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저를 너무 싫어합니다.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공황|부부|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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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저를 너무 싫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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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어릴 적, 그러니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기 이전부터 저는 돌봄과 관심을 충분히 받으며 자라지 못했습니다. 학교에 다니던 제 모습을 우선 적어볼까요. 유치원 다닐 적의 기억은 유치원에서 내내 말을 안하다가 말을 안한다고 해서 선생님께서 부드러운 어조로 제게 말을 해보라고 다그치셨고 그에 펑펑 울었던 기억.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는 친한 친구 하나 없이 그저 의미없는 등교와 하교를 반복할 뿐이었고, 3학년 때 전학을 가서는 상황이 더 안좋아졌죠. 말수가 적고 유행에 뒤쳐지고 소심해보이다보니 또래 학우들에겐 그저 ***로밖에 보이질 않았을 거예요. 자연스레 정말 몇 개월도 되지 않아서 같은 학년 학우들만이 아닌 전교생이 다 아는 그런 왕따가 되었고, 하루하루를 긴장에 불안을 극도로 가진 채 학교를 다녔어요. 아직도 생각나는 말들은 제가 뿔테안경으로 안경이 바뀌었을 때 한 친구가 와서 했던 말이었어요. "네가 뭔데 이런 안경을 써? ***새끼가..." 그러게요. 제가 대체 뭐길래 자의로 할 수 있는 게 남들에 의해 정해져 있는 건지 아직도 궁금합니다. 6학년 때엔 너무 견디기가 힘들어 자해든 뭐든 잘 알지도 못했던 제가 방 책상에 앉아 힘겹게 울면서 커터칼을 꺼내들어 제 손목을 그으려 한참 고민하며 울었던 기억이 있네요. 이를 일찍 퇴근하셨던 아버지가 분명 목격했었지만 뻔뻔하게도 못 본 척 모르는 척 하셨고요. 왕따를 당하던 때에 저를 구경하고 방관하던 그 아이들처럼요.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의 불안감은 여전했습니다. 여전히 학교폭력이 심각했고, 저는 왕따시키던 주도자와 방관자들이 같은 학교 내에 있었거든요. 그들과 같은 교실을 쓰고 같은 화장실을 쓰며 저는 한 순간도 긴장을 안할 수 없었고, 먼저 말 걸어 친구를 사귄다는 것조차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 이때부터도 저는 제게 자의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많이 엄격하게 제한해두고 있었던 것 같아요. 머리가 컸으니 이유없는 비난을 줄었고 이유없는 호의는 늘었지만 그럼에도 극도의 불안은 여전했어요. 그들도 언젠가는 내게 상처를 줄 것이라는 앞선 걱정에 상상하고 미리 상처받고 불안해하길 반복했습니다. 중2 때엔 너무 힘들어져 엄마와 둘이서만 있을 때 말을 꺼내보았습니다. 아마 이때가 치료의지가 있던 마지막 순간이었을 거예요. 정신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고 나는 지금 많이 지쳐있고 힘들다.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자신이 왜 이렇게 없고 소심하냐며 자신감을 갖고 당당하게 행동하라더군요.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던지... 그렇게 저는 반강제로 자신감캠프에 보내졌고 당연하게도 별 다른 성과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중학교 3년도 어찌저찌 버텨내곤 고등학교에 입학했네요. 가고싶던 많은 고등학교들을 제치고 가장 최대한 먼 고등학교로 진학하길 희망했었고 이를 이뤄냈습니다. 왕따 주도자와 방관자들은 극소수였고, 또 저를 왕따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너무 힘든 상태였기에 친구를 여럿 사귀고도 불안이 그치질 않았죠. 초등학교, 중학교 때와 똑같이 수업시간이 쉬는시간보다 훨씬 더 편했습니다. 쉬는시간엔 내내 자는 척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차단했고, 수업시간엔 쉬는시간동안 극도로 솟아있던 긴장이 조금이나마 풀리면서 편했죠. 제게 너무 큰 관심을 주는 그들이 이상하고 부담스러워 한 번은 도망치며 운 적도 있었습니다. 