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모셔야 할까요?
저는 서너살 무렵부터 외할머니 손에 자랐습니다. (이혼과 함께 , 부모님은 돈 벌어서 데려가겠노라며 할머니께 저를 맡겼지만 실상은 몰래 재혼해 상대배우자의 자식을 보살피며 살고있었죠. 일년에 두번 명절때만은 꼭 와서 사랑한다는 둥 부모 행세를 하고 가긴 했습니다. )
기초수급자인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가난, 애정과 보살핌의 결핍, 불결한 위생상태, 하루에도 몇시간씩 옛날 이야기와 한스러움에 관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동안 어린 나이에 우울증과 대인기피, 불안장애가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고등학생 무렵 학교를 자퇴하고 집에서 공부했지만 내 방조차 없는 집에서 할머니와 하루종일 함께 있는 것은 고문처럼 느껴졌습니다.
부모님과 친척들은 나의 우울증과 환경으로 인한 고통을 한사코 부정했고, '그만 방황하고 옛날의 착한 너로 돌아오라'고 할 뿐이라 어디에도 기댈 곳은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홀로 독립해 수년째 부모친척 모두와 손절 중입니다.
그러나 어쨌거나 저를 키워주신 할머니만큼은 외면하기 어렵습니다. 노쇠해 거동조차 불편해지신 상태로 홀로 살고 계신데 저의 부모님을 비롯한 자식들은 모두 형편이 안되어 외면하거나, 제가 다시 할머니와 살기를 종용하고 있어요.
이제야 겨우 집다운 집에서 혼자 사람답게 살고 있는데...
이 자유와 행복을 다시 포기하고 예전으로 돌아간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숨통이 조여오는게 사실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할머니와 결코 다시 살고 싶지 않아요. 병원을 거부하시는 건 물론이고, 제 집으로 오시라고도 해봤지만.. 화장실도 집 밖 공용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노후되고 불편한 아파트가 하느님이 마련해주신 거처라며 떠나선 안된다, 니가 들어와야 한다라고 고집 부리시는 분이니까요.
그러나 연로하신 할머니가 앞으로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나 하는 연민, 각자 가정이 있는 엄마, 이모, 삼촌들보다 독신인 내가 희생하는게 맞을까 싶은 갈등. 게다가 또 넘어져 홀로 앓다가 고독사하시면 어쩌나 하는 상상을 하면 역시 괴롭습니다.
이젠 왜 자식들이 아니라 손녀인 제가 이런 갈등을 해야 하는지조차 속상하네요.
무엇이 최선일까요. 답답하고 우울합니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