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늘 싸웠다. 어느 날 화를 이기지 못했던 아빠는 큰 포크처럼 생긴 주방기구로 엄마를 찌르려 했다. 노란 스트라이프 앞치마를 입은 엄마는 당황하며 뛰쳐나갔다. 내 나이 열살쯤이었다.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와 동시에 자살충동을 느꼈다. 그냥 우주에 부유하는 먼지같은 존재가 되어 아무 감정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고통을 느낄바에야 차라리 아무 감정도 없었으면 했다. 그때부터 감정이 없는 로봇처럼 굴었다. 30년이 지났다. 상처도 다 아물고 굳은살이라도 생긴줄 알았는데 더러운 고름만 가득하다. 사람이 로봇처럼 군다고 로봇이 될리는 만무하잖은가. 사람인데. 나는 사람인데. 말랑말랑한 사람인데 말이다. 40년은 긴 세월이지만 포기하기엔 이르다. 또 40년 후에 새살이 돋을지 누가 알겠는가. 오늘도 죽을만큼 힘들었지만 살만큼 달래본다. 나는 말랑말랑한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