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착오적인 남존여비사상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상담|우울증|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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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적인 남존여비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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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멘탈 강하고 결단력과 추진력있고 단단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편인 지금까지 쉬지않고 열심히 달려온 사람들중 하나 입니다. 이제와서 지난 세월의 제 노력이 억울해져 현재시점 자기연민에 좀 빠져있는 30대 기혼 여자사람입니다. 평소 비언어적 표현을 잘 캐치하고 다른사람 말을 잘 들어주던 편의 사람이었는데, 이제 징징대는 사람들의 선을 모르는 막말을 더 참아주고싶지 않다는 생각이 자리잡아버렸습니다. 제 그릇이 꽉차서 더는 담을 수 없는것같아요. 30번씩 같은말을 20분이상씩 들어주고도 챙겨주고 더 신경쓰고 뭘 해줘도 더 달라 부족하다 서운하다 징징대는걸 멈추지않는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았습니다.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나에게 정말 문제가 있는것일까 심리학에 관심을 갖고 원인을 찾고자 리서치나 책을꾸준히 들여다봤던것 같습니다. 그러다 나르시시스트와 에코이스트의 관계에 대한걸 알고, 어릴적 반복된 트라우마가 저에게 남긴 흔적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이미 기울어져있던 수평선이 그려진 큰그림을 자각하고 난 이후로 편향적 사고를 하게된건 아닐까 스스로 조심스러워 지기도 합니다. 심리상담을 받아봐야 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아무리 의견피력을 해봐도 가해자들은 뭘 잘못한지도 인지하지 못하는?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왜 저만 시간과 비용을 들여 치료나 상담을 받아야 하는 상황까지 밀려오는건지 억울하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남이면 받아줄 만큼 받아주고 참을 만큼 참아보고 노력할 만큼 해보고도 해결이 안된다면 안보면 되고, 세상에 좋은사람도 많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소시얼라이징을 했습니다. 그리고 손에 꼽히는 존중받고 존중하는 사람 몇명을 만났고, 소중한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도 어릴땐 말을 못했습니다. 다 커서 부모님에대해 험담하는게 창피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릴때부터 결혼 직전까지 가정에서 제가 당한 정서적 물리적 위협은 어린 아이에게는 근본적으로 생존의 위협이었습니다. 다 커서 늙어가는 시점에 그들과 비슷한 나이가 되어보니, 도저히 용납이 안되는 비인간적이고 유치한 언행이었다 생각되구요. 제가 계속 가족이라는 무리에 속해있고싶은 생존본능?욕구로 외면하던 제 감정에 관심을 갖게 될때까지 자각하지 못했던 기억들이었습니다. 어릴적부터 저는 못생기고 성격 더럽고 대들고 머리나쁜 아버지 집안 사람으로, 모든 말을 부정당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논리에 근거하지 않는 주장들을 반복적으로 강제했습니다. 너는 너희 아버지 닮았으니 ㅇ씨집안 자식이고, 기본적으로 ‘넌 내 아들보다 못해야만 한다’가 깔려있는 양육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모태신앙인 저에게 사탄의 자식, 불화의 씨앗 등 유치원생 어린아이 시절부터 각종 레이블링에 저는 매번 제가 잘못하지 않은 상황에도 저는 동생이고, 급이 낮고, 서열이 낮고, 여자이기때문에 혼이나야했고, 저는 그럴때마다 납득할수없었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그 때마다 그들의 말에 따르자면 매를 벌었습니다. 초등시절 오빠가 책받침을 휘두르다 제 눈을 긁어서 각막손상으로 눈물이 계속 났는데, 한심하다는듯이 혀를 차면서 그만 울라고 하며 문을 닫던 엄마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버지한테 혼나니 말하지 말라고 저 혼자 놀다 다친거라고 했습니다. 