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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mylife04
3달 전
넘어졌으나 다시 일어서려 합니다.
저는 올해 대학에 입학한 재학생입니다. 제가 힘들었던 것은 고1때부터 입니다. 고1때 친구들과의 트러블을 겪었습니다. 원인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복합적이어서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당시 저는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워 현실을 도피했습니다. 거의 1년 내내 멍을 때리거나 망상을 하였습니다. 망상을 하는 도중에는 정말 그 상상의 세계가 현실 세계인 마냥 몇시간씩 그 곳에 지내며 살았습니다. 이때 당시 저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기를 힘들어 했습니다. 부모님에게 고민에 대해 털어보았지만, 그 당시 저희 가족은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저를 이해해 주시지 못하셨고 오히려 나무라셨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 친구가 저의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여자애였는데요. 그때 당시 혼자라고 느끼던 저와 그 친구는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친해졌구요. 저는 그 친구가 유일한 친구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친구는 저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그 친구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허나 이 여자애는 저와 트러블이 있던 남자애의 전여자친구였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부분이 트러블의 원인 중 하나였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그 여자애의 마음과 남자애와의 의리 사이에서 고민했습니다.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결단을 내리지 못했고 시간을 흘렀습니다. 그 여자애와 연락을 하면서 만나기도 하였으면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 여자애는 제가 그녀를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은 마음이 안정되었고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여자애는 지쳐 저를 떠났습니다. 그 여자애는 저를 욕했지만 저는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동안 고마웠다고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으나 전하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사과는 오히려 강요고 또 다른 폭력의 일종이라 생각했습니다. 2학년이 되었습니다. 조금은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허나 중학교때 친구들과 만나면서 제가 1학년 성적을 정말 말아먹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때문에 저는 다음날 독서실로 향하게 됩니다. 저는 중학교 때 까지는 공부를 조금 하는 편이었습니다. 수학 관련해서는 특히 더 잘했습니다. 허나 1년이란 시간을 날려버린 대가는 컷습니다. 눈 앞에 있는 글자를 제대로 읽지도 못했습니다. 집중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오랜만이어서 그럴 것이라 생각했던 저는 수학문제집을 폈습니다. 그리고 충격을 받습니다. 손은 문제 푸는 방법을 기억하고 있었으나 뇌는 까먹었던 것입니다. 손은 문제 해결을 위해 나아가는데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뇌에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약 1년 전과의 괴리감이 저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허나 저는 낙관적으로 생각했습니다. 내일 다시 와서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에 집에 돌아갔고 다음날 다시 독서실로 향합니다. 사실 1년 가까이 시간을 허비했던 제가 공부를 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두번째 날에는 일단 자리에 앉고서 30분간 잠을 잤습니다. 실제로 피곤했던 것 같기도, 두려워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 수학 문제집을 펴고 앞에 개념을 공부하고 문제를 풀었습니다. 기본 문제로 30분이면 다 풀 수 있는 쉬운 난이도였습니다. 2시간이 걸렸습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영어는 알파벳부터 문법까지 다 까먹었습니다. friend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며 뜻도 기억을 못했던 순간이 아직도 뇌리에 깊게 남아있습니다. 그 날 독서실에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로 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실같지가 않았습니다. 중학교때 저는 주위에서 똑똑하다고 칭찬을 받아왔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통해 우월감을 느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자신감이 넘치는 아이였습니다. 그 자신감의 근원이 바로 우월감이었습니다. 저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노력해도 안되는 모습을 보고 멍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친구들이 시험을 보고 망쳤다고 우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바보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바보가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그 무엇도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사실 다시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난 똑똑하니까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았어' 라는 식으로 생각했습니다. 허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했고 독서실을 간 지 세번째 날 제대로 집중이 안됨을 느낀 순간, 저는 주위에 모든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전에도 조금 그러긴 했지만 견딜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찾아온 공포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견딜 수 있는 그런 공포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그 순간 제가 잡고 있던 샤프에 대한 공포가 더욱 강했습니다. 