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어쩌다 한번씩 꾸던 악몽을 자주 꾼다. 최근에는 거의 매일 꾸고있다. 아마 낮에 끊임없이 연상되는 기억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이전엔 악몽을 꾸고 나면 옷이 축축하게 젖을 정도로 식은땀을 흘리고는 했는데, 최근에는 자는중에도 발버둥을 쳐서 그런지 발톱이 자주 깨진다.
악몽은 늘 비슷비슷하다. 갑자기 덩치 큰 남자가 내 몸을 짓누르고 (성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폭행하려 한다거나, 남자들이 나를 둘러싸고 폭행하려 한다거나, 아니면 아동기에 가해자가 했던 성적 학대가 세세하게 떠오른다. 그러면 나는 놀라서 절박한 심정으로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곳엔 가해자와 나뿐이라 나의 요청은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내가 누군가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단순 도구처럼 다뤄지고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지만, 내 감정따위는 어디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모든 행위가 끝날 때까지 저항하지 못하고 절망하거나, 자살로 괴로운 삶을 끝내는 식으로 악몽이 끝난다.
나를 성적으로 학대했던 가해자는 3년전 자살했다. 난 법적으로도 그를 처벌할 수 없고 따로 만나 그때 나에게 왜 그런 짓을 해서 내 인생을 망쳐 놓았느냐고 물을 수도 없다. 당신의 그 가해행위로 인해 유년시절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PTSD에 시달리며 제대로 된 일상을 살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묻지 못한다. 만나서 물어본들 만족할 대답을 얻었겠느냐만은. 다들 이미 끝난 일이라고, 다 지난 일이라고들 하는데, 안 좋은 일은 그냥 잊고 살라고 하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다. 여전히 그 시간 속에 갇혀 사는 기분이다. 이미 죽은 사람에게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혼자 남겨진 나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그게 잘 안 된다.
가해자가 내가 겪었던만큼 고통받기를 바랐다. 삶이 지옥처럼 느껴지고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만큼 고통스럽기만 한 삶을 그 또한 고스란히 겪기를 바랐다. 그런데 자살을 하다니. 자기 혼자서만 편해진 가해자가 원망스럽고 허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