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남동생과 말다툼 중 남동생에게 맞아 몸에 멍이 들었습니다. 너무 화가 나 그날 이후 따로 살다가 개인사정으로 현재는 다시 가족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남동생과 최대한 마주치는 일을 줄이고 생활하던 중 또 한번의 다툼이 발생하였고 그 과정에서 제가 먼저 동생이 저를 때린것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엄마는 “너가 동생에게 맞는 장면을 직접 보지못했으니 그 일에 대해서는 나는 모른다, 그리고 동생한테 맞았으면 누나인 너가 먼저 대화로 풀고 넘어가면 되는거지, 그걸 지금까지 상처라고 하고 있는 너가 이해가 안된다. 나이를 서른 가까이 먹고 아직까지 편애 운운하는 너가 유치하고 그 나이 먹도록 감정조절도 못하는게 사람이냐. 너가 따로 살던 기간동안 우리 가족이 제일 잘 지냈던 것같다. 너가 문제니 집에서 나가줬으면 좋겠다” 며 저에게 화를 내셨습니다. 그날이후부터 두달 넘도록 엄마, 남동생은 저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있습니다. 당장 따로 살 집을 구하기가 어려워 아직까지 가족들과 생활을 하고 있는데 새벽마다 출근준비하는 아빠를 붙잡고 제 욕을 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알람삼아 잠에서 깨네요. “어디서 못배워 처먹어서 저러나, 악인은 상종을 하지 말아야한다.” 등등.. “당신은 확실히 딸보다 아들을 더 좋아한다”는 아빠의 말은 절대 인정하지 않으시는, 그러면서 “그럼 아들을 더 싫어해야하냐”고 반문하는 엄마에 대한 분노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있는게 느껴집니다. 더 나아가 이제는 가족 모두가 너무 싫어지네요. 그냥 거리를 두는게 맞는걸까요?
동생이 있는데 동생이 잔잔하게 아픈 적도 많고 어린지라 엄마는 동생을 좀 더 챙겼네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왕따 당한 적 있는데 엄마는 아빠에게 “00이가 ~~이유로 왕따 당한대” 라고 얘기했습니다. 그걸 옆에서 듣던 나는 엄마가 내 왕따를 인정하는 줄 알았습니다. 고등학생이 돼서 대화해보니 엄마가 아빠에게 담임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전달하는 거였는데 내가 그걸 오인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걸 초등학교의 저는 몰랐겠죠. 그 때부터 마음의 문을 닫았습니다. 엄마보단 친구들이 더 좋고, 동생 챙기느라 나에게는 애정 한 스푼도 주지 않는 엄마가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할 때는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러면서도 기어코 어버이날에 뭐해달라해달라 할 때마다 저게 뮤슨 태도인가 싶습니다. 엄마가 싫어 고등학교 때는 기숙사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근데 가니까 별 인간군상이 다 있더라고요. 입학한지 1년 후엔 집에 가고 싶었습니다. 엄마가 보고 싶었고, 가족이랑 잘 지내야지 싶었는데 집에 오니까 이미 3년간 쌓인 그들만의 데이터베이스가 너무 깊어서 겉도는 것 같습니다. 엄마랑 동생은 이미 오랫동안 같이 있었어서(엄마가 동생 챙기러 다닐 때는 할머니가 저 밥해줬었습니다) 성격이나 그런 게 맞아서 대화할 때도 2:1 구도입니다. 내가 말할 때마다 두 명이 절 까고 내가 반박하려고 하면 둘이 내가 말이 이상하다며 웃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누구나 탈출해야할 법한 가족 같지만 나는 우리 가족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기숙사 학교에 있을 때도 너무 힘들었어서 돌아올 집이 있었음 좋겠습니다. 결혼도 방법이겠지만 아직 20대 초라… 남 특히나 이해받기 힘든 다른 가족의 사람 다른 성별의 사람이 저를 완전히 받아줄지도 의문이고요. 친구에게도 상처받을 때도 울고 스스로 한심할 때도 우는 편이지만 엄마에게 구박받고 올 때면 그 어떤 때보다 가슴이 아리고 서럽게 웁니다. 가지고 싶은데 가질 수 없는 것이라 그런 걸까요? 나는 평생 따뜻한 가족을 못 가지는 걸까요? 어버이날,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효도 못 해보는 걸까요?
