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했던 사람이 너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습니다.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불안|집착|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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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했던 사람이 너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습니다.
커피콩_레벨_아이콘urbannomad
·3년 전
오래전의 이야기입니다. 고등학교 무렵의 제 상황을 설명하자면, 단 한명의 친구도 사귀지 않고 중학교때 친구들과 계속 놀았을 정도로 학교 생활을 하지 않았었습니다. 공부도 대충, 그렇다고 재밌게 놀았느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사실 고등학교를 떠올리면 공허한 무언가만이 계속 떠오를 뿐입니다. 그러다 고 3이 되었습니다. 운 좋게 중학교때부터 친한 친구와 반이 되었고, 고 3이라는 무게는 딱히 신경도 쓰지 않고 공허하게 하루하루 대충 때울 생각이었는데, 제 대각선에 있는 여자애가 눈에 띄더라고요, 그때 그 순간 그 여자애에게 확 끌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꽤 제 취향에 맞는 외모라서 그렇게 혹했던거 같습니다. 그래서 한달만에 바로 고백을 했습니다, 편지로.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일입니다만,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살짝만 생각을 바꿔 자기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반에서 아무 존재감이 없고, 공부를 잘하지도, 잘 놀지도, 살이 꽤 쪄서 100키로 가까히 돼 보이는 사람이 자기한테 편지로 고백한다? 결론은 2시간만에 거절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편지는 그럴듯하게 썼던것과 별개로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 때의 저는 아마도 그렇게 생각을 못했던거 같습니다. 골치아픈 고3 생활이 불안하게 계속되었습니다. 남은 고등학생으로서의 생활이 눈치의 연속이었지요. 그 전에도 맞지 않으려고 눈치를 봤습니다만, 이건 좀 다른 눈치었습니다. 이제 대충 그 여자에 근처만 가도 미안해 죽겠는겁니다. 아무래도 쥐뿔도 없는 자존심에 반대급부로 그렇게라도 뭔가 간신히 정신을 버티게 하기 위한 방법일수도 있겠다만, 어쨌건 어쩔수 없이 눈길이 가고, 행동을 의식하고 할 수밖에 없어서 미안했습니다. 고백을 한다고 취향이 달라지는건 아니니까요. 그렇게 고3을 어영부영, 수능도 어영부영, 순전히 재수가 좋아 후진 대학을 피해 어쩡쩡한 대학을 붙었습니다. 졸업식날 , 결국 못참고 사진이라도 같이 찍으려 했습니다. 물론 거절당했습니다. 또 미안해집니다. 아마 여기까지만 해도 제가 인생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아는 사람도 손에 꼽지만) 가장 많이 미안한 사람이 될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면 흔히 인터넷에 보이는 아싸의 사랑꾼 이야기일수 있겠다만, 진짜는 지금부터입니다. 새 대학은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점수 맞춰서 온 곳이니 맘에 들리가 없으니가요. 적당히 관심있는 동아리를 찾아 나섰는데, 동아리 두개가 눈에 띄었습니다. 하나는 서브컬쳐, 나머지 하나는 개인적인 관심사에 맞는 동아리. 서브컬쳐도 적당히 즐기고 있어서 갈까 생각이 들었는데, 그냥 개인 관심사에 맞는 동아리를 갔습니다. 동아리 자체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바로 옆에 서브컬쳐 동아리 문에서 그 여자애가 나오기 전까진. 잘못본것 같은데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너도 이 대학 다니니?"라고 하고 제 동아리실에 들어갔습니다. "어,..응" 저쪽도 당황한것 같았습니다. 그쪽도 들어가고요. 그때부터 미치는 겁니다. 이제 동아리 활동 시간이 약간 겹치거나, 강의 쉬는시간에 가끔 마주치는 상황이 계속 만들어 지는 겁니다. 또 신경쓸수 밖에 없고, 또 그렇게 미안해하고, 말은 할수 없고, 사랑인지 뭔지 모를 감정은 타들어갑니다. 생각보다 끝낼 타이밍은 금방 왔습니다. 대학은 재미가 없었고, 강의는 개판으로 들었고, 그러면서 낙제를 주지 않는 교수들을 신기해 했습니다. 결국 전 군대 휴학 3년에 개인 휴학 1년을써서, 방랑하기 시작합니다. 그 여자애는 휴학을 위해 마지막으로 들른 눈 쌓인 대학교 정문에서 스치듯 봤습니다. 머리가 짧았는데 약간 길렀더라고요. 그래도 취향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일들을 하고, 많은 일들을 겪고, 많은 사람과 많은 나라를 보았습니다. 무기력한 삶에 의미를 닮은 욕망을 채우고, 나름대로의 철학을 세우고, 결국에 늦은 복학을 선택하면서 다시 대학교에 왔습니다.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1명밖에 없고 과 이름도 바뀌었더라고요. 어쨌든 긴 시간동안 힘들때마다 그 여자애 얼굴이 떠올랐지만, 서서히 무의식의 저편에 풍경처럼 바뀌었습니다. 다시 보더라도 난 예전과 다르니 담담하게 넘길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최근의 일입니다. 친구와 카폐를 갔는데, 아무런 생각없이 매뉴에 대해 점원에게 묻던 중 점원의 마스크 위 눈을 마주쳤는데, 어째 엄청 익숙한 느낌이 들고 불안해지는 겁니다. 아, 걔 같은데. 맞는거 같은데, 자문 자답을 계속하며 주문을 마치고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를 마셔도 그 의심은 더더욱 커져서 친구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안들리는 지경에 이르었습니다. 결국 또 그대로 나가면 이 의심에 짓눌릴거 같아서. 나갈때 고등학교와 반을 물어봤습니다. 다 맞더라고요. 저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냥 대답없이 나갔습니다. 부질없습니다. 시지프가 그렇듯 돌을 산 위에 세워놓겠다는건 오만함이었습니다. 전 딱히 변한것이 없고, 결국에는 멍청한 짓을 다시 반복하는 겁니다. 도대체 그 순간에 왜 내 편지는 어떻게 됐냐고 머릿속으로 물어봤을까요? 그리고 다시 왜 미안해 할까요? 아무 관심도 없을 텐데. 아무 의미도 없을 텐데. 하필이면 시험기간에 이런 일이 생겨 공부도 재대로 안되고 참 곤란합니다. 그래서 늦은밤 되지도 않는 공부를 때려치고 이런 글을 씁니다. 그런데, 이건 뭘까요? 거진 6년을 가는 짝사랑? 아니면 파산한 인간관계의 메타포? 그냥 뭣도 아닌 찌질한 집착? 3개 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데 그여자애랑 하루종일 이야기하는 꿈을 꿉니다. 일어나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긴장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그 이상은 생각이 안나더라고요. 섹스 생각은 한번도 난적이 없던거 같습니다. 전 연애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보통 책을 읽으면 비문학이거나 고전 문학을 읽는 편입니다. 그러다 가끔, 연애물 같은걸 우연찮게 보게 되면, 그 애 생각이 떠올라 반도 읽지 않고 접어버리게 됩니다. 그저 상처라 하기엔 너무 골치아파 여기에 적습니다. 최대한 감정에 충실하게, 맥락도 감정을 따라가게 썼습니다. 길게 썼지만 지루하시지 않았길 바라면서. 이게 뭐가 문제일지 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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