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대인관계가 필요할까요?
살면서 정말 마음이 맞았다거나 오래 가고 싶었던 친구가 없어요. 방과후 일상얘기로 전화나 카톡을 한 적도 없고, 반이 나뉘거나 졸업 후에 연락을 이어온 친구도 없어요. 우스갯소리로 비즈니스라 부르는 그런 친구들만 사귀어 왔어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여기에 상실감이나 외로움을 느끼냐 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아요. 사실 누구한테 먼저 사적인 이유로 연락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연락 자체를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하고, 남한테 연락 보내는 걸 잘 안 해 버릇 하다보니 연락 자체가 어려워져서, 포기랄까요 그냥 제 인생에 없는 요소로 치고 살았어요. 고기도 먹어본 얘가 맛을 안다고, 연락하는 걸로 재미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별로 하고 싶지도 않고요. 이렇게 사는 게 맞겠지 하고 살아왔어요.
그런데 문득문득 회의감이 드네요. 이런 상담앱을 봐도 대부분의 고민거리가 인간관계에 대한 상담이고, 남들 말하는 거 들어봐도 다 그게 그거에요. 살면서 저 같은 사람을 못 본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까 나 같은 사람이 없나? 내가 이상한 건가? 이렇게 살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대인관계를 통해 얻는 즐거움도 있겠지만 저는 즐거움보다 불편함이나 우울함을 더 많이 얻는 편이에요. 쉽게 판단할 건 아니지만 어쩌면 우울증을 앓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중학교 때는 매 점심을 게워냈는데, 아마 그때가 피크였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는 어찌저찌 이 우울함에 잘 적응해서 살고 있네요. 버틸만한 것 같아요. 버틸만해서 굳이 해결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그냥 퇴직할 때까지 이렇게 비즈니스 관계만 맺고 살다가, 그 후에는 시골에서 혼자 조용히 살고 싶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인간관계가 독이 되는 성향이에요. 그런데 이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 게 맞나요? 이런 성향이 이상한 게 아니라면 왜 저랑 비슷한 사람이 주변에 보이지 않는 걸까요. 어쩔 땐 이렇게 회의감을 느끼는 것 자체가 제가 인간관계를 바란다는 증거인가 싶기도 하고, 어쩔 땐 이미 정답을 아는 문제를 가지고 정말 쓸데없이 고민한다 싶기도 해요.
이 고민을 좀 그만하고 싶어요. 내가 맞게 살고 있나 하는 것도 그만하고 싶어요. 어떻게든 살면 된 건데 왜 자꾸 주변에서 저한테 사람답게 살라고 하는 것 같을까요? 정작 아무도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는데, 단 한 번도 누구한테 이런 고민 털어놓은 적 없는데 자꾸 누군가가 절 꾸짖는 것 같아요. 이렇게 사는 게 잘못된 것 같고 불안해요. 인생 망쳐도 누구한테 피해 줄 일은 없을 텐데요. 이건 인간의 본능인 걸까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주변 대인관계가 부족한 것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불편함을 느끼는 걸까요? 머리로는 사람을 사귀면 안 된단 걸 알고 있는데, 자꾸만 정말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힘들어요. 툭하면 도돌이표처럼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결론을 내요. 시간 낭비도 심하고 멘탈도 많이 상해요.
제 생각에 저는 대인관계를 맺으면 안 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자꾸 이 신념에 의심을 품게 되니까 힘들어요. 대인관계를 맺지 않고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확인받고 싶어요. 사람은 꼭 대인관계를 맺어야만 잘 살아갈 수 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