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친구야, 너를 처음 만난 게 내가 16살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죄책감|장례식|포트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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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사랑하는 친구야, 너를 처음 만난 게 내가 16살 때였나? 한 모임에서 키도 크고 언뜻 페퍼톤즈의 이장원과 착각한 나머지 사인해달라고 네 뒤에 크게 소리쳤지만 고개 한번을 돌리지 않더라. 그래도 뒤는 돌아보지 쫌! 하며 쫌생이 티 팍팍 내고 있을 때, 한차례 자리가 바뀌어 대화하고 나서 알았어.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이장원이 아니었다는 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직도 이장원님 티비에서 보면 닮은 거 맞는 거 같은데… 하고 혼자 갸웃거린다… 너는 그렇게 내 마음 한켠이 큰 뿌리 한줄기를 꿰어찼고 실제로 많은 것을 남겼지. 아, 근데 남겨준 것들이 딱히 실생활에서 아주 좋았던 적은 없지만 뭐….. 그…. 게이 레이더라든지 그런건…… 회사 주변에서 발동해보긴 하는데 뭐… 그게 나한테 별 도움은 안돼….^^ 알잖아…ㅋ….ㅋㅋㅋ..난 이성애자인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가 들리지 않는건 우리에게 문제되지 않았어. 처음엔 너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입술 모양을 보며 이해했고 익숙해지니 영어도, 한국어도 구별이 가능해져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도 다 들렸어. 보통 사람과 똑같이. 내가 입모양만 조금 명확하게 보여주면 소리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너에게 잘 들리는 내 ‘목소리’가 되었으니까. 내가 오빠라고 하면 정색하고 야! 라고 부르면 웃는 너가 참 신기했고, 어디가서 너에 대해 소개할때 뭐라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하면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친구라고 해! 나도 내 친구들한테 그렇게 말하는데.’라고 답한 신기한 너, 정말 친구라고 말했는지 ‘저 아직 열아홉살이라 클럽은 못 들어가요.’라며 손사레치자 눈 똥그랗게 뜨던 네 친구들. 가끔은 성인인 척 속이기도 하면 주변 반응을 보고 깔깔댔던 이상한 듀오, 너 그리고 나. 내 학창시절은 너의 대학시절과 맞물렸고, 내가 이제야 어른이 되니 너는 꿈을 좇는 나비가 되어 학생의 신분때 만큼 자주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는 많이 이어져 있었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만큼. 너에게 자주 표현했다면. 그랬다면 29살 나와 33살의 너로 얼굴을 마주했을까? 귀가 들리지 않던 너가 나에게 걸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전화’. 왜 나는 그 사인을 알아채지 못했을까. 요즘 드물어진 너의 연락을 왜 알아채지 못했을까. 내 SNS 하나에도 걱정하고 큰 감정기복을 달래주고 위로하던건 넌데, 나는 널 제대로 위로한 적은 있었을까. 너무 차가울만큼 차분한 답장 메세지를 보고 별일 아니라 생각한 나는. 너무 무심한 성격의 나는. 나는 대체 왜 이런 성격으로 태어났을까. 나는 너를 보낸 마지막 기억이 이따위 죄책감이였고, 가난이 뭐고, 돈이 뭐라고. 내겐 없는 돈이란 존재가 뭐 얼마나 대단하길래 꽤 지방이었던 장례식장조차 선뜻 가지 못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깟 차비인데, 1만원 한장이 귀중해서 하루가 위태로웠던 그때의 내가 혐오스러웠다. 내 마음 속 뿌리 하나를 온전히 떼어낼 수 없어 그대로 두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단다. 알지? 나 기억력 안 좋아서 매번 네 생일 까먹고 매번 너는 삐진 척할 정도인거.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 너가 떠오르는 순간마다 너의 기일이면서 생일이 되었어. 회사가 너랑 자주 갔던 곳이 많이 보이는 위치라 더 신기해. 가끔은. 거기에 너를 알고 있는, 아니면.. 너를 만날 수 있단 착각을 하거든. 클래식한 버버리 트렌치 코트에 슬랙스, 귀여운 양말과 닥터마틴을 신은 사람이 지나가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거나 너가 자주 입었던 알렉산더 맥퀸 코트만 봐도 심장이 멈춘다. 너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페도라, 너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포트폴리오백은 아직도 기억이 나서 눈에 선해. 그 안경이랑. 내 기억력치고 꽤 선방했지? 장례식이 끝나고 너와 친한 친구인 그에게 들었어. 너가 죽었다는 게 실감이 안나서 그 날 아무렇지 않게 아르바이트 중이었거든. 장례식장에 방문한 그가 남긴 메세지로 인해 너가 떠났다는 걸 체감하고 그 길로 나가서 핸드폰만 꽉 쥔 채 한참을 울었어. 소리내어 우는 거 진짜 오랫만이었는데. 예상외로 거진 한시간을 나가있었는데 알바 안 잘렸다. 유서에 적힌 나에 대한 내용. 재능 많은 내 친구, 너가 꿈꾸는 패션 디자이너 되어야 한다, 못 이루면 끝까지 쫓아온다. 야. 왜 안 오냐. 나 지금 패션 디자이너 안하는데????? 패션 전공조차 때려쳤는데 왜???? 왜 안와????????? 패션은 아니더라도 디자이너로 살고 있으니 용서해준거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넌 항상 용서가 너무 빠르다.. 매일 쫓아와 꿈에서 혼내주기라도 하면 좋겠지만, 이건 나의 욕심이지. 천국에서도 인싸라 바쁠 거 아냐. 거긴 COVID도 없으니 딱 좋지! ㅋㅋㅋㅋㅋㅋ 내 스무살 속 너는 영원한 스물네살로 남아 너의 나이를 앞질러가고 있어. 앞으로도 그럴거야. 가능하다면 나는 내 모든 사람들이 천국에 올라가고 지옥에서 그걸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이 된대도 좋으니 그들의 마지막을 다 지켜보고 가고 싶어. 그만큼, 너가 못 알아볼만큼 오래 살다가 갈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시도하려 해도 죽지 못하게 했던 너란 뿌리가 마음에 꽤 깊이 자라있어서 말이야. 내가 꿈꾸는 거 다 이룬 그 때 너 있는 곳으로 갈게. 너무 미안해. 사랑해. 가자마자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꼭 말해줄게. 그 곳에서는 내가 이빨빠진 할머니라 발음도 이상하고 어눌하겠지만 내 목소리가 잘 들렸으면 좋겠다! 나비. 매일 사랑하고 매일 미안해.
많이미안해보고싶어사랑해아주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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