초등시절 아슬아슬하게 서있을때 오빠가 뒤통수를 쳐서 그대로 넘어지는바람에 앞니가 모두 흔들려서 빠질뻔하며 피가 났던 일도 있는데, 아주 시기 적절하게 이때마다 아버지는 출장을 가셨을 때였습니다. 이때도 엄마는 오빠 혼나니까 비밀로 하라고 했었죠. 이런 이상한 일들에 불만의 목소리를 냈을때 입에 양말을 쑤셔넣고 박스테이프를 붙이고 구석에 몰아놓고 본인 분이 풀릴때까지 밟았습니다. 다 커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때, 그간의 풀리지않던 불만에 대해 언급하니, 밖에서 일이 안풀리면 자식한테 폭력을 행사해도 된다는 이상한 논리를 들이대더군요. 그때는 본인이 힘들었다고 저에게 이해 하라는겁니다. 물론 사과는 일절 하지 않았고, ‘너도 이 다음에 자식 낳아 키워봐’ 라고 했죠. 황당한 부분은 본인은 자라면서 한대도 맞지 않고 귀하게 자랐고, 존중과 사랑으로 넘쳐나는 집에서 ‘기사딸린 차로 등하교’ 했었다며 항상 자랑했습니다. 이런저런 망언과 이상한 무논리논리를 주입식 세뇌교육 받으며 ‘아. 나는 그런 사람인가보다’ ‘이정도인 사람이구나’ 하고 왜곡된 제 자아를 그들이 정해준대로 강제 납득하고 자랐습니다. 저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얻기까지는 유-청년기에 거쳐 친구들의 정서적 서포트와 저 스스로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정체성이 불안정했기때문에, 만나는 사람마다 물었습니다. “너는 내가 어떤 사람인것같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강박적으로 사람들이 원하는대로 내가 스트레스 받더라도 맞춰주고 들어주고 싫지만 받아줬습니다. 엄마의 차별적 발언은 30이 넘고도 계속되었고, 제가 잘되는게 못마땅 했습니다. 잘못된 정보를 코렉팅하거나 사실을 말하면, 네가 잘못알고있는거다. 네가 뭘아냐. 원래 그런거다. 오빠를 이겨먹으려한다. 엄마를 이겨먹으려고 한다. 건방지다. 겸손할줄을 모른다. 부정적이라며 지속적 가스라이팅을 일삼았습니다. 이런일은 비일비재 했기때문에 글 안에 다 담을 수 없지만, 제가 뭔가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한 시점은 중학교때부터였습니다. 원래 멍청했어야 하는 ‘발달장애’ 있고 말이 느리고 구구단도 못 외우는 ‘***’ 반에서 뒤에서 새는데 더 빨랐던 모지리 못생기고 성격 더러운 애가 갑자기 처음 본 중학교 시험성적이 전교 석차에 들었다는게 못마땅해서 전교 4등한 첫 성적표 받아보신 어머니는 오만상을쓰며 한숨을 쉬고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그시더군요. 골든차일드여야만하는 본인을 닮아 공부를 잘해야하고 잘생겨야하고 대단해야하는 아들 성적이 70점대였거든요. 친구들이 많고 잘 놀러다니는 딸이 또 못마땅하셨는지, 여사친들이 집으로 전화를 자꾸 하니까 이상하셨는지. 방을 뒤져서 한때 유행했던 여사친들이 써준 편지를 보더니 저에게 들이밀며 ‘너 레즈비언이니?’ 하며 혐오섞인 표정으로 쳐다보더군요. 그 당시 2살 많은 오빠는 삐삐를 두번 거쳐 휴대폰을 사용했지만, 저는 동생이고 친구가 별로 없으니 휴대폰이 필요없다고 생각하셨는지, 사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인건 제가 고등학교~대학때까지 집에서 떨어져나올 수 있었다는거예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의견 피력 하자마자 묵살당한 이후로 모범생 코스프레에 흥미를 잃었습니다. 집에서는 공부를 잘해도 무시당하고 못해도 무시당하고. 학교에선 점수만 잘 따면 되고 점수는 곧잘 나오니, 점점 집에 늦게들어오고 술담배하며 비행을 하기 시작했고, 논리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한 자식이 귀찮아진 부모님이 유학을 가면 미술 시켜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어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그 일련의 과정에 뜨겁고 눈물나는 사연이 여러가지 있겠지만 가장 어이없던건 아버지나 어머니가 하던 이유없는 폭언 폭력을 똑같이 ‘여기선 내가 가장이다’ 는 이유를 들이대며 저에게 휘둘렀던 오빠와 고등학교 시절 일부 함께 생활했다는 거겠지요. 수험생이랑 같이살면서 집에 사람들을 데려와 밤새 술판을벌이고 카페트에 토로 범벅을 해놓고 오밤중에 접시를 깨고 하는 와중에 본인은 방에 문잠그고 들어가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하는 등 갖은 추태로 저를 괴롭혔습니다. 