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없는데 너무 힘들어요
안녕하세요, 올해로 22살 되는 직장인입니다. 20년 2월, 고등학교 졸업식 다음날 입사해서 2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있어요.
아무 일도 없는데 너무 힘들어요. 다 잘 되고 있는 것 같은데 다 그만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겪은 일들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한방에 몰아 터지나 싶은 마음에 아래로 길게 적습니다. 입사 전까진 이렇게 힘들어본 적이 없어 아마 직장에서 얻은 병일 거라 생각해요. 글이 깁니다. 미리 양해 부탁드려요.
2년 동안 잘 다니던 직장을 왜 그만두냐고 하시면요. 일도 일이지만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런 걸까요.. 사람에도 이래저래 많이 데였는지 저 스스로 정신이 많이 무너졌다 느꼈고, 어렵게 결정해서 2월 초주에 관두기로 한 상태입니다. 한 주 휴식기간을 가지고 다음 직장으로 환승이직하려고요. 면접도 합격했고, 이직하는 직장은 연봉도 훨 뛰었어요. (전 돈을 중요시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믿었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퇴사할 직장은 인수인계 받을 사람도 뽑혔어요. 업무 매뉴얼도 작성 완료한 상태고 주변에서도 상세하게 잘 정리했다고 '역시 최고'라며 칭찬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승승장구죠.
그런데 저는요, 사실 1년을 채우기 전 20년 11월 쯤부터 번아웃을 겪으며 너무 힘들었어요. 점점 제 앞으로 쌓여가는 일은 힘들고, 막내인 제 자리에 비해 너무 버거운 책임들... 그때 그만두는 게 맞았을까요? 그래도 이해받고 싶은 마음에 어떻게든 버텼더니, 연봉협상 땐 제가 죽도록 제 시간과 몸을 갈아가며 한 일임을 어필했지만 그게 본인들이 시킨 거냐며 입사한지 1년도 안 됐으니 다음 해에 보자며 말을 바꾸고 동결. 제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 같았습니다. 아니, 본인들이 시켰잖아요. 입사한지 1년, 늘 2월에 한다던 연봉협상을 갑자기 1월에 하더니 2월 입사자인 저는 해당사항이 없답니다. 그런데 2월에 함께 입사한 동기는 올랐어요. 재밌죠, 상황이.
그래도 저는요, 내년에 보자니 믿었어요. 미련하게. 그 1년이 정말 지옥같이 흘렀습니다. 내일채움공제에 가입하고 이제 2년 간은 그 돈 몇 푼에 묶여 살 사람으로 봐서 그런지, 그 좋던 사람들이 다 하나같이 일을 미루고 생색을 내고...
예, 그래도 저는요, 할 수 있는 일이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전 제 일을 하고 나면 시간이 꽤 많이 남았거든요. 제 입사일에 제 직속상사 실장님이 제 할일 끝냈다고 놀지 말고, 주변에 도와드릴 거 없냐고 물어서 도와야 한다고 하셨거든요. 돕는 일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고함을 지르고 화를 내셨거든요. 그런데 돌아보니 이제 나갈 사람은 다 나갔고, 인원은 충원되지 않은 채 일은 제가 다 하고, 돈은 다른 사람들이 받고 있더라고요. 아무도 이게 문제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고, 나간 사람들에 대해서 쉬지 않고 험담했어요. 그 욕설을 들으며 마스크 아래로 몇 번을 탄식했는지 모르겠네요.
비겁하기 짝이 없는 저는요. 나가면 나도 저렇게 욕을 먹을까 싶어서 그만두지 못한 걸지도 모르겠어요. 직원들 앞에서 나갈 사람 다 나갔으니 우리 회사는 잘 될 거라던 대표님, 저는요. 저도 나갈 사람인가요. 제 업무량 과다에 가장 크게 기여하시며 본인 일 다 떠넘기고 회사에서 대표님 눈 피해 게임하기 바쁘시던 실장님, 저 입사할 당시엔 과장님이셨지만 부하 직원 연봉 동결 소식에 이어 갑작스런 폭풍승진으로 실장님이 되신 실장님! 너무 힘이 들어 그만두고 싶단 저에게 여기보다 더 나은 곳 없고, 연봉 100, 200만원 올리겠다고 이직하는 연놈들만큼 바보같은 짓이 없다며 '버텨라' 로 일관하시던 실장님! 실장님은 왜 이 회사를 그만두셨었나요?
