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고 싶지 않은데 관계가 망가진 것 같아요
이혼하고 싶지 않은데 관계가 끝난 것 같아요.
누구보다도 행복한 커플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안 차이는 많이 났어요. 저는 넉넉한 환경에서 원하는 공부도 오랫동안 했고. 남편은 홀어머니 밑에서 어릴 때부터 돈 벌면서 제대로 공부도 못했습니다. 학벌 차이 자라난 환경 차이 많이 커요. 그런데 둘 다 예술하면서 만났고 그 당시에는 돈 같은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서 가족, 주변 반대 다 무릅쓰고 결혼했어요. 늘 제 편인 사람이었고 저를 응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신혼 한동안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벌이는 적었지만 저는 이를 꿈을 이루기 위해 버티는 시간이라 생각했고 상대도 그렇다 생각했어요. 사이에 남편네 집에 갈 때면 우리 집과 달리 밥 한끼 계산 안하려는 모습이나 이상하게 돌려서 우리집을 내려보듯 말하는 태도가 이상했지만 그냥 시월드려니 했어요. 해가 흐르면서 회사를 다니는 동년배 제 친구들은 안정되고 하나 둘씩 아이를 갖기 시작했고. 저희는 이십대 처럼 그대로였습니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행복했어요. 온실 화초 처럼 자라서 돈 개념이 없었던 거죠. 그래도 응원 속에 몇 년 버티다 보니 저의 경우는 조금씩 작업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좋은 소식과 함께 돈도 만지게 됐어요.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제가 변한 건 아닙니다. 저는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면 그야말로 올인을 했지만 남편은 꾸준히 회사를 다녔어요. 좋은 안정된 직장은 아니고 그냥 사대보험 되는 회사예요. 연애 때는 이게 참 멋져보였습니다. 주변 친구들은 다 예술 한답시고 게으르게 사는데 회사 다니면서 작업도 하는 이 친구가 정말 괜찮아보였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 친구가 제가 제안한 상업 예술을 거부하면서 시작됐어요. 그걸 하면 자신의 작업을 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수년간 거부했는데 마지막 거절에 제 안에서 뭔가 끈이 하나 탁 끊어졌다 해야하나요.. 아 이 친구는 예술이 취미였구나. 꿈의 사이즈가 나랑 다르구나. 나는 이 시간들이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버티는 과정이었는데. 이 친구는 저 회사에 만족하고 거기서 번 돈으로 간섭 안 받고 혼자 아무도 보지 않는 작업을 하는 친구였구나.. 배포가 여기까지구나가 보이더라구요. 남자 여자 역할을 나누고 싶진 않지만 가장이 아니구나. 내가 원하는 삶을 살려면 내가 이 집을 총대 메고 끌어 올려야되는구나가 확 느껴졌어요. 그 와중에 어머님은 일을 그만두고 싶다 하시고… 저희 부모님은 저와 남동생을 공평하게 키워주셨지만 결혼 후 자산분배에 관해서 너무 기우는 남편이 있는 집 쪽으로 돈이 흐를까 선뜻 도와주고 싶어하지 않으세요. 비슷하게 해 올 수 있는 정도면 좋겠는데 그게 아니니 마음이 안 열리나봐요. 저는 경쟁이 굉장히 심한 곳에서 십대 이십대를 보냈어요. 죽도록 공부했고 그런 줄세우기 환경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예술로 빠져 나온 경우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그렇지 않은 이 남자가 참 좋아보였습니다. 세상 보는 눈이 좁아서 종합적인 사고를 못 한 거죠. 그런데 이십대 처럼 꿈만 꾸고 살 수 없잖아요. 나이가 들고 남들보다 늦게 현실을 봤네요. 엄마 아빠가 얼마나 걱정하고 있었는지도 이제 보이게 되었고. 사실 학교 때 눈길도 안 가던 남자애들이 객관적으로 제 남편보다 잘 난 모습을 보면 당혹스러워요. 갑자기 심각하게 현타가 오면서 남편한테 해선 안될 말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는 진심이었어요. 이혼하고 싶었고 이 친구가 제발 나를 놓아줘서 원래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이 친구 부담 주지 않으려고 선택해서 살고 있는 동네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제가 왜 이러고 살고 있는지 스스로 납득이 안됐어요. 인생이 망한 것 같았어요. 그리고 쌓여온 시댁 스트레스도 같이 터졌어요. 어머님이 했던 이상한 말들. 기대고 싶어하는 태도. 하나도 준비되지 않은 노후. 결국 우리 부모님의 유산이 아니면 내가 원하는 환경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 같았고 대체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건가 싶었어요. 그래서 정말 몇 달을 쏟아 냈습니다. 울고 불고 해서는 안 될 말들 너무 많이 했어요.