심지어 오빠의 여자친구 속옷까지 빨래통에서 나오더군요. 저는 그 당시 제가 식모? 노예? 하등한 인간 아래의 어떤것 취급을 당했습니다. 부모님께 반복적으로 말했지만 ‘오빠 말 잘 듣고 있어’ 가 돌아오는 대답이었고, 이때 진심으로 죽고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위해 거주지역 밖의 주에 있는 학교들에만 지원했습니다. 그리고도 차별적 발언 정서적 폭력은 끝나지 않을것처럼 반복되었고, 정신 차려보니, 제 인간관계 안에는 그런 병적인 폭군들이 득실대더군요. 그들이 이상한 가스라이팅을하고, 제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가십을 퍼뜨리거나, 자격지심으로 저에게 시비를 걸어올때, 그때마다 저는 제가 원래 문제있는사람이니 제 문제인걸까를 깊게 고민했습니다. 예를들어 사람들이 너 욕을 아이스브레이커로 맨날해 근데 그사람들 너랑 친해지고싶어서 니욕하는거야. 라고 제게와서 말하며 제가 남사친들이랑 얘기만해도 ‘쟤랑 쟤는 잤어’ 라는 이상한 소문을 만들어서 퍼뜨리고 다녔던 아이나, 챙겨달라는대로 계속 챙겨주고 우는아이 떡하니 도주는 심정으로, 짠해서 계속 신경썼던 여자사람친구는 매번 본인이 조연같다 내가 니인생에 엑스트라냐 하는 이상한 소리를 반복하다가 기말고사 주 동안에 연락을 안했는데, 어떻게 우리집에 찾아오지도 않을수가있어? 니가 그러고도 친구야? 하더니 연락을 끊은 아이나, 그냥 살이 안찌는 체질인데 살이 안쪄서 싫었는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일하고있는 작업실에 들어와 you skinny bitch라고 하고 나간다거나. 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미대이니까 외모에 컴플렉스있는사람이 많고, 살면서 얼마나 괴로운게 많으면 저럴까 등등 별의 별 합리화를 해줬던것같네요.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심리적으로 불안정했고 피해자였던 시간이 너무 길고 평생을 가스라이팅 당해와서 ‘사람이 힘들면 원래 그럴 수 있다’ 이말을 법처럼 생각했던게 학창시절 주된 에너지 시간 감정낭비의 이유였던것 같습니다. 가장 깊게했던 연애에서도 폭력적인 가족들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다행히도 지금은 그게 잘못된거라는것을 거르는 눈이 생겼다는게 감사합니다. 부모님은 제가 다 크고 이제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되었고, 대인관계나 사회생활에 문제없이 성장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하는 말은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말을 해도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제 머리 꼭대기에 앉아 찍어 누를 궁리만 하는 사람들처럼 시비를 걸어댔죠. 제 방 물건을 맘대로 뒤지고 제 방에 맘대로 짐을 쌓아두는등 매일 몇년간 하지말라고 해도 미안하다하며 다시는 안그런다며 같은 짓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더니 내집에서 내가 내맘대로하는데 니가 뭐라고 이래라저래라냐! 하는 요상한 논리를 펼치시더군요. 이미 오빠는 독립 한 상태였고, 엄마가 오피스텔 보증금을 대주고, 차를 사주고, 저에겐 도와준적 없다고 거짓말을 한거더군요. 오빠가 나중에 말해서 알았습니다. 저도 독립하려고했지만 초년생이라 목돈은 적금으로 장기간 묶여있고, 서로 불편하니 나는 내가 독립하는게 맞는것같고, 문제 해결을 위해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다. 단지 지금 당장 목돈이 부족하니 금전적 도움을 좀 달라고 말을 꺼냈을때 ‘그릇이 밖으로 돌면 이가 나간다’ 라는 이상한 말을 하며 여자는 시집갈때까지 부모랑 있어야한다. 하며 ‘나는 너를 계속 괴롭힐거다’는 속내를 내비치는걸보고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녀는 오빠나 아빠에게 피해자 코스프레를하며 쟤가 대든다 대든다 왜저러는거냐 어떤 말을 하더라도 ‘너만 가만히 있으면 집안이 평화로운데, 왜 긁어 부스럼이냐’ 며 감정 쓰레기통 노릇을 계속 하라고 강요하더군요. 아무리 생각하고 심리학 공부를 해봐도 그들은 인격형성이 온전히 되지않은 미숙한 사람들로 밖에 결론이 안났습니다. 부모님이 자라난 지나치게 유복했던 가정환경이 문제였던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재벌도 아니면서 뭔가 본인들이 다른 사람들 위에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인것 같습니다. 