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란 오랜 연애 끝에 평생 함께 해도 괜찮겠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상담|스트레스|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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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10년이란 오랜 연애 끝에 평생 함께 해도 괜찮겠구나, 그래도 이 사람이라면 용서해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결혼했던 것이 벌써 3~4년전 일로 남편과 나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이었고 내 건강이 그리 좋지 않았기에 결혼하기 훨씬 이전부터 남편을 비롯해 내 사정을 아는 사람들에게 결혼을 하더라도 입양을 했으면 입양을 했지, 내 아이는 낳지 않을 것이라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다지만 유전적 요인으로 인해 앓고 있는 병이 있었고 또 건강이 어떻고를 떠나 내가 배 아파 낳은 아이여도 부모로서 제대로 된 애정을 줄 수 없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러하였다. 내 부모님은, 내 가족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혼하고 각자 인생을 살아가는 것만이 답인 상황이었다. 아버지는 심한 의처증을 앓고 있었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게 매우 무심하였으며 자식인 오빠와 내가 봤을 때, 어머니는 좋게 말하자면 소녀 같은 사람이다. 부모님을 이혼 시키기 전까지 오빠와 나, 어머니의 인생 대부분을 불화 속에서 살았지만 서로가 서로의 곁에 있었기에 괜찮았고 나름대로 행복했던 것 같다. 그 행복 속에서 나만 제외해줬다면 더욱 좋았을 텐데,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고는 한다. 남편을 처음 만났던 시절의 나는 정말 죽지 못해 억지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고 그 길을 가기만 하면 됐다. 처음엔 너무 어렸기 때문에, 그 다음엔 초등학교 졸업 때문에, 그 다음엔 강박증으로 인한 거식증 때문에, 위궤양 때문에, 천식 때문에, 한번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에, 여기서 하면 되지 않니? 란 제한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너무 극심하였기에 어린 시절부터 나를 진찰해온 의사는 이런 상태라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며 제발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했다. 그저 욕구에 대한 제한만 받은 것이라면 좋았겠지만 정작 내가 받는 스트레스는 욕구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다. 나는 유독 사람에게서 받는 스트레스가 심했다. 일종에 트라우마 같은 것인데 3살이 되던 해, 그러니까 5월 무렵이었나. 어머니가 오빠만 데리고 집을 나가버린 적이 있다. 분명 자기 전까지 옆에는 오빠와 어머니가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아버지만이 있었고 아버지는 그 길로 나를 데리고 친가로 데려갔다. 그리고 엄마를 데려오겠다며 가버린 후에 한 번도 나를 보러오지 않았다. 이 무렵의 기억이 유독 조각나 있는데 지금도 선명한 것은 사람에 대한 혐오로 나를 꾸며주는 것을 좋아했던 엄마가 예쁘게 묶어주었던 머리가 관리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이상하게 잘렸고, 옷도, 신발도, 다 이상했다. 그 중에서 가장 견딜 수 없던 건 냄새였다. 성인이 된 지금에도 그때 기억을 떠올리면 구역질을 하다가 토하고 어디선가 역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엄마와 오빠가 집을 나간 그 해 겨울, 큰 이모가 나를 데리러 왔고 외가에서 한 1~2개월 정도 있다가 그 다음해가 되고 나서야 엄마와 오빠, 아빠가 돌아온 집으로 돌아가게 됐지만 꽤 오랫동안 아무도 믿지 못했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엄마를 겨우 보게 됐는데 이모 손잡고 도망칠 정도면 말 다했지, 뭐. 하여간 아내와 아들에게는 못되게 굴던 아버지는 나를 정말 너무 사랑했지만, 7살이 되기 전까지의 나는 어머니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 타인과 접촉만 하면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하고 울고 토하고 끝내는 앓아버릴 정도라 선뜻 손대지 못했다. 그 이후에도 이런 저런 일이 꽤 많이 있었으나 그닥 마음에 두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난 사람이 타인에게 정을 베풀 수 있을까? 다짜고짜 배척이나 안하면 다행이겠지. 내 인생 굴곡사가 오졌다는 건 사람이 살다보면 원래 다 그런거야. 흑역사는 누구나 있기 마련이고 그런 시간이 있었으니까 내가 이렇게 자랄 수 있었던 거야, 라고 웃고 넘겼지만 사람이란게 참… 그렇다. 인생 굴곡사 오지게 보내고 워크 홀릭이 된 나는 가족이고 남편이고 자시고 다 방치해두고 미친듯이 돈을 벌기 시작했는데(주 7회, 하루 13시간 이상 근무) 딱 그 무렵에 부모님이 이혼를 하게 되었다. 정확힌 부모님을 이혼시켰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버지는 의처증이 심했다. 문제는 그 의처증의 계기가 어머니에게 있었다는 거? 