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혐오, 이혼,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불안|폭력|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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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혐오, 이혼,
커피콩_레벨_아이콘fatin
·3년 전
안녕하세요. 참 사연이 많은 곧 40이 되는 여자입니다. 오늘은 이곳에 추석 이후로 줄곧 마음에서 떠나가지 않는 불안에 대해 적어보고자 합니다. 4족보행때에도 아빠의 음주후 주사를 부렸던 것을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정도로 어릴때에도 충격이었겠죠.. 그냥 어렵풋한 기억이 아닌 당시 아파트 구조와 보았던 시각이 기억이 납니다. 당연히 전 거의 평생을 아빠의 주사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커왔었습니다. 그것이 1주 혹은 2주동안 별일이 없을때엔 더 불안했습니다. 분명히 아빠가 주사를 부릴 때가 되었다고 생각 했으니까요. 아주 어릴때엔 공포였지만... 어느새 혐오로 변해갔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때엔 나가서 싸우라고 소리도 질렀어요. (그랬더니 진짜 나가서 싸운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이 그 어린 제게 어이없게 느껴졌습니다. 사람에 대한 폭력은 거의 없었지만 온 집안이 다 부서졌었습니다. (문득.. 지금 든 생각인데 뒷정리는 아빠는 왜 안했나 모르겠네요. 나 원 참) 이런 반복되는 폭력에 대한 공포는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아빠가 회사를 그만 두시고 사업을 하시게 되면서)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그 사이 수 많은 에피소드들이 스쳐지나가지만 적을 힘이 없을 정도로 생각나는 것들이 참..... 마음이 힘드네요. 그렇다면, 엄마는... 전 유년시절 엄마를 밖에서 ***년이라 욕하고 다녔습니다. 엄마가 절 사랑한다는 것을... 전 사실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배워서 알지요. 부모가 자식 사랑한다 하니까. 하지만 엄마는 저에게 무의식적으로 본인이 견디기는 힘들지만 타인에게는 분출하지 못하는 감정을 함부로 쏟아내도 괜찮은 ***스러운 쓰레기통에 불과했다고 확신해요. 공책에 낙서하고있는 저에게 이런 행동을 하냐면서 머리를 벽에 수차례 박아버렸던 일은 아직도 종종 생각나는 일화예요. 어느날 갑자기 싱크대 문을 닫으며 "***" 하길래 저게 좋은거구나 하고 따라했다가 저 그날 ***뻔 했습니다. 초등학생때였나.... 3학년 미만이었을 거예요 자살하고싶다는 생각에 나름의 유서를 적어 어디다 놓았었는데 엄마가 그걸 청소하다 찾았는지 저에게 추긍하기 시작했어요. 그것도 매우 무섭게요... 본능적으로 거짓말 쳤어요. 선생님 놀이 하는데 그런 생각 하지 말라고 하는 역할 놀이를 했다구요. 그걸 듣고는 엄마가 갑자기 안아줬던 기억이 있는데 그 안았을때.. 하나도 따뜻하지 않고 싫었던 기억이 나요. 왜냐면 전 그 막다른 순간을 적었던 그 사실이 공개되었을때 조차도 공감받지 못했거든요. (어쩜 알아달라고 적었던것도 같아요) 엄마는 집착도 좀 있었던거 같아요. 고등학교때였나.. 들어올 때가 지나서 안오면 난리가 나요 핸드폰에는 전화가 10통?은 와 있던걸로 기억해요. 그때 그만한 사정이 있어 늦었던 시간이 10분 정도 였던걸로 기억하는데.. 어쩜 제 기억에 시간에 대해선 외곡이 있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무슨일이 있었는지 사정에대해선 듣기도 전에 불같이 화를내는것에 숨이 턱턱막히길래 이런것을이 좀 힘들다 어떻다 심정에 대해 솔직하게 울며 불며 사정하듯 얘기한적이 있었는데 그럴때마다 저에게 돌아오는건 똑같았어요. 1. ***하네 2. 자식이 부모 속썩이면 그 자식은 잘되는 꼴을 못봤다. 하소연 좀 하면 전 저주를 받았죠.. 뭐 간단히 적어서.. 