요즘들어, 뭔가 자꾸만 찡해지고 또 가끔 울컥해지네요.. 쉴 때나, 일할때나, 멍 때릴때나, 잠 잘때나, 걸어갈 때나,, 왜 이렇게 마음이 허전하기도하고 허망하기도 하고 또 점점 지쳐가기도 하고.. 계속 무너진 기분이에요.. 저한테 하나밖에 없는 우리오빠앞에선 절대 안좋은모습으로 보이고싶진 않는데.... 오늘 조만간 오빠 봐야되는데 제 표정관리가 안될까봐 걱정이 듭니다. 왜냐하면 저희한테는 새어머님이 계세요 지금 어머님이 우울증도 있으셔서 아직도 우리아빠를 그리워하면서도 슬퍼하고 계셔서 엄청 많이 힘들어하고 계십니다.. 그런 새어머님의 모습이 보면은 저도 안그래도 힘든데.. 저까지 힘든모습을 우리오빠한테 보이고싶지 않거든요... 아무도 저는 오빠조차도 그 누구도 털어내진 않지만.. 애써 버텨내고 있는중이였어요... 근데 오늘따라 너무 힘들더라고요...... 실은 저는 청각장애가 있어요. 아예 안들린건 아니지만, 지금 제가 30대초반인데 어른스럽지도 못하고 가끔 무식할때가 많고 판단력도 약간 약합니다.. 이해력도 좀 떨어지는편이기도 하고요.. 쉽게 말하면, 저는 조금?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지금 쓰고있는 제가 글솜씨가 많이 부족한점이 있어서 양해 부탁드릴게요. 어쨋든, 그런 동생인 저를 오빠가 다 책임지고 있어서 내 무거운 짐을 다 오빠가 넘기는게 싫었어요. 나는 오빠가 스스로 오빠만의 인생을 자유롭게 잘 보냈으면 하는 바램이였는데... 어릴때부터 가난하게 살아오면서 학교졸업하자마자, 군대전역하자마자, 곧바로 일만 열심히 하는 그런오빠가 너무 안쓰럽고 저 때문에 오빠의 어깨가 무거워보인 것 같아요. 오빠는 그래도 힘든티를 잘 안내는 것 같아요. 오빠도 묵묵히 버텨내는데... 그냥 제가 다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고 동생은 장애가 있고 어떻게 울오빠한테 불행한일만 있는걸까요....? 우리한테 왜 이런 시련이 겪어야되는건지.. 우리가 전생에 뭔 큰 죄를 지었길래... 이건 너무 불공평하진 않나요...? 저도 부족한 동생이지만, 오빠한테 도움을 주고싶어 어떻게든 잘하고 싶은 마음이였는데 자꾸만 무너져서 우울해지고 계속 눈물이 흘리고.. 이제 버텨내는게 점점 더 힘들어진 것 같아요. 지금 제가 이렇게 많이 힘들어한건 오빠는 몰라요. 그래서 애써 참고, 안그런척하고 지내요 결국 버티다..버티다 못해 갑자기 부모님이 너무 보고싶어 죽겠더라고요 왜 우리두고 가버렸는지.. 우린 다 컸어도 그래도 우리한테는 엄마아빠가 필요하다고.. 이건 아닌데.. 이건 진짜 너무 아니라고.... 끔직하게 이 현실이 너무 싫었어요. 진짜 이게 다 꿈이였으면 좋겠어요... 정말로... 너무 외롭고, 너무 무섭고, 너무 힘들어요.. 누가 나 좀 먼저 다가와서 따뜻하게 안아줬으면 하는데.... 그게 우리아빠뿐인데.... 아빠가 없으니깐,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저는 가끔 안고싶을때 제가 먼저 오빠한테 안아달라고 해요. 쉽게 안아달라고는 못하지만... 제가 너무 힘들어죽을때만 가끔 제가 먼저 오빠한테 안아달라고 해요... 아빠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아요 유일하게 제 안식처가 우리아빤데 이제 없으니깐... 제가 힘들땐, 아빠집으로 가면은 먼저 다가와서 저를 안아주면서 고생했다고 토닥토닥해주시고 그래서 그런지 아빠 덕분에 힘들었던 제 마음이 싸악 녹아내리더라고요 그래서 그때가 너무 그립더라고요... 또 멀리 떨어져있어도 통화로 아빠목소리만 들으면 나긋하게 듣기좋고 힐링도 되고.. 아 이게 다 아빠덕분에 내가 힘들었던걸 다 풀린 것 같아 기분이 몰랑몰랑(?) 했던 적이 많았던 것 같아요... 