여전히 무섭습니다. 시어머니나 이 친구의 미래나 금전적인 부분이 한 번 눈 뜨고 나니까 노답인게 보여요. 희망만 갖기에 나이가 40이 다 됐구요. 결국 남편은 제가 난리친 상업일을 받긴 했지만 단발성으로 끝냈습니다. 왜 기회가 왔는데 적극적으로 잡지 않는지 이해가 안되요. 이혼하자니까 바뀌겠다 했는데 제가 이 친구가 바뀌겠다는 기준을 더 이상 신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달 흐르고 각방쓰고 따로 집도 알아보고 쌩난리를 쳤습니다. 그러다가 이혼할 힘으로 차라리 열심히 살아보자. 인생 긴데 십년이면 바꿀 수 있다. 다시 시작하자 마음 먹고나니까 이 친구가 더 이상 저랑 함께 하고 싶지 않다 하네요. 저 때문에 상처 많이 받았거든요. 이 친구가 잘해보자 할 때는 제가 미쳐있었고. 이제 제가 힘내 보려하니 이 친구 마음이 완전 돌아섰습니다. 제가 부담스럽답니다. 자신을 믿지 못한다고.
근데 네. 여전히 못 믿어요. 경제 문제로 시작된 싸움이고. 더 이상 양보하고 싶지가 않아요. 제가 원하는 기준에서 턱없이 부족해요. 저는 연애부터 결혼까지 수년을 얘 자존심 안 다치게 하려고 다 맞춰줬었거든요. 이제 내가 그 끈이 끊어져서 맞춰 달라는데.. 왜 못하겠다는 걸까요. 저는 예전처럼 돌아가고 싶진 않아요. 지나고 보니 가끔 눈물이 터져 나오고 잠이 안왔던게 제가 다 참고 내려놓고 있어서. 우울했던 사실을 이제 알게 됐거든요. 저는 이제는 이 친구의 기준에 맞춰주진 못할 것 같아요.
그래도 좋아하는 마음이 추억들이 있어서 너무 무섭고 불안한 와중에도 힘을 내 볼 수 있을까 했는데
이제 자기 혼자 하고 싶다는 말에 정말 상처 받았네요. 요즘 업무 적으로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위로 받고 싶은데 아예 노골적으로 저를 싫어하는 티를 냅니다. 저는 계속 울고 이 친구는 제가 울면 그냥 우나보다 나보고 뭐 어째라는 거냐 하는 얼굴에 방 문 닫고 안나와요. 끝난 것 같은데. 미련 때문에 붙잡고 있는 건지. 이 친구 연애 때 소원이 저랑 결혼하는 거였거든요. 그거 진짜 이뤄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엄마 아빠 반대 무릅쓰고 다 양보하고 맞춰서 결혼한건데. 이런 엔딩이라니 참 슬프네요. 회복 안 될 것 같은데 영화같은 반전을 기대하는 거려나요. 노력해보려 했는데 상대 반응에 가슴이 에립니다. 당분간 별거로 합의 봤는데 최소 계약 2년이면 이렇게 끝나려나보다.. 싶어 참 슬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