저에게 엄마 아빠에 대해선 행복한 기억보다는 불안의 원인에 대한 원망에 대한 기억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부모에게 늘 전 학대 아닌 학대를 당했다고 생각해요.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전 남동생에게 엄마에게 받은 가학을 고대로 퍼부으며 자랐던것 같습니다.... 5살 터울이기에 남처럼 살며 제가 거의 가학을 했던것 같아요.. 뭐만 하면 다 맘에 들어하지 않고 말투 행색 모두 약간 일진이 모범생에게 시비걸듯 행동했던것 같아요. 일예로 동생이 하루는 초등학교에서 수영장을 가는데 뱃살이 보여서 걱정이라는 통화를 하는데 제가 깔보며 욕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글로만 적으면 굉장한 가정파탄 가족으로 보이실 거예요.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모습이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밖에선 매우 화목하고 많은이들이 부러워 하는 가정이었다는 겁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저희는 이러한 폭력의 시간들이 주중에 있다가 교회만 다녀오면 하하호호 급 해결되어 옵니다. 물론 두분의 분위기만 해결인 것이죠. 어쩔땐 금요일에 싸우면 아 곧 괜찮아지겠네. 라고 생각하며 안심했던 기억도 있어요. 교회 사람들은 저희가족을 늘 부럽다며 저에게 말했어요 "어쩜 이런 자상한 아빠가 다 있니 부럽다." (네... 주사부릴때만 아니면 진짜 엄청 자상한 100점 아빠죠) "엄마는 어쩜 이렇게 노래를 잘하시니??" (뭐 저랑은 상관 없습니다만 괜히 으쓱 했어요) 겉으론 아빤 복지 좋은 회사 다니는 능력자에 엄마는 예쁘고 노래 잘하는 솔리스트였어요. 거기에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아빠의 다른사람들만 잘 아는 멋짐... 대체 뭐였을까요... 뭐 그닥 궁금하진 않습니다만.. 덕분에 전 그들의 최면과도 같은 부러움으로 불안을 덮고 어린시절을 보냈고 이것의.혼란은 고등학교 사춘기시절부터 스믈 스믈 기어나와 이후의 저의 자아의 모든 면을 지배하며 교회에서 기도하는 시간마다 부모를 증오하는 마음과 그 마음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방황했습니다. 증오와 죄책감사이 엄마의 이 한문장은 양념이 되어 더더욱 저를 가학하게 했어요 '다들 그러고 살아' 그렇게 전 거의 일평생을 부모를 증오하면서 이해하기 위해 종교의 힘을 빌리고 그 집단에서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보고 다독였습니다. 일단 저도 살아야 하니까요. 살아야 해서 그랬다기 보다.. 살아있으니까 그랬던게 맞는 표현이예요. 아빠를 이해하기 시작한것은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였어요. 정말 힘들더군요.. 돈 쓰는건 금방인데 버는건 진짜 힘들었어요. 그시절 남자집단은 더 힘들었겠다.. 싶었어요. 그자리에 앉아봐야 이해할수 있다더니 그말이 정말 딱 맞았어요. 상처가 치유되었다는것이 아니라.. 그정도로 힘들었겠다라고 감히 예측을 해볼 수는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조금씩 부모를 품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어요. 미우면 사랑하게 해달라고 처절하게 울부짖었었죠. 그때에 한창 홀리했던것 같아요. 그렇게 홀리할때에 전 아프리카로 해외봉사활동을 떠났습니다. 코이카로 2년의 임기였어요. 그때 참 많이 인격적으로 성장했던것 같아요. 부모와 떨어지니 애틋한 마음이 난생 처음으로 생기고 다른 동료들과의 대화속에서 흔쾌히 보내주신 부모님이 참 멋졌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아프리카로 파견간지 얼마 되지 않아 큰 사고가 있어 한국으로 후송 당한 적이 있었고 사고는 굉장한 공포스런 일이었어요. 정말로 죽을뻔 했었는데 기적처럼 살아났고 그 공포를 사랑으로 덮기위해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갔어요. 