아빠는 제가 뭘 짜증내도,속상해도,슬퍼할때도, 기쁠때도 전부 다 받아주는 그런 울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요... 아빠는 딸바보라 저를 그렇게 아끼던 울아빠가 이 세상에 없다는게 너무 잔인해요... 아빠가 돌아가신지 이제 4개월 넘어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아직 슬픔이 다 풀리진 않았나봐요.... 아무도 우리아빠처럼 먼저 다가와서 안아주는 사람이 없다보니... 최근에 제가 너무 힘들었는지 얼마전에 우리아빠가 내꿈속에 나와줬어요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아빠가 먼저 다가와서 내얼굴와 맞대면서 토닥토닥해주셨어요. 그와중에 아빠의 수염이 따가웠네요.... ㅎㅎ 아빠의 수염이 따가웠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실제로 느낀것처럼 촉감까지. 지금도 그 느낌이 기억해요. 그후에 너무 그립고 너무 미치도록 보고싶어죽겠더라고요.. 또 한번만 더 안아줬으면 이번엔 꽈악 안아줬으면.... 이제 조금 더 있다가 오빠한테 가야되는데.. 그래도 오빠한테는 제가 안좋은모습으로 보이고 싶진 않아요....! 우리가족에 대한 슬픔이 절대 보이고 싶진 않거든요.. 어.. 어떻게 마무리해야할지 모르겠네요 ㅎㅎ 여기까지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대놓고 언니들만 편애했어도 늘 마음에 들기 위해 말도 잘 듣고 집도 열심히 치웠는데 학창시절에도 좋았던 기억보단 늘 혼난 기억 밖에 없고 성인이 되고나서 엄마가 크게 아프셔서 다니던 일도 그만두고 병수발도 제가 다 들었는데도 제가 하는 말은 듣지도 않고 언니들이 하는 말만 듣네요. 이번에도 입원하셔서 일주일 내내 면회가고 챙겨준 건 저 하나인데 얼굴도 안 비친 언니들만 찾고. 서러운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할까요? 이 마음을 매번 그랬듯 넘겨야만 하는 건지 무슨 마음으로 엄마를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중학교 사춘기부터 대학졸업한 지금까지 입니다. 점점 심하면 심했지 끝도없이 평행선입니다. 한마디를 하면 열마디를 하니 대화의 주제도 산으로 갑니다. 어떤 말도 끝날 기미가 없어서 4~5시간을 싸우기도 일쑤입니다. 저는 그동안 호르몬 교란으로 근종, 부신, 갑상선 암까지 1~2년 간격으로 4차례 수술을 받았는데 최근들어 스트레스 호르몬이 3배이상 증가해 다른검사도 또 받았고 뇌동맥류도 있어 1년간격으로 추적 검사를 합니다. 딸아이만 보면 숨이 막힙니다. 초등학교 이후로 부모말에 대답도 않고 모든게 남탓 주변탓인 아이인데 밖에 나가면 커피숍 알바생에게도 허리굽혀 인사합니다. 매일 대답조차 안해서 혼내는게 수도 없고 말댓구 할땐 숨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이말저말 예의없이 하면서 지가 분리하다 싶으면 입을 닫아버립니다. 이게 말이 10년 넘게 인거지, 매일매일 이러니 제가 죽을 만큼 힘들어해서 보다못한 남편이 이젠 내보내려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하는거 보면 '설마 내쫒겠어? ' 딱 이런식이네요. 저야 주부라 집에서 딸과 매일 매순간 부딪힌다 쳐도 성향 다른 아빠에게 조차도 대답을 안합니다. 성격 좋은 아빠도 계속 이러니 점점 딸과 부딪히고 있어요. 어르고 달래고 타이르고 혼을 내도 똑같습니다. 자긴 문제 없으니 니들이 바꾸라는 식이에요. 알바조차도 할 생각 없어 용돈을 안주는데도 집에서 참 잘도 지냅니다. 