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도 자존감이 낮았다. 나는 섬세함과 내성적인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우울증|왕따|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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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원래도 자존감이 낮았다. 나는 섬세함과 내성적인 성격을 가졌기에 엄마의 보살핌과 사랑이 더욱 필요한 아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맞벌이로 바쁜 엄마에게 학교생활도, 일상도 아무것도 바랄 수 없었다. 그냥 11시까지 퇴근하시길 묵묵히 기다리면서. 졸린데도 잠을 참고 기다린 시간이 겹겹. 고학년 때부턴 엄마와 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지만 사춘기가 일찍이 시작되면서 되려 관심과 사랑은 거부감이 들었다. 한 편으로는 '이제와서?'라는 생각도 들었다. 저학년 때의 나는 힘들었으니까. 반 전체에게 왕따도 당하고, 선생님조차 싫어하셨을 때 5명이나 되는 가족에게 의지할 수 없던 시기가 너무 힘들었어서. 그 기억이 십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트라우마로 묶여있으니까. 늦은 관심과 사랑조차 올바르지 않아서 힘들고 지침을 하소연하시기만 하는 엄마에게 의지하는 법을 모르던 나는 의지를 받았을 때 어쩔 줄 몰랐다. 그게 사랑이라니, 그닥 정이 들지 않았었다. 트라우마가 너무 심해서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초등 고학년 때 자살을 진심으로 바랐으니 아마 심한 우울증이었던 것 같다. 빠른 치료는 빨리 회복된다. 늦은 치료는 치료하기조차 망설여진다. 나는 학창시절 내내 인간관계에만 신경이 쓰였다. 왕따가 트라우마가 된 이후로는.. 늘 긴장한 상태였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이제 학업을 도저히 따라가기 힘든 수준이었다. 그때까지도 내 학업에 눈여겨 관심을 가진 가족은 없었다. 커가면서 내게 자책감만 커지고 미래에 불안감이 커졌다. 우울증이 낫기는 커녕 삶의 중심이 되었다. 나는 어떻게 공부해야 되는건지 몰랐다. 학원도 아주 어렸을 때 다닌 것 말고는 없었다. 누군가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면서도 막상 저조한 나를 보여주기에는 너무 수치스럽고 무서웠다. 트라우마의 기억이 강렬했다. 내 부족한 부분을 남에게 드러내면, 미움받을 거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있었다. 지금까지도 그 인식은 이어져 오지만. 그래서 자퇴하고 싶다고 아빠한테 얘길 꺼냈다. 말하다보니 눈물이 나왔다. 그땐 또 은근한 왕따가 되어있었기에 감정이 북받쳤다. 그때도 지금처럼 그냥 하소연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무도 내 왕따와 힘듦에 대해 알지 못하기에 알아달라고 말하고 싶었나보다. 위로받고 싶었다. 엄마가 힘들다고 말했던 것처럼, 아빠가 힘들다고 말했던 것처럼. 나도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다가오는 말은 "강간 당했어?" "죽고싶어? 아빠가 차 꺼내올게 내려와. 차타고 같이 빠져서 죽자." 라는 칼날 뿐이었다. 아빠도 우울증이었다.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있다. 우울증을 앓는 이가 우울증을 앓는 다른 이에게 슬픔을 나누면 반이 배가 되어 돌아간다. 그런 둘에게 희망은 '죽음'이라는 키워드에 빛을 가한다.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속상했다. 그 뒤로 의지라는 단어는 희미해졌다. 나는 그냥 위로를 바랐다. 누가 알아주길 바랐고, 알아줄 사람은 부모님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찾아갔을 뿐이었다. 정말로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살 방도를 찾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 기억은 오랜 화상자국으로 남아버려 지금까지도 남에게 기댈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우울증을 완화할 힘마저 잃게 만들었다. 가끔 한 번씩 문득 생각나는 기억.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 아빠를 미워하게 된 근본적인 기억. 미워하고 싶지 않은 마음. 내가 안타깝고 불쌍한 기억들. 불쌍한 아이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 내가 섬세하지 않고 소심하지 않고 겁쟁이가 아니었으면 나를 더 잘 보살펴줄 수 있었을텐데.. 제대로 살지 못해서 자신에게 너무 미안하다.
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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