모두가 트라우마에 벌벌 떨거라 여겼고 다시 돌아갈때에도 미친거라 했지만 정말 잘 극복했고 그 누구보다 활동을 잘 마무리 짓고 돌아왔어요. 죽을고비도 넘겼으니 그 누구보다 모든일을 잘 헤쳐나갈 자신이 있었어요. 그런데, 집에 돌아와보니 집이 쫄닥 망했더라구요 엄마가 한국에 돌아와 쉬고있는 저에게 코이카에서 받는 천만원을 아빠가 어떻게 알았는지.... 저거 ***이라고... 그걸 어떻게 달라고 할 수 있냐고..... 하 저도 좀 놀랬어요. 목숨값이라고 생각하고 죽을때까지 이건 건들지 말아야지 생각했었는데... 그리고 직접 솔직하게 얘기하면 내어줄것을 이렇게도 간사하게 엄마에게 나한테 말해보라 시켰나... 내가 아는 아빠는 그래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드렸죠. 이후로 전 아빠 핸드폰번호를 차단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니,30살이 다되도록 큰돈은 아니어도 몇천도 없는 저도 좀... 많이 부끄럽긴 헸습니다.. 무튼 전 해외봉사활동을 하며 성장했다고 여겼던 인격이란 단어가 비웃기라도 한듯 한국에 오자마자 아빠를 증오했고 아무리 주사가 있었다 한들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하며 더더욱 증오 했습니다. 그리고 2년 흘렀나.. 부모에게 일언방구도 없이 급작스럽게 결혼할 남자가 있다 하고 서둘러 결혼을 하고 서둘러 이혼을 했습니다.. 결혼생활에 대한 기억은 넘 길기도 하고 쓰다가 토할것 같아서 접습니다. 이혼후 심적으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고 죽을뻔했던 사건보다도 저에게 이혼은 너무너무 힘든 사건이었습니다. 왜냐면 죽을뻔했던 일은 전적으로 전 피해자였지만 이혼은 피해자와 동시 가해자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미성숙한 상호작용에대한 결과랄까요.. 이혼후,, 집에 있을때 동생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코이카에서 지급받았던 천만원에 대한 아이디어는 아빠가 아니었다는 거예요... 하....... 아빤 회사가 어려워 자금에 대해 걱정하고 있던 차에 여기저기에서 다 끌어다 써도 모자른 상황이었나봐요 근데 그때 엄마가 윤영이 코이카 끝나면 천만원 나온다고.. 했데요 아빠는 제 사건도 있고.. 해서 안그래도 힘들었던 일이 있었는데 그럴순 없다 했는데 엄마가 저에게 얘기해본다고 했었더랍니다..... 제가 오해하고 있는걸 동생이 안타까워서 엄마에게 비밀이라며 얘기해주는데..... 와.. 이때부터 엄청나게 화가 미친듯이 솓구치는데........ 어떻게 한사람을.. 이렇게 악하게 만들어버리고 모른척 할 수가 있지.............. 소름이 돋더라구요.. 심지어 전 2년넘게 아빠 번호를 차단하고 거의 ***취급하는걸 엄만 옆에서 다 보았고 절 위로하면서 너 스스로 감정을 잘 마무리 했으면 좋겠다는 조언까지 했거든요.. 하... 적으면서도 진짜 미친거같아요 요즘 엄마가 제가 안정되어진 생활을 보며 순진한 표정으로 행복해하는걸 보면 이질감이 듭니다. 소름돋아요. 웬지 제가 모르는 오해가 더 있을것 같아요. 어쩌면 평생을 이렇게 알게모르게 이간질을 해왔을 수도 있고 엄마와 사는게 힘들어 아빠가 주사를 부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전 지금 재혼을 한 상태입니다. 다행히도 현 남편은 마음이 바다와 같이 넓어서 제가 속이 좁아질 때마다 저의 마음을 아우러 주어 현재는 불안도가 많이 낮아진 상태입니다. 재혼후 절 돌아보니 전 엄마와 닮은 구석이 참 많습니다. 오빠도 저보고 장모님이랑 똑같다구 해요. 아마..엄마가 저와같은 이런 모습이었다면.... 직장생활이 매우 힘들었고 조금은 미성숙한 어른이였다는 가정하에.. 아빠의 주사가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재혼생활 속에서 안전한 오빠의 바운더리가 생기자 저에게 저를 돌아보는 마음의 여유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어요. 전 제가 이혼했던 가장 큰 원인이 제 자신을 스스로 착각한것들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전 처녀때 말버릇처럼 이렇게 말하고 다녔어요. '돈 중요하지 않아. 