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나이를 먹고도 여전히 스트레스를 스스로 다스릴줄을 몰라서 감당못할 스트레스가 쌓이면 머리카락을 쥐어뜯거나 팔을 물어뜯는 둥, 내게 썩 도움되지 못할 행동들을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술자리에서 스트레스를 주제로 대화의 물꼬가 틔였을 때, 이런 것 때문에 고민이라는 내 말을 들은 한 친구가 내게 취미를 가져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항상 취미와 특기를 적는 칸에는 그 무엇도 쓸수가 없어 가장 많이 쓴다는 독서를 적고, 특기 칸에는 아무것도 쓰지 못한체 공란으로 제출해왔다. 그만큼 난 무언가에 재능이 있는 사람도, 무언가에 열정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음악에도 재능이 없었고, 그림에도 재능이 없었고, 그렇다고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었으며, 옷을 잘 입는다거나, 만들기를 잘 하는 것도 아니었다.
절대음감이나 상대음감도 없고, 음악 학원을 다녀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박자감각은 떨어진다. 노래방에 가면 항상 노래를 부르지 않고 다른이들이 부르는 것을 듣고만 오는 이유가 그것이다. 혼자 가서 부른다더라도 누군가는 내가 부르는 것을 들을 것 같고, 듣게되면 비웃음을 살것같기 때문이었다.
선의 굵기를 조절할줄 아는 것도 아니고, 색에 대한 예술적 감각 같은 것도 없다. 그럼 손맵씨가 좋은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목도리, 팔찌, 반지, 귀걸이 등등. 만들어 본 경험은 많았지만, 다들 한쪽 코가 비틀어졌다던지, 대칭이 맞지 않는다던지, 색의 조화가 미묘하다던지 하는 하자가 적나라게 드러났기 때문에 그 경험들은 모두 한번에 그쳤다.
다이어리를 꾸미는 취미를 갖고 있다던 친구를 따라 다이어리를 구매해봤지만 이것은 2주만에 '해야만 하는 것'이 되어 또 다른 스트레스를 낳을 뿐이었다. 볼펜도, 색연필도, 스티커도 활용해봤지만 친구의 예쁘고 감성적인 다이어리와는 달리 내 다이어리는 중구난방해보이고 오히려 볼품없었다. 수치스러웠다. 다이어리에 적힌 글씨도 삐뚤빼뚤 못생긴 글씨체였다. 나는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런거 하나 못하냐는 소리를 들을 거 같아, 다이어리는 침대 밑으로 숨겨버렸다.
글쓰는 취미를 가져보라는 말도 들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글 쓰는 재능도 없었다. 일기를 쓰려 펼치면 항상 쓸 내용이 없었고, 시나 작은 글을 창작해보려 하면 이제껏 봐왔던 책의 작가들처럼 멋드러지고 세련된 문장을 쓸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걸 다시 실감하며 닫아버리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내 취미는 이것이다'라고 했을때, 그 결과가 나 자신에게 창피를 안겨줄것만 같아 결국 그 어떤 취미도 갖지 못했다. (이러면서도 운동은 취미로 삼고싶지 않았다. 운동을 하면 할수록 땀으로 인한 불쾌감과 습하고 더운 느낌이 살갗을 다 긁어내버리고 싶을 정도로 불쾌했기 때문이다.)
취미로 갖을만한게 잘하는 것일 필요는 없다지만, 잘하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즐긴단 말인가. 그런데 우습게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침대 밑으로 들어가게 된 다이어리처럼 내 안 깊숙한 곳에 더이상 스트레스를 쳐박아놓고싶지 않다. 결국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손톱을 세워 온 몸을 다 긁어대거나, 머리카락을 쥐어뜯어내거나, 볼 안쪽을 씹어대는 것은 이제 너무 지긋지긋했다.
신은 공평하기에 반드시 모든이에게 하나 이상의 재능을 주었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나는 하자품이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