돈이 있으면 남들보다 위에있는게 아니고, 본인들 능력이나 노력 없이 그저 운이 좋게 부모를 잘만난것 밖에 없는데도요. 상황판단이나 문제 해결 능력 자체가 0이고, 스스로 감정 컨트롤이 안되는 구조적으로 전두엽 기능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 같습니다. 외가 어른들 중 실제로 정신병원 약 먹는 사람이 둘이고 우울증 스키조 망상장애 등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딸들 (평생 사회생활 안해봄) 이 서로 엄청 타이트하게 서포트 해주는 정신승리에 특화된 가족문화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서로 자식들 비교하고 판단 저울질하고, 남한테 피해 끼치고 말로 천냥 빚 지고도 교회가서 회개기도드렸으니 본인들은 천국 가시는 걸로 굳게 믿고 계세요. 그리고 물려받은 돈이 본인들 훈장인냥, 자식들 위로 돈쥐고 흔들면서 ‘부모도 돈이 있어야 힘이 있지’ 라는 말을 아주 스스럼 없이 하며, 극 소수의 몇 안되는 사람들이 한 말이 진실인냥 이 세상의 전부인냥 편협한 세계관을 과잉 일반화 하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어릴땐 성별 외모 성적 학교 커서는 연봉 직업 그리고나서는 배우자 까지 저울질하고 등급을 매겨서 자식들을 물건취급했습니다. 재작년 겨울 제 사촌 동생이 자살을 했습니다. 자라며 남아 선호사상에 비호를 받는 망나니 남동생의 폭언과 폭행을 당하고 ‘착하고 말 잘 듣는 딸’ 프레임이 씌워져 서로 이 부분에 대해 깊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만날때마다 약간씩 불만 토로를 하곤 했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어른들이 하는말에 화가 나더군요. “어떻게 자식이 부모한테 이런짓을해” “부족한거 하나 없이 키웠는데” 등등. 역지사지라는 건 말로만 알지 실천할줄 모르는 사람들의 막말이었죠. “누나가 우리한테 어떻게 이래” 라고 말하기 전에, 오죽하면 그랬을까 왜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을까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런 덜자란 어른들은 아직까지도 어린시절 제 못난이 사진 꺼내서 제 남편한테 보여주고 보라고 보라고 하다가 농담으로 넘기니 ‘사람이 겸손해야지’ 하며 혀를 차고, 무슨 맞는 말만 하면 건방지다 내말이 무조건 맞는거다 등등 근거없는 가스라이팅 계속 하고 계십니다. 유치함이 극에 달합니다. 조카랑 물건 자랑 배틀도아니고, 말도 안꺼냈고 관심도 없는데, 나 가방샀다 차바꿨다 자랑을 하길래 받아주니, 한술 더떠서 제가 갖고다니는 물건 지적질합니다. 하도 빤히 쳐다보길래 껴보실래요? 하니, 피어싱 위치가 안맞아서 디자인이 덜 산다느니.. 말하지도 않았는데 뭐샀냐 물어보고 자기는 이건 괜찮고 저건 별로라느니… 저는 일단 물건 산게 왜 자랑해야하는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방은 물건 넣고 다니려고 사는거고 차는 굴러다니니까 타는거고. 선택은 개인의 몫이고 남이 뭘 하든 관심이 없는 편이라 더 이해가 안돼요. 남의 집이 몇평이고 어디 살고 무슨 차 타는지 묻거나 궁금해하지 않았는데 셀프 자랑 하는게 이상해보입니다. 남편이 금융권이라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는 편인데, 좋은 투자건이 있어서 투자를 했다. 이러이러한게 있는데 혹시 관심 있으시면 자료 보내 드리겠다 하니 ‘돈을 그렇게 많이 막 해도 돼? 잘 알아보고 해야하지 않겠어?’ ‘그게 말이돼?’ 라며 저는 좋은게 좋은거라 시간들여 신경써서 정보전달을 해도 의심받고, 사기꾼 취급 받습니다. 제 남편까지 싸잡아 깎아내리더군요. 근면성실한 사업가가 힘들게 번 돈을 강탈하는 업계가 금융권이라구요. 제 남편도 서울대 출신 업계에서 인정받는 전문가임에도 저랑 같이 싸잡혀 반복적으로 평가절하 당했습니다. 워낙 털털한사람이라 별소리 다한다 하고 넘어갔지만, 저는 민망하고 미안했구요. 이제는 구체적으로 문제를 인지 했고, 제 성격형성의 과정과 결과 이해했습니다. 큰 가족도 안만날거고 직계 가족과 인연도 끊었습니다. 그럼에도 화가 납니다. 상담을 받으면 화가 가라앉을까요? 누군가에게 말을 하면 더 화가 납니다. 남편에게 얘기한거로는 부족하고, 남편도 일로 바쁘고 힘든거 아는데 자꾸 부담 주는것 같아서 미안합니다. 시간만이 약인건지.. 억울한 마음이 풀리질 않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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