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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Hope99
2달 전
이 모든 시련을 주신 분께 편지 드려요.
안녕하세요. 감사 인사 드리려고 편지를 써요. 유복하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돈의 가치에 대해 뼈저리게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었어요. 돈에 울고, 돈에 웃는 사람이 되었네요. 돈이 주는 공허함과 든든함 또한 깊게 이해해요. 남아선호사상이 짙은 친할머니가 저의 친할머니로 연이 닿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는 태어나자마자 이 세상에 큰 기대를 품지 않고 살게 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또, 엄마의 부재를 겪던 당시에는 3일에 한 번씩 저희 집에 찾아오셔서 여자인 네가 살림해야 한다며, 딸인 제가 엄마의 역할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시집살이라는 것을 간접경험해보기도 했네요. 엄마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어요. 편견의 시선이 가득한 부모님을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마음이 크게 병들어 저조차도 저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게 되었고, 타인에게 이해받으려는 생각이나 기대 자체가 크지 않은 사람이 되었어요. 제가 유별나기에 세상을 보는 시각도 남달라서, 보편적인 사람들과는 달리 편견이 적은 사람이 되기도 했고요. 10년 이상 선택적 함묵증을 겪으며 학창시절을 통째로 보내버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초등학생 때부터 매주 정신과에 다니며 재미있는 놀이치료도 경험하고, 저만의 세계가 강해져서 특별한 사람이 되었어요. 제가 딱 아팠던 만큼, 아니 그 이상의 현재까지도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과 언어폭력에 오래도록 시달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상처의 깊이에 대한 이해가 남달라요. 타인의 아픔에 뼈아프게 공감하여 아무리 그 대상이 소수라 할지라도 누구에게도 상처주고 싶지 않은 겁이 많은 사람이 되었어요. 평범하게 살지 못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적당히 외로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어요. 제가 주변에서 봤던, 조금도 외로움을 모르는 사람들은 어찌보면 사람이 덜 됐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누군가는 이런 독특한 제가 세련됐다며 흥미롭고 좋게 봐주시더라고요. '진심은 통한다'는 저의 신념이 산산조각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적절히 가식과 진심을 섞어서 사람을 대하게 되었고, 때로는 진심이 통하지 않을 때도 있다는 사실이 아프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게 되었어요. 등에 칼을 꽂은 사람들로 인해 분노조절장애로 1년을 보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었고, 가장 옳지 않은 방법으로 화를 터뜨린 덕분에 가장 올바르게 화를 내는 방법에 대해 깨달은 사람이 되었어요. 학력 콤플렉스가 생기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 대학에 큰 뜻이 없었기에 고졸로 끝났을 학력이라 큰 의미를 두지 않던 저에게 사회가 상처를 주며 편견을 흡수하도록 하더군요. 덕분에 학력과 지성이 항상 비례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더 공부하고 싶어졌어요. 학력은 낮아도 지적인 대화는 몇 시간동안 나누는 것이 가능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요. 지식을 과시하진 않되 적절한 상황이 온다면 보여주고 싶어졌어요. 중증 우울증을 겪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삶의 무게와 깊이는 꽤 깊어졌네요. 사람이 정말 슬픈 날에는 하늘이 큰 깨달음을 하나 이상씩은 꼭 주시더라고요. 저는 매일 슬프기에 하루하루 폭풍성장 중이예요. 아, 그리고 이성이 흐려져서 이전에 분명 무서워하던 것도 무섭지 않을 때가 있네요. 무기력증을 겪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천성이 부지런한 제가 스스로 게으르다는 재미있는 착각도 해봤어요. 공황장애를 겪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마음 편히 숨쉴 수 있다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으며, 심장이 따갑게 아프지 않을 때나 심장이 제멋대로 발작하지 않을 때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게 되었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다는 부분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어요. 