돈은 사람의 편리를 위해 만든 종이쪼가리일 뿐이야. 열심히 사는게 중요하지' 전 제가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줄 알았어요. 그런데..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면 전 이혼 안했을거예요. 갈등의 시작이 돈문제였거든요. 이 문제에 대해 자각하기 시작한건 오빠와 재혼생활하며 금전적으로 걱정이 없게 되니 편안해진 마음을 돌아보며 깨닫게 되었어요. 그런 말을 하며 타인에게 멋져보이고픈 마음이었을까요..? 무튼 전 정말로 상당히 오랜시간 저의 생각을 착각하며 살았었어요. 이혼은 제 자신을 정확히 몰랐으니 생긴 당연한 결과라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오빠와 함께하며 한층 평안해진 마음으로 오랜만에 코시국에 친정에 오래머무르려다 가족들의 의사소통 모습을 보며 숨이 턱턱 막히고 그나마 우리집에서 가장 정상이었던 동생이 엄마아빠와 비슷해져있는 모습을 보니 토할것 같아 분출할 무언가를 찾다 마인드카페를 검색해 찾아보고 깔고 집안일과 오빠 핑계대고 다시 집에 와버렸습니다. 내일모레면 40인 늙어가는 이 시점에도 부모를 품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하루에도 몇번씩 화가 불구덩이처럼 솓아오르는 주기가 찾아오는 상황에 대한 괴리속에서 머리로는 이럴 나이가 아닌데 하면서도 아직도 혼란스러워 하는 제 자신.. 그리고 평생을 의지했던 종교에 대해 매우 이용당했던 주문과도 같은 저주의 양육방식.. 그리고 요즘 찾아오는 종교에 대한 의문점들.. 나는.과연 종교 공동체의 역속성에 사용이 되었던 것일까.. 이런 정체성혼란? 을 요 며칠..아니 몇달..전부터.. 엄청나게 겪으며 부모에 대한 증오와 죄책감 이것을 어떻게 ....... 해야 할지..... 탓을 하면 안되는데.. 아주 원인이 없어지진 않고.. 이따금씩 비슷한 패턴으로 찾아오는 이 감정들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분리하고 바라볼 수 있을까요.. 또, 해결점을 찾아도 또 찾아오는 의문점이 생길때에 다시 성숙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처음엔.. 몇 자만 적을 생각이었는데 넘 길어졌네요 ㅜㅜ 중언부언 했을텐데 ㅜㅜ 그래도 잠시나마 뭔가 후련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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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81
· 3년 전
저와 비슷한 가정환경 인거 같아 그쪽 심경이 어떨지 조금이나마 공감이 가네요. 저도 이제 40 이라는 나이에 여러 정체성 혼란과 인생에 대해 여러가지로 고민 혼란을 겪습니다. 사실 이글을 읽기 몇분전에 제가 깨달은 어릴적의 저의 자신과 저의 부모님 상황, 그리고 깨달운건 그둘도 부모라는 역할이 첨이고 미완숙한 인간이며 그들 사고방식안에서 , 어쩌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무엇이 문제였는지 를 모르고 저희처럼 자아성찰할 정신넉 여유가 없고 세상살기에만 바빠 자식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몰랐었을거에요. 여기서 저는 아랄적에 겪었던 모든 모욕과 정신적 학대는 나와 상관없는, 저의 부모님 정신문제 였다고 판단했습니다 어릴적 자아를 찾아 위로해주고 다독여 주는것부터 시작하세요. 아직 어릴적에 풀리지 않는 앙금이 아직남아 항상 무의식속에서 자라나고 계속 괴롭힐거에요. 지금 전 이렇게 저의 깊은 자아를 찾아 나를 다독여 주고 있어요. 함내세요. 아렇게 우울하고 화난다는건 아직 자신이 소중하다는 전제가 있다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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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in (글쓴이)
· 3년 전
@yun81 감사합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