두통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공포에 떨었습니다. 공부를 하기 위해 샤프를 잡으면 손이 벌벌 떨리고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려웠습니다. 열등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허나 어떻게든 성적을 올려야했기 때문에 저는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내며 공부를 했습니다. 성적이 많이 올랐습니다. 조금은 만족스러웠습니다. 허나 저희 아버지께서는 조금도 만족하시지 못하셨고 저를 나무라셨습니다. 제 성적을 보며 한숨을 내쉬고 화를 내셨습니다.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 것이냐, 고 1때부터 열심히 했으면 충분히 서울대를 가고도 남았을 것 아니냐며 제가 날려버린 1년에 대해서도 꾸짖었습니다. 사실 그 1년을 누구보다 후회한 게 저였습니다. 정말 제 자신이 증오스러웠고 미웠습니다. 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부터 해도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공부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저 말씀을 하신 이후 저는 너무도 아팠습니다. 숨이 턱 막혔습니다. 그리고 이후 제 아버지께서 심장관련 질병으로 기절하시게 됩니다. 원인은 스트레스 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더이상 저는 제 성적에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더 잘해야했습니다. 내 마음이 어떻든 상황이 어떻든 견뎌내야했습니다. 빨리 어떻게든 성과를 보여서 부담을 덜어드리려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기쁨을 드리고자 했습니다. 그 이후의 공부는 지옥이었습니다. 한 순간도 즐거웠던 적이 없습니다. 자괴감, 불안, 초조, 공포, 열등감 속에서 저를 궁지로 몰아넣고 공부했습니다. 집중이 제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저는 급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앉아서 어떻게든 앉아서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밥도 제대로 못먹었습니다. 밥이 넘어가질 않았습니다. 숨이 막혀서 말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매일 밤 자기 전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한 번만 도와주시라고.. 다시는 시간을 헛되이 사용하지 않겠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동안 다른 친구들을 무시했던 발언 혹은 시선에 대해서도 너무 미안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다른 친구들 혹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을 것이란 생각에 고통스러웠습니다. 허나 매일 매일을 노력해도 상황이 나아지지를 않았습니다. 어머니은 이미 우울증과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었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기댈 곳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풀었고 또 받았습니다. 하루는 담임선생님께 상담을 하러갔습니다. 학업관련해서 상담을 하였으나 선생님은 저를 제대로 이해하시지 못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위로보다는 충고 혹은 꾸중을 받았습니다. 제 기억으로 그때 당시 담임선생님은 첫째를 낳으신지 몇년 안되셔서 한참 힘든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더이상 의지할 곳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스스로 극복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남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더이상 기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울음을 참는 법을 배웠습니다. 감정을 죽이는 법을 배웠습니다. 제가 우리 가족의 기둥이 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거의 매일밤 부모님이 싸우셨으나 저는 어떻게든 중재하려 노력했습니다. 서로에게 향한 비난의 화살을 제가 감당하려했습니다. 온라인 수업 덕분에 집에서 수업을 할 때면 점심 혹은 저녁시간을 이용해서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사랑을 속삭였습니다. 사실은 부모님을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증오스럽고 원망스러웠으나 저까지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상황을 나아지게 만들기 위해서는 사랑을 전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을 속삭였습니다. 감사의 말을 전했습니다. 집안이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기에 저는 견뎌야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위인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금방 지쳐갔습니다. 매순간이 지옥이었습니다. 1분 1초도 더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한 여자애를 알게 됩니다. 그 친구는 저에게 한줄기 빛이 되어주었습니다. 희망이 되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친구를 존경했습니다. 그 친구는 2학년때 성적을 엄청 올린 케이스였습니다. 그 친구와 만나는 순간이 잦아지면서 저는 자연스레 그 친구에게 호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 친구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차라리 죽고 싶을만큼 괴로운 순간들을 1초라도 더 견뎌냈습니다. 성적이 오르길 간절히 바랬습니다. 허나 성적을 오르지 않았습니다. 절망속에 2학년을 마쳤습니다. 그 친구는 성적을 더욱 올려 학교에서 10위권안에 들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열등감을 느꼈습니다. 사랑과 동시에 열등감을 느꼈습니다. 고마움과 동시에 미움을 느꼈습니다. 이 괴리감조차 저는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3학년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고통스러웠습니다. 익숙해질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허나 고통을 담아낼 그릇이 커졌나봅니다. 조금은 집중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적이 올랐습니다. 