친구를 여럿 사귀고선 그들과의 관계에 마음속으로 크게 집착하고 있었고 이를 그들도 느꼈는지 졸업날이 가까워올수록 저를 멀리 떼어두더군요. 멀리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과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이곳에서 멀리 떨어지고픈 생각뿐이었습니다. 친구와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가족들은 딱 이렇게만 알고 있죠. 하지만 인터넷에서 만난 3살 연상의 언니와 동성연애를 했고 그 언니의 설득에 넘어가 같은 학교로 진학하고 같이 살게 된 것이었죠. 그 언니는 함께 있을수록 가까이에 있을수록 사람을 미치게 만들고 밝은 기운을 다 앗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청소, 빨래, 쓰레기 처리, 요리 등의 모든 집안일은 다 당연하게 제 것이었고 이를 조심스레 요구할 때면 일명 가스라이팅을 하며 제가 오히려 잘못한 것처럼 제가 상처를 준 것처럼 죄책감을 만들어 새기며 저라는 한 사람을 완전히 무너뜨려갔죠. 그 언니는 가스라이팅의 고수였습니다... 심지어 이상한 플레이의 성관계를 제게 강요해 늘 반강제로 해줘야만 했고 저는 3년간 시달리다 겨우겨우 최근에 도망치듯 관계를 끊었습니다. 제 정신병이 커질대로 커져 겉으로 보일 정도가 되니 본인 바람대로 된 것 같아 만족을 한 것인지 아님 본인도 나를 감당하기가 무서워져 도망을 친 것인지는 모르겠네요. 덕분에 원래도 없던 자존감 자신감은 바닥을 쳤고 학교를 다니기도, 당장 바깥을 나가기도 무서워 휴학을 내고 집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학교 얘기만 했는데도 이렇게나 많은데 가족사는 더 많이 길답니다. 저는 대체 어떻게 여전히 살아 숨쉬고 버텨내고 있는 걸까요... 장하다는 생각도 끈질기다는 생각도 드네요. 가족사는 어떻게 나눠야 좋을지 모르겠으니 그냥 일단 적어보겠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제가 나기 전부터 지금까지도 부부싸움을 끊임없이 하셨습니다. 둘이 이혼하겠다 갈라서겠다 하며 저희에게 너희는 보육원에 가게될 거다 하며 그런 말을 당당하게도 했었죠. 이는 여전히 큰 상처가, 트라우마가 되어 언제 어떻게 버려지고 내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 여전히 살고 있습니다. 언니는 유치원생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해서까지 내내 저를 괴롭히고 가족 내에서 왕따를 시켰습니다. 네 주제에 노래를 듣는다며 비웃었고, 네 주제에 환하게 웃었다며 비웃었고, 울면 운다고 놀면 논다고 비웃었습니다. 덕분에 내 주제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며 무언가를 마음껏 하고싶어할수도 없었고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도 내가 싫어하는 것도 남들 앞에서 들켜선 안되는 것들이 되어버렸죠. 학교를 마치고 고개를 푹 숙여 따가운 시선들을 차단하고 빠르게 집으로 향하면 언니가 항상 매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욕 듣고 맞으며 울다가도 웃으라 하면 웃어야 했고 바깥이 아무리 춥거나 더워도 나가라 하거나 언니가 무서우면 도망쳐 나가야 했어요. 무슨 말이든 거역하면 어김없이 맞으며 무섭고 심한 욕을 들었고 부모님께 이르기라도 하면 부모님은 단단히 주의를 주는 것이 아닌 처벌 뿐이었습니다. 여전히 언니더러 장녀로써 동생들을 잡으라 교육했고 덕분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죠. 본인이 나쁜 행동을 했었다면 나아질 수 있겠지만, 본인에게 그 행동들을 온몸으로 맞았던 사람은 평생을 그 악몽 속에 그런 성격 속에 살아가야 하는 것 같습니다. 언니는 지금에선 많이 달라졌고 제게 미안하다 말하며 제 지금 상태가 속이 상해 울기도 하지만 전 언니가 그런다고 해서 달라지질 못하네요. 엄마아빠도 싸우는 횟수가 많이 줄었지만 전 여전히 버려질 불안감 속에 삽니다. 다들 나이가 들었고 철이 들었고 변했습니다. 저만 빼고요. 저 혼자 가장 힘들었던 그 시간에 계속 멈춰 머물러 있는 기분입니다. 사람을 못 믿고 오히려 싫어하지만 사람관계에 대한 강박때문에 외롭고 괴롭습니다. 극도의 불안이 아주 오래 유지되다 보니 하루에도 수십번씩 공황이 오고요. 자살충동이나 자해충동도 이전에 비해 행동으로 옮겨지려 해서 견디기가 너무 힘이 드네요. 그럼에도 가장 힘든 건 제가 자꾸 주변인들만 강박적으로 생각을 하고 저는 내팽개쳐 둔다는 것입니다. 엄마가 어릴 적부터 힘든 가정환경 속에 자라 아빠같은 사람과 결혼을 하고 여태껏 살아오며 받았을 상처와 지금까지도 힘들어할 기억들이 걱정되고 자연스레 그 걱정이 극단적인 상상까지도 하게 만듭니다. 