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증과 이인증은 어떻게 극복하는 게 좋을까요
안녕하세요, 현재 20대 후반인 한 여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의 삶의 전반에 걸친 자아의 문제때문에
날이 갈수록 자연스럽게 살아보기가 힘들어서
혼자 극복하려고 애써보다가
뭐라도 타인의 의견을 들어보고 참고하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까지는 내면적으로 그렇게 큰 문제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해부터 서서히 뒤틀리더니
12살 무렵부터는 좀 싸이코패스 같았다고 생각합니다.
마음 속에 항상 살의가 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뱉기 무서운 말이지만
가까운 사람이든(가족 포함) 먼 사람이든
별별 방법으로 살해하는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다행히 차마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고
잔인한 영화를 보고 사람이나 생물이 찢겨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만족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뇌 성장이 뭐가 잘못돼서
편도체에 이상이 있었던 걸 수도 있지만
가정 환경의 영향이 없다고는 못하겠습니다.
해가 갈 수록 스트레스가 정말 극도에 달해서
고3 입시철에는 물론 저 뿐만이 아닌 모든 학생들이 으레 그렇지만
내가 죽던지 이 세상에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을 죽이던지 둘 중 하나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다행히 운이 좋아 입시가 잘 마무리되고 지원한 곳에 합격한 후로
사실상 거의 대학은 다니지 않다시피 하고
무기력증이 너무 심해 집에서 거의 하루종일 잠만 자거나
가끔은 모르는 사람을 자발적으로 찾아가서 성적으로 학대 당하기도 했습니다.
입시가 끝나면 스트레스의 근원이 사라질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습니다.
제 짧은 인생 전반에 깔려있는
모순과 뒤틀림들이 제가 급한 일로부터 해방되자
더 선명하게 다가와서 견딜 수가 없었고
그 시기부터는 마음 속에 증오나 살심은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 해를 가하면 안된다는 윤리적인 사상이 그래도 머릿속에 잘 자리잡아서(역설적으로 이게 브레이크가 돼서 지금은 타인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도 거의 말하지 못합니다. 말하면 고삐 풀릴까봐 시작을 못하는 것 같아요.)
저 스스로를 막 대하는 게 더 해소되는 쪽으로 바뀌어
누군가에게 맞고 강간당하고 한바탕 울고나면
속에 쌓여 있던 것들이 한동안 텅 비워지는 느낌이 좋아 생판 모르는 사람과 그런 관계를 가질 때가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넌 이런 쓰레기같은 애야.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다른 사람 스트레스 풀이용으로 막 다루어지려고 태어난 거야. 이거 봐 거기에서 피나 질질 흘리고 있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스스로가 밑바닥이라고 인정하니까 그만큼 안심이 되고 안락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무렵에, 정신과에 직접 가서 진단을 받아보지는 못했지만
추정해보건데 이인증이 시작됐던 것 같습니다.
제가 보는 시야와 현실간의 괴리도 크고
사람의 곁에 있으면 응당 느낄 온기..?뭐라 표현해야할 지 어려운데
사물이랑 똑같이 느껴졌습니다.
이전에는 그런 감각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주변에 물어보니 잠 못자서 그런 걸거라고 하길래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구요.
그 때까지만 해도 이 증상이 가진 위력이 뭔지 몰랐습니다.
무기력증과 이인증이 같이 오니까
모든 감각이 둔해져서
도대체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었는지 잘 모르겠어서
이인증이 생기기 이전의 기억에 의존해 지금까지도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행동과 말투와 모든 것이 인위적이고
때로는 상황에 살짝 어긋나는 반응을 하게 되기도 하고
상대방이 전달하는 말이나 행동의 크기가 어느정도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과잉행동을 하게 되거나 혹은 너무 미미해 잠깐씩 의아해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저런 일들이 지속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내 나이가 이십대인데 한번쯤은 다시는 못할 도전이라도 해보자,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20대 중반에 전공도 바꾸고 해외에 나왔습니다.
무기력증에 빠져있었지만 있는 힘 없는 힘 긁어모아서
어떻게든 살아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처음 2년 간은 제가 정말 바뀐 것 같다고, 나도 좀 사람이 되려는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만
결국 새로운 지역에도 적응을 하고 나니 똑같아지네요.
역시 근본적인 문제를 파고들어야만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든 사람들과 섞여살려면
상호반응을 해야하는데 저는 마치
눈을 가려놓고 제 앞에 있는 그림이 무슨 색인지 맞춰보라고 하는 듯한 느낌을
매일 매 시간 받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전의 기억에 의존해서 반응하는 것에 많이 적응이 되어서 마치 매뉴얼처럼 나오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너무 지쳐서 이 상태로 앞으로 남은 생을 살 생각을 하니 까마득합니다.
너무 중구난방 적기는 했는데 현재 겪는 증상만 적어놓으면 맥락이 없는 것 같아 떠오르는 대로 하소연까지 하고 말았네요...
사실상 죽을 병에 걸린 것도 아닌 사지멀쩡한 사람이 이런거로 심각한 고민이라고 하는 게 복에 겨운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겨내려 노력해본 거였는데... 제가 정신력이 약한 건지 점점 더 한계로 가까워지고만 있는 것 같네요.
혹시 비슷한 상황에 처해보셨다거나 아니면 그런 사람을 보신 경험이 있다면 조언 한마디 부탁드려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