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를 하게 되면 끊임없이 자책 후 상상속의 나를 짓밟아 죽이게 돼요.
안녕하세요. 29살 직장인입니다.
다들 그러시겠지만, 저도 일을 할 때 책 잡히고 싶지 않고 일 잘한다는 소리가 듣고 싶어서 일에 최선을 다하는 편입니다. 최근이 업무적으로 극성수기라 하루에 쳐내야 할 일이 너무 버거웠어요. 반년정도를 그렇게 버겁게 쳐내다가 드디어 비수기 시즌이 돌아와서 조금 여유로워 졌습니다. 그런데 여유로워 진 만큼 긴장이 좀 풀려서 그런지 어제 일하다가 실수를 했어요. 그 이후로 멘탈 회복이 안됩니다. 작은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겠어요. 실수 후에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멍청이로 볼 것만 같고 일 잘한다던거 다 거품이라고 생각할 것만 같고 저에게 실망할 것 같아서 그게 너무 견디기 힘들 만큼 싫어요. 그 후로는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눈치가 보이고, 내가 했던 모든 말과 선택이 다 실수같고, 그래서 더 자책을 하게돼요.
자책의 정도는 스스로 분이 풀릴때까지 상상으로 저를 죽여요. 상상으로 내 스스로를 때리고 욕하고 절벽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그렇게 상상으로라도 나를 죽여놔야 죄책감이 좀 덜하더라구요. 그런데 이렇게 사는것이 여간 힘든게 아니에요. 사람이 살면서 실수를 안 할 수가 없는데, 그걸 알면서도 나는 내 실수를 용납하기가 힘들거든요. 그래서 하루하루 외줄타듯 불안하고, 상사와 동료에게 피해를 주거나 아니면 그들을 실망시키게 될까봐 너무 겁이 납니다. 상상으로 나는 별로야, 세상에서 제일 별로야, 나는 왜 다 못하지? 잘하는게 하나도 없어. 최악이야.. 이런말들을 계속 내뱉으면서 내 자신을 죽여놓고 있어요. 실수에 이렇게까지 예민한거.. 정상은 아닌거죠..? ㅠㅠ 이런 제가 너무 싫어서 저도 고쳐보려고 '아니야 이게 뭐 큰 실수도 아니고 괜찮아, 이미 벌어진 일인데 뭐 어떡해 괜찮아. 남들은 이제 기억도 못하는 일이야' 이런 생각을 해보면서 마음을 다독여보려고 해도 여전히 마음이 불안하고 개운치 못하여 결국엔 나를 죽이는 상상으로 돌아가게됩니다. 이럴때 누군가 정말 진심으로 괜찮다고 말해주면 금방 자존감이 회복되기는 하던데, 그렇게 내 상태를 알고 먼저 토닥여주는 사람이 잘 없죠..
나는 왜 이런 사람으로 자라났는가.. 이런 내 모습이 너무 싫어서 스스로 고민도 많이 해봤어요. 어린시절을 돌아보면 아빠 앞에서 늘 완벽해야 했고, 아빠를 만족시키며 살긴했어요. 아빠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아빠에게 칭찬을 듣기 위해, 그렇게 살았고 저는 생각보다 아빠의 니즈를 잘 충족시켜주는 꼭두각시 인형 같은 딸이었어요. 그렇게 아빠를 잘 만족시키면서 살다가 제가 실수를 하거나 아빠의 성에 안차는 성과를 보이면 아빠는 돌변했어요. 사랑해서 그러는거라며 때리고 더 잘해낼 수 있다고 채찍질 하고, 더 잘해내도록 압박하고 더 옥죄었어요. 그래서 내가 실수를 하면 이토록 힘들어 하는건가.. 싶기도 하구요..
저에게 가장 힘든 업무는, 제가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선택해야하는 업무들이에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20대초반까지도 아빠가 원하는대로, 좀더 나아가 아빠의 명령과 아빠의 선택으로 움직이는 꼭두각시 같은 삶을 살았기 때문에,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이 너무나 두려워요. 아빠가 시키는대로 했다가 실패하면 그건 아빠탓이라서 안혼나요. 그런데 내가 스스로 선택한것이 실패하면 '그러니까 아빠가 시키는대로 했어야지. 아빠가 누구보다 너를 잘 알고 사랑하는데, 너를 가장 위하는 아빠 말을 들었어야지. 부모한테 순종하는 게 가장 잘되는 길이다.' 등의 말들로 또 저를 죽여놓고 죄인 만들거든요. 그래서 저는 아직도 주도적인 선택이 힘들 때가 많습니다. 저의 선택에 확신이 없고 내가 선택하거나 판단한 것들은 결국 실패할 거라는 생각이 베이스로 깔려있어요... 물론 이런 현상이 예전보다는 좀 나아졌지만, 순간순간 여전히 제 발목을 잡는 기분이에요. 이런 제가 앞으로 삶을 더 잘 살아 나갈 수 있을지 두려워요.
어제는 내가 입은 옷, 신발, 내가 뱉은 말한마디 조차 맘에 들지 않는 하루가 되어 버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