최근 길냥이 새끼를 대려와 키우게 해달래서 직장 구하고 피해 안게게 노력하면 해준다 하니 서약서까지 쓰고 확답 받아 허락하니 오후 4시간 알바 구해서 잠깐 하지만 확답한 다른 것들은 또다시 재자리입니다. 결국 보다못해 아빠가 집구해 나가라고 한거고요. 남편이 독립 하란 말은 대학 들어가면서 부터 했었고 너무 말 안듣고 대들어 중간중간 큰소리 난 적도 여러번 있었어요. 남편은 가부장 적이지도 않고, 가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입니다. 정도 많아서 저도 친정부모보다 더 믿고 의지하는 지라 안팍으로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고, 그리 해 본적도 없이 생활력도 좋은 사람입니다. 아무리 요즘 아이들이 자기 중심적이라지만, 애 성향은 옆에서 끼고 가르쳐도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말은 많이 해도 전혀 대화가 안됩니다. 그게 저를 미치게 합니다. 얘길 하다가 제가 코피도 쏟고 눈이 보이질 않아 쓰러질 것 같은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정말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날것 같은데 이 와중에도 감을 못잡고 설마설마 하는건지 밉상짓만 합니다. 저도 결혼 전 금융기관에서 10년 가까이 일했고, 남편도 한 직장에서 계열사 한 번 옮긴게 다 입니다. 가정사로 어떤 고생도 아이가 느낄만한 걸 한게 없고 단지 외동이라 그게 늘 맘 걸렸구요. 오냐오냐 키우기 보다 버릇없다 소리 안듣게 하려고 무조건 해주지는 않았습니다. 그 또한 지금은 불만이고 뭘 해준게 있냐고 따지네요.. 친구를 만나러 나가는 적도 없고 나가도 유흥을 좋아하지 않으니 목적이 없으면 나가지도 않습니다. 정말 집안에서도 불러야 나오지 방콕입니다. 그렇다고 대인기피증이 있는것도 아니구요. 밖에 나가면 누구에게든 극존칭에 웃어가며 대답도 잘 합니다. 말 그대로 목적이 있는 일에만 나가는 거고, SNS로는 소통도 활발하고요. 요즘애들이라 그런지 콜 포비아는 친구끼리도 좀 있어서 대부분 소통을 문자로 하고요. 꼭 필요할땐 전화를 할 때도 있긴 합니다. 친척과도 남들 한테 하듯 예의바르고 극존칭에 자기 할말보다 듣는 편이구요. 당최 이해할수 없는건 부모한테만 개미소리로 세번 네번 불러야 겨우 대답해 주고 인상 쓰고 다니다가 뭐라하면 죽기살기로 덤비다가 제 아쉬우면 마지못해 약속하고 그것 조자도 며칠 못가 다시 재자리 라는 겁니다. 하나뿐인 자식한테 이런 것들로 미칠것 같은 부모가 있을까요? 정말 저 같은 엄마가 있을까요? 계속해서 몸이 아픕니다.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회복될 기미도 없습니다. 정말 죽고 싶다가도 아픈 노부모와 상냥하기만 한 남편한테 못할짓이라 버티고 삽니다. 새벽에 차몰고 언덕으로 오르기도 해보고 창틀에 매달려도 봤습니다. 그때마다 이러면 남편한테 못할 짓이구나 싶어 통곡을 합니다. 매일매일 눈뜨고 남편 출근후 애와 대면해야 하는 상황이 지옥같습니다. 본능은 엄마라는게 남아있는지 마음을 다잡아 보다가도 저도 사람인지라 쥐어 뜯어버리고 싶은 심정이 불끈불끈 솟습니다. 솔찍히 어설픈 심리상담은 듣고싶지 않습니다. 아이러니하겠지만 저도 심리상담 전공자거든요.. 제 머리 못깍는 것 맞습니다. 그래서 전문 심리상담도 여러번 받았는데 애가 같이 가려고 들지를 않아 저만 받다 보니 해결의 실마리도 없고요. 혼자라도 받고 온 뒤부터는 되려 제가 문제가 있으니 상담받으러 갔다면서 더 저를 문제삼아 공격합니다. 부디 저와 비슷한 경우인 분들이 답변좀 달아주세요.