이 구석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인기피증을 겪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혼자만의 시간을 남들보다 조금 덜 외롭게 보내는 방법을 익히는 중이예요. 불편하던 존재가 편해지는 과정을 겪을 때 나름의 희열도 있더라고요. 극복한 것 같아서요. 자살사고에 시달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매일 생과 사를 오가며 두 가지 측면에 대한 이해가 매일매일 깊어져가요. 그것은 인생에 대해 가장 많이 고뇌하는 사람의 형태가 아닐까... 싶어요. 전남친에게 먹버당하게 해주시고, 여러 남자들에게 여러 방식으로 데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남자 보는 시력이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첫 사회생활에서 6주동안 가정 어린이집에서 보육실습을 하며 하루종일 붙어있는 지도교사에게 갑질과 인신공격을 당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내가 나를 조금도 무시하지 않으면 아무리 누군가가 날 무시해도 타격감이 전혀 없다'라는 귀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어요. 무언가를 배우고자 할 때는 가급적이면 큰 곳에서 배워야 한다는 것도, 좋은 어린이집이 무엇인지도, 만 0세부터 만 60세 이상의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같이 지내보니 어른들보다 아이들에게서 배울 점이 더 많다는 것도. 다 알게 되었어요. 주변에서 제 인연들을 만나지 못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별에 익숙해졌고, 항상 관계의 시작부터 끝을 생각하며 잘해주게 되었고, 이별에 대한 면역력이 생겼어요. 인연의 소중함을 절절히 느껴가며 다음에 만날 인연에게 더욱 잘해줄 마음 또한 아주...큰 사람이 되었어요. 엄마가 췌장암에 걸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삶과 죽음에 대해 매일 생각하며 살아가요. '곧 죽을 존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무력해지지만 죽어가는 존재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저는 '엄마의 죽음 이후에는 내가 얼마나 독해질까...' 그런 미친 생각도 가끔 해요. 재미없는 인생을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재미에 대한 기준이 조금 기이하고 사이키델릭해졌어요. 저만 재미있으면 된 거죠, 뭐. 단 한 번도 진정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애착의 중요성을 느끼며,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어떠한 인생을 살아가는지 생생하게 체험 중이예요. ...이렇게 감당하기 힘든 시련을 주신 데에는 분명 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신이 있다면 신은 저를 정말 사랑하셨을 것 같아요. 버티기만 하면, 견디기만 하면, 반드시 아팠던 만큼의 보상을 주실 테니까요. 이 다음에는 또 어떠한 시련을 주실지 기대하며... 그 시련을 묵묵히 이겨내고자 애쓸 것이며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지금은 전혀 감사하지 않아서 감사해요.
전문답변 추천 1개, 공감 15개, 댓글 5개
66Hope99 (글쓴이)
2달 전
한 번 더 곱씹고 싶어져서.
Yudeo
2달 전
홉님ㅠㅠ 위로해드리고 싶은데 이미 그 뜨거운 감정을 식혀내시고 담담히 말하는것 같아 제가 더 위로를 받게 되네요.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이렇게 생각하기까지 얼마나 아프셨어요ㅠㅠ 괜찮아요, 홉님. 괜찮아요.
66Hope99 (글쓴이)
2달 전
@Yudeo 감사해요... 정말 아팠고 아프지만 이 악물고 웃으며 살아가야 할 것 같아요.
kaily26
2달 전
호프님의 많은 과거의 고뇌가 느껴졌던 글이라 제가 어떻게 댓을 쓸까 많이 망설였네요. 우리모두는 서로에게 타인의 삶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아픔의 모습을 공유할 때 그사람의 삶이 더 명확히 보이더라구요. 호프님의 글을 보는 동안 호프님은 정말로 인생을 열심히 달려오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많이 애쓰셨어요. 항상 우리 곁에서 이야기 들어주시고 크기와 모습이 다른 아픔을 공감해주신 호프님은 정말 멋있는 사람이시라는 거 알아주셨음 해요 😇😊
66Hope99 (글쓴이)
2달 전
@kaily26 감사해요 케일리님. 알아주셔서 감사하고 위로해주셔서, 격려해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