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다 제잘못 같아서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있어서 늘 들어주는 사람이고, 제 얘기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서…무슨 말로 시작해야할 지 잘 모르겠어요. 이 어플도 친구 추천으로 받은 거였거든요.
저는요…올해로 스무살이 됐어요. 스물에 딱히 큰 감정은 없었는데, 주변에서 스물이라면서 다들 기뻐하고 설레하고 또 걱정하는 걸 보면서도 그렇게 큰 감상은 없었거든요. 아, 이제 미성년자는 아니구나. 딱 그 정도의 감상이었어요.
전 어려서부터 수동적인 삶을 살았어요. 엄마가 너무 무서웠거든요. 엄마가 절 때리시거나 그런건 아니었는데도 늘 엄마가 무서웠어요. 이상한가요? 엄마 말이 곧 법인 것처럼 엄마가 하라는대로 하다가, 초등학교 5~6학년 즈음에 갑자기 모든 게 다 싫어진 거에요. 왜냐고 물어도 대답할 수가 없었어요, 저도 몰랐으니까요.
다니던 학원을 갑자기 말도 없이 가지 않았고, 소식 듣고 화내는 엄마 앞에선 입을 다물었어요. 왜 그런 행동을 하냐고 물어보시는 엄마에게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고요. 입이 떨어지지 않았거든요. 무슨 말을 해야하는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중학생이 되어서는 학교를 잘만 다니다가 돌연 주변 친구들이 서로 싸우고 서로를 욕하는 걸 보다가 또다시 모든 것에 싫증이 났어요. 학교가 무서웠고, 또 집이 무서워졌어요. 사실 가족들이나 친구들 모두 내게 무언가를 한 적도 없는데 그냥 그게 그렇게 무서워졌어요. 그래서 또다시 학교를 가지 않고 아침에 근처 공원 화장실에 숨어 숨죽여 울었어요. 한 달 정도를 그렇게 살았어요.
그 이후에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몸이 망가져서 조금만 충격을 받아도 쓰러지는 걸 반복하면서, 엄마에게는 그게 큰 스트레스가 되었나봐요. 눈에 띄게 스트레스 받아 하시고, 갱년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거든요.
그러다가 고등학생이 되고, 아무리 생각해도 잘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어서…나태한 인생을 살게 됐어요. 한 번도 제가 무언갈 하고 싶고, 갖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어서 먼저 나서서 이걸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게 좀…무서웠던 것도 같아요.
위로 6살 차이나는 오빠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더니 돌연 음악을 하고 싶다며 밤낮없이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걸 보면서도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기도 해서 저도 고등학교에 가면 그런게 생길 줄 막연히 기대했던 것 같아요.
가만히 있어선 해결되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움직이는 게 너무 무서워서 발걸음을 뗄 생각을 못했어요. 움직여서 이 공간을 벗어나면 내가 감당 못할 것들이 나를 잡아 먹을까봐, 내가 모르는 것들이 내가 아는 것들을 모두 삼켜버릴까봐 그랬던가…….
엄마는 늘 제가 교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외셨어요. 교육직에 종사하셔서 같이 일하는 게 꿈이라면서…교대에 들어가시길 바라셨는데 저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닌데, 물론 모든 직업이 다 그렇겠지만. 아이들은 제게 있어서 너무 어려운 존재였고, 또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일 자체가 저랑 안 맞는 것 같기도 하고…여전히 말은 제대로 할 줄 몰랐어요. 교사 안하면 하고 싶은 게 뭐가 있냐는 말에도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었어요. 없었거든요, 여전히.
엄마는 제가 고등학교 3학년 수능 보는 날까지 저를 위해서 헌신하셨는데요, 죄송스럽게도 전 교대에 붙지 못했습니다. 다만 교대가 아닌 다른 대학의 교육과에 합격했어요. 엄마를 만족시켜드릴 순 없었지만.
저는 한 번도 엄마에게 제 얘기를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해본 적도 없는 데다가, 엄마랑 얘기하면 자존감이 떨어진다고 해야하나…가끔 엄마 앞에 선 저는, 제 자신만으로는 가치가 없는 사람 같아서……잘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좋아하는 것도 없고…목표도 없이 나태하게 사는 삶에 대해서 엄마는 화가 나셨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저도 이렇게 나태하게만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분 단위나 대단한 계획을 세우지 못해도 소소하게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보고 하나씩 해보려고 했는데…계획을 보여달라는 엄마에게 부끄럽다는 이유로 보여주지 않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어요.
제가 처음으로 세운 해보고 싶은 것들 이었는데…엄마의 마음에는 차지 않을 계획이란 걸 알았거든요. 무시당하는 게 무서웠습니다. 제 계획이 엄마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라져버릴까봐, 그게 무서웠어요.