힘들어하는 사람이 보이면 그 사람이 죽는 상상까지 하게 되고 저처럼 저와 똑같은 생각을 갖게되지 않을까, 저처럼 트라우마를 갖게되지 않을까 하기때문에 제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지 않고 지치더라도 들어주게 됩니다. 저로 인해 그들이 힘내서 오래 건강하게 살길 바래요. 하지만 저는 정작 제게는 그 모든 것들의 정반대라는 것이 문제네요... 얼마 전 힘듦을 못 견디고 극단적으로 집을 나가 이전에 늘 미리 자살할 곳으로 생각해두었던 장소로 갔었습니다. 그런데 하지 못했죠.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남을 상처와 트라우마, 이로 인해 못 견디고 저와 똑같은 선택을 할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습니다. 정말 다 끝낼 순간까지도 다른 사람들만 생각하는 제 모습이 역겹고 두렵고 싫었습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끔찍한 제 자신에 갇혀 나오질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 것이며 전문의가 이 글을 보신다면 제 자세한 정신병명은 대체 무엇일까요. 여태 혼자 많이 찾아본 결과 경계선 인격장애는 확실히 가진 것 같지만, 제가 저를 싫어하는 이유는 강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님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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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JURI
· 3년 전
가슴이 아프네요. 어린아이가 부모로 부터 받았을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클까요. 부모의 싸움은 아이들을 전쟁터같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불안하게 만든다고 하네요. 가여운 어린아이가 그곳에서 살기위해 견뎠을거에요.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부모의 양육환경이 당신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말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부당함속에서도 맞서지 못하도록 만들었어요. 그 와중에 다른 사람들까지 생각하는 당신 모습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당신 자신이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다는 것을 아셨으면 해요. 부모도 아니고 언니나 친구도 아니고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이에요. 그러니 이제부터 당신이 대신 부모가 되어 당신을 아끼고 잘 보살펴주시면 어떨까요? 잘 먹이고 토닥거려주고 운동도 시키고 사소한 일이라도 잘 하면 칭찬해주고 못하면 격려하면서 자신을 조금씩 믿어보세요. 어느 순간 조금씩 희망이 보이고 자신을 사랑하게 될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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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isme1
· 3년 전
살아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글쓴님이 살아계시는 이유는 분명히 어떤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글쓴님을 너무도 사랑하시고 글쓴님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세요. 하나님이 값없이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글쓴님은 존재 그 자체로 어떤것과도 비교할수없고 맞바꿀수 없는 소중한 사람이에요. 글쓴이님 정말 귀해요. 이렇게 귀한 사람이 그런 대우를 받고 살아오셨으니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까요.. 모진 풍파속에서 끈질기게 살아와 주셔서 너무나 감사해요. 작은 민들레가 벽돌을 뚫고 올라와 꽃을 피우는 것처럼 분명 글쓴님도 힘든것을 이겨내고 글쓴님의 삶을 통해 민들레 씨앗들이 훌훌날아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낼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