허나 이제는 이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주위에서 잘한다고 칭찬을 해줘도 이걸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잘해야한다고 채찍질 했습니다. 1분이라도 1초라도 쉬는 것을 허락하지 못했습니다. 30분이상의 시간을 낭비한 날에는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다음날 계획을 더욱 빡세게 수정한 뒤에야 잠에 들었습니다. 그 친구는 3학년에 들어 성적을 올린 저를 멋지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노력하는 모습을 봐왔고 성과를 내서 증명하는 모습이 멋졌답니다. 그 친구도 저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녀에게 제 마음을 전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공부를 해야했습니다.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녀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저는 그녀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 열등감이 그녀와 저가 이어졌을 때 저를 파괴할 수 있음을, 그녀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더이상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마음을 외면해야했습니다. 아팠습니다. 그래도 그 이후로는 마음이 조금은 안정되었던 것 같습니다. 수능을 잘 보면 지옥같은 이 순간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견뎠습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며 견뎠습니다. . . . . 수능을 망쳤습니다. 저는 더이상의 희망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때 제가 느꼈던 것은 절벽이었습니다. 눈 앞이 캄캄했습니다. 두달 가까이를 방안에만 쳐박혀 밥도 잠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수험생활내내 저는 다시는 시간 낭비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또 다시 저를 놓았습니다.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더이상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친구들은 수능 끝났다고 신나하며 만나서 놀고 즐기고 하였으나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것에도 열등감을 느꼈습니다. 부러웠습니다. 화가 났습니다.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평범하게 대충 노력하고 대충 이루며 대충 살까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다고 이 두통이 불안과 공포가 사라질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차라리 죽으려고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죽을까라는 생각을 했으나, 저는 저도 모르게 살아야하는 이유를 간절히 찾고 있었습니다. 저는 살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살기가 싫었던 겁니다. 1분 1초도 이렇게는 더 살기 싫었습니다. 살아야할 이유를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알게되었습니다. 그녀가 , 그 친구가 서울대를 합격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미칠듯한 열등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내 생각했습니다. 다시 만났을 때 부끄러운 사람이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어섰습니다. 2년간을 고통을 견디며 이겨내려했지만 잘 안되었기 때문에 저는 이번에는 10년이란 기간을 잡았습니다. 앞으로 10년간 이 고통을 더 견뎌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노력해도 성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자존심을 내려놓았습니다. 이미 버렸다고 생각했으나 아니었습니다. 제 열등감의 원인은 다름이님 자존심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달리려 하였으나 달리는 것 조차 무서워서 걸었습니다. 하루 1시간 걷는 것이었으나 하루도 더 하고 싶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조차도 저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중간 중간 걷지 않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걷다 보니 산책로를 한바퀴 돌아보자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목표가 생기고 그것을 이루면서 아주 조금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이 48일째 달리는 날입니다. 49일동안 하루만 빼고 매일 달려왔습니다. 매일 일기같은 것도 적었습니다.마음을 달래기 위한 독서도 하였습니다. 비가 와도 몸이 아파도 뛰기 싫어도 힘이 없어도 뛰었습니다.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힘이 조금은 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치유된 것은 아닙니다. 요즘도 두통이 찾아오거나 두렵거나 합니다. 열등감도 찾아옵니다. 분하고 억울하고 서럽고 힘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저희 가족은 이제 괜찮아졌습니다. 부모님 모두 마음의 안정을 어느정도 되찾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모님께 제 감정을 온전히 털어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분들이 또 다시 불안정한 마음을 지니게 될까 두렵습니다. 저로 인해 제가 내뿜을 부정적인 에너지로 인해 힘들어 할까봐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기댈 곳이 필요한가 봅니다. 저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가봅니다. 저를 위해 조언을 해줄 사람이 필요한가봅니다. 감사합니다.
트라우마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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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NI
AI 댓글봇
Beta
3달 전
어떤 상황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지 제가 가늠이 되진 않지만, 본인이 판단 했을 때 관계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그게 맞을 수 있어요. 하지만 후회 없는 선택을 하는 게 중요하겠지요. 올해는 지나야 그게 가능하다면 올해는 가족들과 더 대화를 해보고 그리고 결정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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