고2남자 학생이예요 중학교 부터고1초까지 미래의 고민으로 너무 힘들어하고 무기력 자살 충동으로 정신의학과에서. 약물 치료를6개월 했었어요 아이는 별 도움을 못받았다고 했고 그럭저럭 지내다 5월부터 11월 초까지 괜찮았어요 성적도 많이 오르고 근데 11월24일. 본인이 이상하다고 저번하고 비슷하게 이상하고 학교에서 있는공간이 너무 불안하고 심장이 뛴다고 학교를 그만두고 싶데요~이러면 성적도 떨어지고 어차피 대햑가기 힘들다고 검정고시 보고 수능 정시를 하겠다네요ㅠㅠ 어떤것이 최선인지. 모르겠어요 좀더 노력해보자고 해야할지~ 너무 힘들어하는 아이가. 너무 안쓰럽네요 본인은 너무 심각해해서. 무시 할수도 없고 일단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고는 했어요. 어쩌면 좋을까요?
대학 1학년 막바지에 부모님께 얘기했다 전과하면 안돼겠냐고 학과가 나랑 안맞아서 전과하면 안돼냐고 근데 반대하셧다 우울증문제로 1년휴학 했을 때 자퇴하고 싶다고 대학가기 싫다고 할만큼 했다고 근데 반대하셨고 강제로 복학시켰다 졸업 막바지인 지금 부모님께 얘기했다 학과에서 취업가능한 회사 종류가 3개뿐이고 도저히 대학생활 못하겠다고 근데 졸업을 하랬다 내가 부모님께 졸업은 할테니 졸업하면 나한테 자유를 달라고 내 인생에 더는 간섭하려들지 말라고 나도 내 인생이 있다고 그랬더니 하는 말씀이 쓸떼없는 소리말라고 니 생각에 빠져 살지 말라고 너무 화가난다 23살이나 쳐먹고 부모님께 잡혀사는 내 자신이 싫고 내 의견을 무시하고 하찮은걸로 취급하고 내 인생을 방해하고 나한테 시키기만 하고 시키는것을 하는 과정속에서 내가 격는 고통과 고생 그리고 잘못과 실수.안좋은 결과 등에 대해 책임 안지는 부모님한테 화가 난다 이래놓고는 나 보고 세상물정 모르는놈.할 줄 아는게 없는 놈 제대로 하는게 없는 놈.신뢰가 안간다.무엇을 해도 불안하다 등 명령만 할 줄 알고 인생 간섭할 줄만 알고 책임이라는걸 모르고 머리속에 못넣는 부모가 증오스럽다 (전액 장학금 받을 정도로 열심히 했으면 최소한 졸업 후 인생 간섭안하겠다는건 약속하고 지켜야하는건 아닌가)
그 동안 털어내지 못했던 말을 여기에다가 다 그냥 씁니다. 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문법이나 말이 이상해도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지난 3월 말에 저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연세에 비해 엄청 정정하시고 항상 강인한 분이셨는데 2~3년 전 쯤에 어느 날 갑자기 암이 발견됐어요. 솔직히 저흰 모두 그냥 할아버지가 웬일로 몸살 기운 나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작지만 위험한 암이 자라고 있더라고요.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 그때 저의 생일날이어서 친구랑 동내에 있는 카페에서 놀고 있었는데 엄마가 갑자기 전화하시더니 카페 앞을 지나시는 거예요. 그때 점심이 지난지 얼마 안 지나서 회사에 계셔야 할 시간인데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의사가 미리 얘기해놨으니 할아버지 모시고 큰 병원으로 가시라고 하더라고요. 해외에 살다 보니 그냥 정밀검사를 위해 큰 병원으로 가란 말을 자주 듣기도 하고 저희에겐 십중팔구는 그냥 아무것도 아니다 보니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어요. 근데 얼마 후 결과에는 결국 담도암이라 하더라고요. 당연히 다들 놀랬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저는 할아버지의 암투병 과정의 시작과 끝까지 거의 함께 했어요. 영어에 능하고 대학생이라 시간적 여유가 그나마 있던 사람이 저 뿐이라서요. 80대 후반으로 들어서신 분이라 의사분들이 많이 망설이긴 했지만 할아버지가 원하셨고 수술을 안하면 한 달 정도 밖에 살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셔서 모두가 수술을 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기적적으로 12시간의 대수술을 어렵지만 무사히 잘 넘기셨습니다. 