했습니다. 외부로의 외출, 공부 시간은 내면의 나를 다시금 되돌아보는 시간들로 이여 졌고, 전 결심을 하게 되었죠~ 여기 까지 수고 했다고, 이제는 나 스스로 벗어나야 된다는 굳은 마음으로 행동에 옮기게 되었습니다. 매장을 운영함에 수입이 생김 모든게 저의 몫이 안되고 전 명의만 있었지, 옆지기의 노예 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 에 빠진자 건져주니 보따리 내놓아 라는 옛날 속담이 늘 생각 날 정도로 그는 저에게 악연 이였습니다. 지금, 자유로워 졌지만, 그로 인해 발생한 빚은 고스란이 제 것으로 되어있고, 아직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 만큼은 자유와 안정을 다시금 찾을수 있었고 지금은 늦게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취준생이 되었지만, 글코 저의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습니다. 앞으로 마음이 아파서 잠시 병원에 입원중인 딸과 함께 잘 보내고 싶습니다. 저의 자유를 응원 받고 싶습니다.
전문답변 추천 0개, 공감 2개,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