엄마와 1월에는 여러가지 해보기로 약속했었는데, 집에 친척이 찾아와줬습니다. 최근들어 우울하던 나날들의 연속이 친척 하나가 와줬다는 것만으로도 꽤 행복한 일상이 되어서 엄마와의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이건 명백한 제 잘못이었죠, 그런데도 친척을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최근의 저는 꽤나 가라앉아서 매일 밤을 울고, 이유도 모르는 눈물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서…갑자기 찾아온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엄마는 폭발하셨어요. 당장 친척을 돌려보내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너와 나의 인연은 끝이라며, 감정적인 발언과 폭언을 카톡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싶지 않았고, 곁에 있던 친척의 응원으로 저는 처음으로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를 해봤습니다.
약속을 못 지킨 점에 대해 사과하며, 엄마와 대화할 때 자존감이 떨어지던 점, 엄마가 무서웠다는 감정에 대해서도…그 외의 잡다한 나날들.
사과까지는 바라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 얘기에 귀기울여 지난 날을 돌아보고 저를 이해해주지 않아도 좋으니 그랬구나 한 마디만…그거 한 마디만 해주시면 전 늘 그랬던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생각 없는 애처럼 웃을 수 있었어요. 그러나 돌아온 건 너만 힘드냐는 것과 엄마가 네 인생에서 사라져 주면 되냐는 감정적인 말이었습니다.
머리가 아팠어요. 끝내 죽고 싶다는 말을 하는 엄마에게 아무런 답장도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도 모르지만, 그건 제 트라우마와 비슷한 무언가라서요.
엄마는 기억하지 못하시지만, 전 엄마가 술 마시고 들어오는 날이 정말 싫어요. 취중진담이라며 네가 정말 싫다라뎐가, 이 년아 라던가…취중진담이라며 내뱉는 폭언 모두가 상처였거든요. 늘 나를 볼때면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내게 이런 말이 하고 싶었나.
가끔은 던진 물건에 맞을 때도 있었고, 문을 잠그면 그 문을 발로 쾅쾅 차며 욕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하지 않았어요. 말해도…술 취해서 그런 거라며 넘어갈 게 뻔해서요.
그리고 가장 큰 트라우마는…가끔 술을 마시면 죽으라고 하던 모든 말입니다. 이건 정말로 아무도 모르지만요, 아는 건 저뿐이지만……여전히 잊을 수가 없어 상처로 남은 것 같아요. 한심하죠…그런 말 한 귀로 듣고 흘렸어야 했는데.
전 기억력이 이상해서…이런 사소한 것들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일 오래된 기억은 기어다니던 시절, 절 키워주시던 옆집 아주머니의 집 구조에요. 이제는 변해버렸지만…아빠가 겨우 걷던 제 손을 잡고 공주라고 불러주시던 것도 기억하고, 엄마와 할머니가 술을 마시고 울며 하던 이야기들 전부 기억하고 있어요. 완벽하진 않아도 몇몇은 굉장히 선명하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이런 말들은 한 번 들으면 오래도록 잊혀지지가 않더라고요. 너무 주절댄 것 같기도 하고…이렇게 얘기할 곳이 없어 늘 담아두던 것들이 이리저리 쏟아져서 횡성수설한데…….
아빠는 제가 대학만 가면, 엄마와 이혼할 예정이라고 하셨습니다. 엄마의 감정적인 말과 화풀이를 더이상 들어줄 수 없다고 하셨거든요. 엄마와 제 사이가 벌어지면서 가운데에서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 하시던걸 알아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평소라면 제가 굽히고 들어갔을 일인데도, 왜인지 엄마가 용서가 되지 않아요. 사실 제 용서 같은 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데, 그냥 평소처럼 아무것도 못들은 척 웃어넘기면 되는 일인데 제가 괜히 엄마에게 말을 해서… 엄마가 아니면 경제적으로든 뭐든 아무것도 없으면서……자존심을 부렸나, 객기를 부렸나.
요즈음에는 전보다 심해진 우울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모든 게 다 제 탓 같기도 하고요. 사실 맞는 것 같아요.
제가 나태하지 않고 똑바로 살았으면, 엄마가 스트레스 받으실 일도 없었고, 그런 엄마 때문에 저도 아빠도 스트레스 받을 일 없었는데…죄송합니다.
어렸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언제부터인가 그 무엇도 하기가 싫었어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이 그냥…이렇게 살다 죽는 게 아닌가. 어차피 매일매일이 죽어가는 것 아닌가. 살아야할 이유는 무엇인가? 라는 고민만 계속 하게 되더라고요.
전 제가 살아야 할 이유가 너무 찾고 싶었어요. 그걸 찾으면, 정말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