묻고 싶은 말도 많고, 따지고 싶은 일도 많았습니다. 제가 아는 저는 남 눈치 보지 않고 할 말 다 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면 얼마든 치고 나가는 성격의 사람이었습니다. 호불호가 갈리는 성격일 테지만 저만큼 절 좋아할 사람도 없으니 괜찮다고 생각할 정도로 자기애가 강한 편이었어요. 요즘 유행인 mbti도 5년 내내 ENTP-A 입니다. 그런데 하고 싶은 말은 다 꾹 참고, 따지고 싶은 일도 숨기고, 늘 웃으며 속은 곪아가는 제 모습이 넌더리가 나더라고요. 회사에선 가식스럽게 웃다가 친구들에겐 불 같이 화를 내고, 그러다 또 한참을 웃고, 가족들에겐 또 회사 잘 다니는 자랑스러운 맏딸, 대단한 언니... 경극을 하는 것 같았어요.
어느 순간 진짜 제가 누구인가 싶더니 이제 한동안, 하루에도 기분이 하늘 끝과 땅 밑 끝바닥을 오고 갔어요. 그러다 진이 빠지더니 다 그만하고 싶은 날이 오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지금은 세상에 없지만 제 마음에 잔존하는 가수가 꿈에 나와 자의로 세상을 뜨는 것을 말릴 순 없지만 본인은 사실 조금 후회한다고, 다음에 볼 때는 본인이 사 준 옷을 입고 기왕이면 웃는 얼굴로 봤으면 좋겠다고.. 그 꿈을 꾸고 나니 요란하던 정신이 좀 진정되는 것 같았어요. 정신이 맑아지고, 제가 못 찾던 저는 그냥 데이터베이스 같은 존재구나. 상황에 따라 다른가보다, 했죠. 제가 모르는 제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다 나아진줄 알았습니다. 저는 제가 제 자신을 몰라서, 저 자신을 잃어서, 제가 아픈 이유를 몰라서 아프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저는 지금 다시 길을 잃었습니다. 아무 일도 없고요. 저는 잘 될 거예요. 이대로만 살면 절 괴롭히던 일도 사람도 없는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일하겠죠. 아마 연봉도 쭉쭉 오를 거예요, 괜찮은 회사거든요. 친구들도 다 저를 좋아하고, 가족 분위기도 좋습니다. 모든 게 잘 되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이상하게 다 놓아버리고 싶어요.
스트레스 해소 수단으로 운동을 열심히 하며 몸만큼 솔직한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제 정신만큼 솔직하지 못한 것도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어디에도 제가 아픈 걸 털어놓을 수 없어서, 이러다가 제대로 제 심정 한 번 말해보지 못하고 아무 흔적 없이 세상을 뜰까봐. 또 아무도, 제가 왜 세상을 떠났는지 모른 채 이해되지 않을 죽음으로 남고 싶지 않아서 글을 남겨보아요. 괜찮지 않은데, 왜 괜찮지 않은 건지 저부터도 모르겠어요. 하긴 이걸 알았으면 다들 괜찮아졌겠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될 거예요, 이러다가도...
증상은요.
아무렇지 않다가도 심장이 요동치고, 눈물이 나고. 불처럼 화가 나다가 갑자기 힘이 없어지고, 이런 제가 웃겨서 하염없이 웃다가 또 눈물이 주륵주륵 납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었는데, 살던 대로 사는 게 도무지 안 돼요.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의욕은 하나도 없고, 이대로 억지로 살다간 제가 정말 무슨 일을 벌일까 싶어 최대한 집으로만 향해요. 그런데 그 멘탈케어랍시고 운동을 미루고 먹을 것만 사들고 집에 오는 제가 한심해 죽겠어요. 운동해야 하는데, 먹을 것만 자꾸 먹고. 이것도 스트레스로 연결이 되어 소화도 잘 안 되고, 뭘 먹으면 구역질이 올라오는 걸 겨우 참아요. 참아내는 하루의 연속입니다.
희망은요.
좀 괜찮은 제가 되고 싶어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지나가면 더 큰 파도가 오더라고요. 다들 어떻게 사시나요. 친구들은 그냥 파도가 몰려오면, 가끔 쓸리기도 하고 잠기기도 하면서 너무 힘주지 말고 살아보라는데... 그러다 제가 잠겨죽으면, 그때는, 어쩌죠?
제가 어떻게 하면 나아질 수 있을까요. 아픈 걸 아는데 병원 한 번 제대로 가보지 않고 이러고 있는 게 한심하네요...
그래도 여러분은 좋은 하루 보내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아프지 말아요. 괜찮아져요.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어요.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