수술 도중에 보니 암이 전의(?)된 것을 발견했지만 그것까지 제거하는건 너무 위험해서 선택지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의사분의 말로는 아마도 남은 암덩어리가 그리 빨리 크진 않을거고 상태에 봐서 다른 치료를 하던지 말던지 지켜보자고 하시고, 어쨌든 할아버지가 잘 넘기셔서 너무 기뻤어요. 그 후로도 할아버지가 옛날 만큼 잘 드시진 않으셔도 꽤 많이 정상적으로 잘 회복하셨고 가끔씩 여기저기 놀러가면서 거의 다들 일상으로 돌아가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1년 후 쯤이었던가? 다시 암이 할아버지를 괴롭히기 시작하면서 할아버지가 급격히 쇠약해지기 시작하셨어요. 더 이상의 수술은 불가능했던 터라 방사선 요법을 시작해서 화학 요법으로 넘어갔어요. 이땐 엄마가 여러가지 이유로 엄청 고민하고 힘들어 허시는 것 같아서 제가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같이 모시고 병원을 가겠다고 했어요. 때문에 수업도 다 비대면 수업으로 돌렸구요 오래간만에 고등학생 때 처럼 거의 새벽에 일어나서 병원 갈 준비도 했어요. 뿐만이 아니라 의사 볼 날이 아닐 때는 셋이서 같이 시내로 나가기도 하고 같이 기차 여행도 다녔어요. 부모님이 맞벌이 하셨던터라 할아버지 할머니가 저를 거의 고등학교까지 키워주시고 돌봐주셨는데 대학 들어가고 그렇게 오랫동안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기쁘기도 하고 하부지 젊으셨던 시절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가 있어서 좋았어요. 하지만 동시에 암 때문에 계속 쇠약해지시고 힘들어 하시고 말라가는 하부지랑 같이 힘들어하시는 할머니를 곁에서 지켜보니까 너무 마음이 아프기도 했어요. 진짜 1년 전 만해도 하부지가 그렇게 연약하시지 않았는데... 그렇게 몸집에 작지 않으셨는데... 그렇게 조금 드시지 않으셨는데... 그렇게 보행기의 도움 없이도 엄청 잘 걸으셨는데... 아... 화학 요법도 사실은 한번 밖에 못했고 그냥 하부지가 너무너무 원해하셔서 전문의 쌤이 반의 반의 반인 소량의 도수로 해서 놓어주셨어요. 근데 하필이면 하부지가 또 새벽에 넘어지셔서 머리뼈에 금이나고 난리가 나서 모든게 미뤄졌어요. 치매처럼은 아니긴 했지만 한 몆주 쯤은 정신이 완전하시진 않기도 하셨지만 도 기적적으로 어느정도 괜찮으셨어요. 이때 쯤 아마 다들 조금씩 마음 속으로 각자 조금씩 이별의 상황을 준비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너무 많이 아파하시기 시작하셨지, 밥도 거의 못드시지, 걷는 것도 불안정하시지, 배에는 계속 복수가 차시지...결국에는 상황이 너무 안좋아지셔서 결국 호스피스랑 비슷한 병동에 들어가셨어요. 그때도 지금도 엄마는 주말이라도 집에서 보내시다가 입원하시는게 낮지 않았을까 후회한다고 하시지만 냉정하게 생각을 했을 땐 그때 바로 입원하시는 것이 하부지에게 좋은 선택이었어요. 하지만 하부지도 고집이 세셔서인지 아니면 고통을 참아야지 집에 보내 줄꺼라고 생각하셨는지 얘기만 하면 쎈 진통제를 줄 수 있다고 간호사 분들이 얘기를 하셨는대도 모두가 답답하게도 퇴근허고 나서 혹은 주말에 가족이 왔을 때에만 얘기를 한다고 허더라고요. 그러다가 일요일 내내 저와 엄마, 할머니가 병실에 같이 있다가 저녁 먹고 쉰다고 집에 딱 도착했는데, 간호사분이 전화오셔서 지금 가족분들 모두 당장 오라고 해서 바로 달려갔어요. 결국에는 그날 밤에 돌아가셨고 해외에 계셨던 삼촌을 제외하곤 임종을 지킬 수 있었어요. 물론 그날 유난히 아파하셨지만 돌아가실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했어요. 그러다가 장례식을 치뤘는데 생각보다 눈물이 많이 안나왔어요. 솔직히 엄청 슬프고 울고 싶었는데 돌아가시기 거의 직전에 하부지랑 눈이 마주쳤는데 그때 갑자기 그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정신 딱 잡고 있어야 돼. 