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가 없어요
남들이 다 나한테 의지하는 것 같아요. 내게 의지하고 깊은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들이 많아요. 나를 믿어주는 것 같고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너무 지쳐요. 내가 신경쓰고 돌봐줘야만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 같아요.
의지할만한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에요. 내가 얘기를 털어놓는다면 분명 잘 듣고 도와줄 친구들이 있어요. 하지만 다들 각자의 사정으로 힘든데 내가 이런 얘기를 했다가 더 힘들게 만들까봐 두려워요. 나를 약하게 보고 동정할까봐 두려워요. 그래서 남들 앞에선 힘들지 않은 척, 강한 사람인 척 해요.
가끔 다른 사람들이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해요. 대체 왜 자기 얘기를 나한테 털어놓는지 모르겠어요. 결국 자기 일인데 나한테 얘기하면 대체 뭐가 달라지는지. 공감 능력이 0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때가 있어요.
왜 남에게 힘든 얘기를 털어놔야하는지 스스로 이해를 못 할 때도 있어요. 해결을 할 수 있는 문제라면 내가 해결을 하면 되는 거고, 해결을 할 수 없는 문제라면 결국 고민하고 말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힘드니까 어디든 얘기를 하고 싶다는 것도 알아서 마음이 복잡해져요.
내가 남들에게 털어놓지 않는다는 걸 선택했으니 내가 감수해야하는데도 버겁게 느껴지기도 해요. 남에게 의지하느니 남이 나한테 의지하는게 낫다고 생각하면서도 억울해져요. 왜 나는 그 어떤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의지할 수가 없는지. 나는 힘든 걸 참고 살아가는데 저 사람들은 왜 내게 의지하는지 이따금 화가 나요. 서로에게 의지하는 게 맞는 방법이라는 걸 아는데도.
스트레스를 풀 방법을 찾기 어려워서 자해를 하기도 해요. 나쁜 방법이라는 걸 알지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날엔 저지르고 말아요. 그리고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후회해요. 곧 여름이라 반팔을 입을 때 흉이 보이면 어쩌지, 남한테 들키면 어쩌지. 다 큰 성인이 고작 자기 스트레스를 못 풀겠다고 자해나 하고 있다는게 창피해요. 그렇게 힘들다면 남에게 얘기를 하고 도움을 요청하면 될 것을, 왜 그걸 하지 못해 이러고 있는지. 그리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요. 그들도 힘들테니, 또 내가 창피하니 남에게 의지할 수 없다는 걸로.
남들에겐 세상 똑똑한 척, 고민을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해결 방법을 제시해줄 수 있어요. 나 자신도 내가 친구든 상담이든 마음을 열고 털어놓고 도움을 구하면 된다는 걸 알아요. 이미 상담을 10회 정도 받아봤고 당시엔 앞으로 잘 해내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몇 달이 지나자 또 이렇게 됐어요. 결국 난 남에게 마음을 결코 열지 못할 것 같아요. 마음을 열고 싶기는 한걸까 싶기도 해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이런 곳에 글이나 쓰며 자기위안 삼는 것밖에 없어요. 나는 해결방법도 알면서 실행하지 않고 이러고 있느니 힘든 몫도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냥 버거워요. 차라리 모든 인간관계를 끊어버리고 혼자 잠적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