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을 쑥대밭을 만들었어요 제가
제가 지금 언니와 의절한지 2년이 지나가는데요.
제가 10대 후반일 당시, 언니가 학교와 회사일로 우울증이 깊었어요.
정신이 불안정해서 저한테 해코지도 자주하고, 죽고싶다고 자주 하소연했어요. 한 번은 저와 다투고 나서 죽어버리겠다고 부엌에서 식칼을 꺼내들고 자살기도를 하려고 해서 칼 든 손을 붙잡고 몇 십분을 대치하기도 했어요.
언니는 정말 자주 히스테릭했고, 시비를 걸고, 그냥 모든 것에 부정적인 평가를 하려고 했어요.
제가 마냥 언니 편을 들어주고 다 참아왔던 건 아니지만,
언니 때문에 억울하고 머리 끝까지 분노에 차도 언니처럼 표출하지 않고 속으로 삼켜왔어요. 무슨 일만 있으면 죽고싶다고 하는 언니가, 그리고 나 때문에 죽을 것처럼 화내는 언니가 당장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서 죽어버릴까봐 무서워서요.
저는 가족한테조차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하는 사람으로 컸어요. 비밀이 많고, 쉽게 터놓지 않는 애로요. 누군가의 삶의 괴로움을 일방적으로 듣는 일이 얼마나 상대방의 영혼을 갉아먹는 일인지 뼈저리게 알고 있어서요. 제가 이렇게 시달릴 동안에 엄마는 늘 저한테 언니를 이해해줄 것을 호소했어요. 언니가 많이 힘들고, 괴롭고, 너는 언니보다 강하니까. 하면서 제가 언니보다 정신이 멀쩡하기 때문에 언니를 보살펴야 한다면서요.
10대 후반만 해도 저는 제가 그럴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근데 제가 25살이 되고, 언니가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함께 지내게 되었을 때.
제가 드디어 한계치에 도달했다는 걸 알게되었어요.
잘 지내려고 노력을 하다가도, 도저히 언니가 저를 조롱하고 무시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서 엄마한테 도움을 청했어요.
그동안 참아왔지만 이제 더는 힘들다. 엄마가 언니 좀 통제 좀 해달라고. 제가 정신이 나간 건 이때부터예요.
엄마는 네가 대체 뭘 참아왔냐는 식으로, 언니와의 일은 알아서 해결하란 식으로 말했어요. 저는 정말 깊은 배신감을 느꼈고, 언니에 대한 혐오감이 겉잡을 수 없이 커졌어요.
나는 더 이상 보호자가 없으니 내가 나를 보호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언니와의 관계를 끊어야겠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가족 관계를 전부 끊고 싶었지만, 상황도 그렇고 용기가 없어 그러지 못했어요. 그래도 언니와 대화 자체를 끊고나니까 마음이 너무 가볍고 편안했어요. 언니는 거만하고 모욕적인 사과문을 몇 번 보내더니 포기했고요. 한참을 한집에서 서로 투명인간처럼 지내다가 1년이 지나고. 나머지 1년은 제가 학업과 일 때문에 집을 나가있게 되고 올해 다시 집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언니는 제가 들어오는 날짜에 맞춰 기숙사로 다시 들어갔고요.
그렇게 마주치지 않고 각자 살고 있었는데
엄마가 언니와 내가 의절한 채 사는 게 너무 괴롭다고,
언니 생일 날 언니가 집에 온다는 소식을 저한테 말하지 않고, 언니를 집에 데려와서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지 않겠냐고 물어봤어요. 저는 그 상황 자체에 속았다는 배신감을 느꼈고, 괴로웠어요. 언니는 내심 화해하기를 바라는 눈치였고, 저는 아직도 언니 목소리 얼굴만 봐도 치가 떨렸어요.
제 상처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없는 엄마에 대한 신뢰 자체가 또 다시 무너졌구요.
그동안 입다물고 있었던 건 제 눈치를 보는 척을 한 거였지, 제가 유난 떤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더라고요.
엄마는 제가 가정의 화목에 대한 키를 쥐고 있으며, 제가 상처를 이겨내면 될 문제라고 했어요. 실타래를 왜 굳이 하나씩 풀려고하니. 어떻게 사람이 모든 상처를 다 풀고사니. 되레 저를 원망하더라고요.
엄마는 제가 다시 꾹 참고 참아서 언니를 마주하기를 바랐어요. 저는 그냥 이 상황 자체가 절망스럽고, 그럼에도 가족을 완전히 끊지 못하는 나도 혐오스럽고. 자살하고 싶어서 이틀 내내 자살방법에 대해서 검색하고. 날짜를 정하고. 집에서 목을 매달고 죽어있는 나를 상상하고. 그렇게 감정이 끝까지 치닫다가, 그냥 갑자기 저만 이렇게 속앓고 있는 게 억울했어요. 그리고 그냥 다같이 폭발해서, 잔해가 되어버리자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억울함 다 쏟아냈어요. 언니처럼, 엄마처럼, 아빠처럼 할 말 안 할 말 안 가리고. 내가 어떻게 언니하고 엄마한테 감정쓰레기통 취급받아왔는지 낱낱이, 그리고 자세하게 털어버렸어요. 엄마가 언니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를 어떤 방식으로 나한테 풀어왔는지. 언니 이야기를 하면서 나와 비교하고, 언니 달래느라 나를 모함하고, 언니 감정쓰레기를 받아줄 것을 강요하고. 등등등 아주 자세히 써서 모두에게 말 했어요. 제가 그렇게 폭발해서 다 폭로하고 나니까. 모두가 상처를 받았어요. 제목처럼 쑥대밭이 되었어요.
엄마는 저한테 인격적으로 살인을 당한 것 같다고, 모두 앞에서 발가벗겨버린 것 같다고. 저를 또 탓하시더라구요.
그러면서 내가 문제니까 나만 사라지면 되겠다고, 내가 없어져준다면서 자책하면서 또 저를 협박했어요.
저 때문에 죽어버릴 것처럼 말하면서 저를 가스라이팅 했어요. 저는 엄마와 언니가 참 유전적으로 많이 닮았구나 싶었어요. 둘다 자기 목숨을 무기로 저를 어떻게든 삶아보려고 노력하니까요. 미쳐버릴 것 같던 2년전 그 사건 때도 저는 차마 자살암시는 못 하겠던데 다들 참 저런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하는 구나. 나는 또 벌벌떨어줘야 맞는건가 싶고. 그냥 이제는 눈물조차 안 나더라고요. 엄마는 제가 무슨 내부고발을 한 것마냥 배신감에 어쩔 줄 모르고. 저는 어린 애한테 그런 말을 했던 것자체가 학대라고 또 쏘아붙였어요. 엄마랑 언니는 날 것의 감정을 나한테 쏟아내고 들어줄 것을 바라면서, 내 날 것의 감정은 듣기조차 어려워? 힘들어? 하면서 눈을 치켜뜨고 소리를 질렀네요. 이렇게 까지 하는 저도 정신적으로 많이 쇠약해져 있는 것 같고, 저는 엄마가 충격받아서 죽을까봐 또 벌벌 떨고 있네요. 제가 잘 했다기보다는 나만 죽을 수 없다는 최후의 발악이었는데. 한 편으로는 그랬어야만 했나 죄책감이 드네요. 제가 못 되어먹은 거 뼈저리게 잘 알게되었지만 한편으론 그냥 너무 슬프네요. 슬프고 슬퍼서 눈물도 안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