할머니랑 엄마 분명히 엄청 울텐데 내가 두분 딱 밭혀줘야돼. 정신줄 꽉 잡아." 그거 때문인지 장례식에서도 그렇고 발인식에도 그렇고 눈물을 참게 되더라고요. 2달 후에 차 타면서 엄마랑 하부지에 대해 얘기하다가 갑저기 눈물이 크게 터진 것 말곤 그렇게 막 울진 않았던 것 같아요. 7개월이 넘은 지금, 어느정도 괜찮아진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더 보고 싶어졌어요. 그리고 무서워요. 하부지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흐릿해지기 시작한 것 같기도 하고 또 하부지랑 같이 다녔던 곳들이 점차 변해가기 시작해서요. 또 후회(?) 같은 생각들이 들어요. 그때 피곤해도 짜증 자주 부리지 말걸. 더 맛있는 맛집으로 모시고 갈걸. 더 예쁜 셔츠 사드릴걸. 더 많은 곳에 같이 놀러 갈걸. 이상한 것 같았던 예약 날짜 미리 체크해서 힘들게 헛걸음하지 않게 할걸. 내가 더 잘 통역을 했으면 더 도움이 되었을까? 하부지랑 더 허심탄회하게 얘기해서 말릴 걸 그랬나? 여러가지 생각이 요즘에 들더라고요. 뿐만이 아니라 할머니도 걱정이에요. 60년을 넘게 하부지랑 함께 하셨는데 갑자기 혼자 지내셔야 되고... 원래부터 까다로운 성격에 옛날 부터 아빠랑 또 성격이 안 맞아서 같이 모시면서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혼자 지내시게 하는 것도 그렇고... 답답해 하는 엄마는 계속 얘기하면서 이런저런 솔루션들을 얘기하지만 할머니는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됐다고 하니까 또 싸우지... 근데 또 며칠 동안 안 뵈면 우울해지시지...아....도대체 어떡해 해야 돼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또 더더욱 하부지가 요즘 더 보고싶어요. 특히나 또 할아버지랑 손녀 같은 영상들을 보거나 거리에서 하부지랑 비슷한 분들 보면 더 그리워지더라고요.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산타 할아버지를 봐도 더 보고싶구요. 저도 이제 슬슬 졸업 때문에 나름의 학업적 고민들이 있는데 거기에 요즘 할머니를 두른 가족의 자잘한 불화들, 할머니의 불안정한 모습이랑 우울증에 진짜 너무 걱정돼요. 뭔가 하부지가 계셨을 땐 다들 이렇진 않았던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돌아가시고 나니까 계속 이런저런 걱정들이 생겨나서 고민이에요. 일단은 할머니의 안정감을 다시 되찾게 해드리는게 중요하고 어느정도 걱정들을 없엘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떡해 하면 할머니를 우울증에서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친정식구들이 내 얘기가 아닌데 다른사람 얘기를 내 얘기인 듯 말하는데 참기 힘들어요 친정식구들과 많은 얘기를 못하고 자랐어요 내성적인데다 말수가 적어서 친정식구들은 저를 잘 모릅니다
자식 생일때 '(딸이라서)안 낳을걸 낳아줬으니, 너는 부모한테 돈을 줘야된다'라고 유세떠는 엄마 본적 있으신가요? 근데 나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나는 사람으로 안 태어나는 쪽을 택했을거야 그래서 생일도 기쁘지않아 실수로 잘못 태어난거니깐 엄마친구딸은 신혼여행 다녀오면서 명품백을 사서 자기 친정엄마한테 선물하더라며 가스라이팅 그래서 나도 똑같이 사서 드렸다!! 그런데 그집딸은 외동딸에 모아둔돈 부족해서 친정도움으로 집, 예물 준비(그래서 백 선물을 했나싶음 모녀간에 명품 주고받고하는 집임) 난 내 모은돈으로 결혼 전부해결. 집, 예물 등듯 난 엄마한테 명품은 커녕 그냥 핸드백 하나 받아본적 없는데 남들처럼 해주지도 않아서 비참할때 많았는데 본인 대접받을때는 다른집 기준으로 받고싶어하신다 참 어이없다 어른들도 좀 양심이란게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