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털어놓을 곳이 없어서 적어봅니다.
안녕하세요 30대 초반 여성입니다.
제 이야기를 하면 복에 겨운 소리한다는 말을
듣곤 했어서 어디에도 털어놓을 곳이 마땅치가 않네요.
경제적으로 솔직히 많이 부유한 집안의 외동딸로 살고 있구요,
행복해야 마땅한 집에서 살고 있는것은 분명한 듯 보입니다.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가고 싶은 곳 다 가고,
갖고 싶은 거 다 가지면서 살았으니 그 사실만으로도
감사히 여기고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야하는게
맞다는 건 머리로는 알겠는데
딱히 행복하지가 않은 것이 문제인것 같습니다.
종종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런 순간이 단 한 순간도 떠오르지 않아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정말 내가 복에 겨웠나보다. 라고...
그래도 종종 찾아오는 힘든 마음이
저를 아프게 합니다.
부모님은 참 좋으신 분들이십니다만,
두 분 모두 굉장히 보수적이시고 저를 울타리에 가둬놓고
통제하고 싶어하시는 분들이십니다.
그렇다고 저에 대한 사랑이 너무 넘치시는
흔히 말하는 딸바보의 부모님이랑은 거리가 머십니다.
부모님한테, 주변사람들한테, 사랑받고 싶어서
착한아이가 되어야겠다는 강박이 생겼고
그것은 결국 저를 바보로 만들었습니다.
밖에 나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인간관계도 망가졌고,
부모님의 통제로 인한 스트레스로
연애도 더 이상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고,
앞으로의 연애 또한 부모님이 바라는
그런 남성분을 찾아야만 연애를 할 수 있을 것 같구요,
돈을 벌어도 부모님 회사일을 하며 월급을 받고 있어서
번 돈은 제 돈이 제 돈이 아닌 상황인데다가,
아직 경제적 능력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독립은 꿈꾸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물론 독립한다는 말도 절대 못꺼낼만큼
아빠가 무서운 것도 있습니다.
(극도로 싫어하십니다.)
그렇다고 집안이 엄청나게 화목해서
집안에 있는것이 행복 그 자체이면 모를까
딱히 집안이 화목하지도 않습니다.
싸워서 독립을 해라. 라고 말하는 분들이 종종 있었지만,
문제는 제가 누군가와의 다툼에 굉장히 약하다는 겁니다.
누군가와의 대립이 저에게는 극심한 스트레스 입니다.
그 상대가 부모님이라면 그 스트레스가 배가 됩니다.
말을 못하겠어요. 그 냉랭한 분위기가 오는 것이 너무 무섭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와의 싸움을 멀리하고,
최대한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고,
그 사람이 듣고싶어하는 말을 잘 캐치해서
원활한 관계를 이어가려고 노력하면서 살아왔는데
그것이 문제인걸까요?
나는 내가 사랑받고 싶은 만큼 사랑을 주는데,
내가 준 사랑만큼 사랑을 되돌려 받지 못하는 것도 너무 슬프고,
맨날 너가 딸인데, 너가 딸이니까 라는 핑계로 항상 이해해야하는 건 저여야만 하는 것도 조금 억울하기도하고,
그럼 내 마음은 도대체 누가 알아주는건가 싶고,
말할 사람도 없고, 내 마음은 이해해줄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있는것도 아니고,
그냥 제 삶이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껍데기만 있는 삶 같아요.
제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고 싶었어요.
누군가가 이리 움직이는대로 저리 움직이는대로 사는것이 아니라,
남 눈치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시행착오가 있어도 내가 내 삶을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학창시절에 이런 삶에 회의감을 느껴서
내 삶을 내 스스로 끊어내려고 해보았으나,
거기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국에 저는 제 스스로 삶을 잘 살아내는 것도,
제 스스로 삶을 끊어내는 것도 못하는,
나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거죠.
어짜피 죽을 수 없다면, 흘러가는대로
부모님이 원하는 착한 아이로 살아가자라는 생각으로
그냥 그렇게 살다보니 시간이 흘러흘러 30대가 되었습니다.
현재 저는 게으르고 아무것도 하고싶어하지 않는
부모님 집에 빌붙어서 사는 캥거루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대로는 안되겠어요.
도저히 이렇게는 못 살겠습니다.
연애도, 직장도, 인간관계도, 내 삶도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삶은
앞으로도 저를 병들게 할 것 같습니다.
경제적인 독립이 가장 먼저 필요할 것 같아서
현재 그 부분을 위해 부모님의 회사일과 별개로
개인적으로 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제 전공을 살린 다른 일을 시작했습니다만,
앞서 말했듯,
저는 겁도 많고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이런 저는 뭘 어떻게 해야 부모님 그늘을 벗어나서
제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걸까요?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갑자기 걷잡을수 없이 마음이 힘들어져서....
그런데 마땅히 말할 곳은 없어서...
그냥 주저리주저리 생각나는대로 떠들어봤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