원래 어머니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군대를 간 사이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반해 쫓아다니다가 기어코 임신시켜 빼앗아 갔다, 라는 과거가 있었는데 말은 안하지만 사실 어머니는 만나지 않았을 뿐, 꽤 최근까지 그 사람을 잊지 못해 그리워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걸 알고 있었고. 어머니는 기억에 없다고 하는데 아버지가 그랬다고 하더라. 어머니가 자고 있을 때, 안고 자려고 건드니까 성질 부리면서 「손대지마, 나 데리러 올 사람 있어.」라고 했다는데 글쎄… 한 70% 신빙성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폭력을 정당화 시킬 순 없다. 오빠와 나는 자라온 환경이 좀 그랬던 탓에 보통 성격이 아니었다. 말싸움이 주먹 다짐으로 변하는건 흔했고 한창 부딪히던 때에는 입안이 너덜한 건 물론 서로 머리도 자주 깼을 정도라. 나랑도 꽤 심했지만 아버지와 오빠는 유독 심했는데 그 중 몇몇 일화를 언급하자면 실수로 홧김에 쳤다가 아버지 어금니 나간 사건과 차문 박살 사건이 되시겠다.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은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손을 댔다가 오빠와 내게 들켰다는 것이었는데 우리가 보는 앞에서 그러지 않았을 뿐이지, 단 둘이 있을 때에는 자주 손을 올렸고 그 날은 내가 주말 근무로 인해 정말 바쁜 날이었다. 한창 바쁘게 일하고 있을 때, 이모에게서 어머니가 쓰러져서 응급실에 와있다는 연락을 받았고 오빠에게서는 아버지 고소에 대한 연락이 왔었다. 그날도 평범했다더라. 평범하게 아버지와 오빠가 부딪혔고 안방에 단 둘이 남게되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그로 인해 발작을 일으켰다고… 그 당시 오빠와 내 나이만큼 쌓인 부모님의 이야기가 무수히 많았기에, 우리가 어머니를 그렇게 보호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의 눈을 피해 계속해서 폭력을 쓴 사람을 더 이상 어머니 곁에 두면 안되겠다 싶어, 이혼을 시키기로 결심했다. 두 분 중 한 분을 굳이 살려야 한다면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였기에. 아버지는 있으나 마나 아무래도 좋은 사람이었지만 어머니는 아니었기에. 어머니는 되도록 합의 이혼을 하고 싶다고 하셨으나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고소를 진행하였고 임시로 접근금지도 받아냈다. 그 과정에서 소녀 같은 어머니 덕분에 꽤나 머리 아픈 일들이 많았지만 진행은 꽤 순조로웠다. 아버지는 꽤 오랫동안 이혼 안하겠다며 버티셨는데 어느 날, 내게 변호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여차하면 법정에서 내가 증인으로 나서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이런저런 준비하면서 오빠와 나, 어머니는 심리 검사를 비롯해 이런 저런 상담을 받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내 기억이 참…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증인으로 채택될 정도로. 아마 아버지는 내가 증인으로 설 뻔했다는 사실은 모를 것이다. 내가 그 정도까지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 모를테고. 결국은 고소를 취하하는 조건으로 합의 이혼을 하게 되자, 아버지는 어머니께 오빠와 내게 재산 상속을 포기하는 각서? 같은걸 적어 공증 받자고 했고 나는 그대로 아버지는 부양의 의무 포기하고 평생 보지 않겠다는 내용까지 추가해 공증 받고 호적을 파자고 하니 좋게 합의 이혼만 하시더라. 그 모든 과정을, 내가 내 아버지를 어떻게 잘라내는지를, 곁에서 봤으면서도 바람을 핀 남편의 머리는 생각을 하라고 달린 것이 아닌 그저 목 위에 장식품으로 달려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내 아버지가, 내가 자라온 환경이 그랬기에, 모든 상황을 염두해 두고 결혼 전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바람은 딱 한 번만 용서해줄 것이며 그 이후엔 얄쨜없을 것이라고. 처음엔 참 많이 울었더랬다. 일에 미쳐 살긴 했지만 그래도 내 남편이라고 줬던 마음이 있었으니까. 그 다음엔 어이가 없더랬다. 생각을 하라고 달린 머리라면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할텐데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놈년이 불나방처럼 나댄다고. 그 다음엔 잘라낼 생각을 했다. 어차피 혼인 신고도 하지 않았고 슬하에 자식도 없으니 깨끗하게 정리하고 각자 인생을 살자고 하니 남편이 놓아주지 않더라. 그래서 딱 한 번 용서해준다고 했으니 깨끗하게 정리하고 더 이상 뒷말 들리지 않게 조심하라고 했다. 결국 귀찮음을 무릅쓰고 내가 정리했지만. 그 후로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내로남불 참 오지구나, 싶었다. 다른 남자 만나서 또 다른 가정 파탄낼 짓거리 하고 돌아다니는걸 보아하니 그 여자의 머리도 생각하라고 달린 것이 아닌 목 위에 달린 장식품인가 보다. 지금은 잘 살고 있습니다만 앞으로도 혼인 신고는 하지 않을 것이고 자식 또한 낳지 않을 거 같네요. 관계를 끝냈으면 끝냈지, 이 이상 더 엮이고 싶지 않습니다.
평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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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kuxj
· 3년 전
와 그걸 왜 다시 받아들여주고 데리고 사시나요.. 대가리가 장식인 것들은 하루빨리 처분하시고 더 평온해지셨으면 좋겠지만 작성자님께서 알아서 하신걸테니 뭐라 못하겠지만 막판에 남편이란게 바람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갖다버렸겠지!하며 속시원히 읽다가 속이 얹혔어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