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동갑내기 남편과 결혼한지 10년..그리고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부부|우울증|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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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성실한 동갑내기 남편과 결혼한지 10년..그리고 딸 아들 둘 .. 성실한 남편과 함께 집도 장만한지 6년이 되가고 눈에 넣어도 안아픈 세 아이들과 행복해야하는 순간인데.... 왜 자꾸 저는 과거에 얽매어서 나를 힘들게 할까요... 저의 부모님은 12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하시고 나버지가 28살때 결혼해서 저를 낳아 2살때 이혼하시고 다시 3살쯤에 두분이 다시 재혼하려 차안에서 세사람이 마주 앉아 얼굴을 보는데.. 내 나이가 3살인데도 오랜만에 만난 엄마가 어색하면서도 좋아서...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가득했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그 후로 엄마 아빠 그리고 내가 다시 함께 살게 되었어요 하루는 엄마랑 목욕탕에 갔는데.. 목욕탕에서 내 나이 또래 남자 아이가 나를 자꾸 처다봐서 엄마한테 물었어요 " 엄마 제가 자꾸 나를 처다봐....." 엄마가 내게 " 문경이가 이뻐서 지꾸 처다보는거야"라고.. 그게 엄마가 내게 해준 엄마로서에 사랑이 가득한 말이었어요. 몇일이 지났을까...어느 하루 동네 언니 오빠들을 따라 봉숭아를 따러 다녔어요 엄마한테 한뭉큼 잡초를 들고 봉숭아라고 하니..엄마가 웃으몀 옆집 오빠에게 봉숭아를 좀 따와달라고 부탁해 그날 저녁에 내 열 손가락에 봉숭아를 발라주는데 아빠가 퇴근하고 집으로와 짜증 나는 목소리로 빨리 저녁 차리리고... 그러고는 엄마랑 아빠는 서로 다투고는 저녁을 먹은뒤 엄마가 내가 먼저 자라고 말하는 순간... 나도 모르고 너무 불안했어요.. 지고 일어나몀 엄마가 없어져 있을까봐....자는 척 하면서 끝까지 안자려 했지만 눈이 스르륵.... 새벽에 눈이 번쩍 떠지는 순간 엄마가 어디 있는지 방안을 둘러보는데.. 이미 엄마는 떠나고... 그 후론 엄마를 영영 못 볼줄은.... 일년쯤 지나 아빠와시골로 과수원이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고 둘이 사는데..... 하루는 아빠가 무슨 액체가 담긴 걸 방으로 들고 오더니 뭔가를 마셨어요. 저한테도 " 너도 마셔볼래" 하는데.. 저는 싫다고 했어요. 지금 생각하니. .. 그 액체가 락스였는데...왜 그걸 아빠가 마셨고 나한테도 마셔볼래라고 물어봤는지..... 그 후에 아빠는 나를 지인한테 맡기고 가끔 와서 얼굴 보고 가는데.... 그때 나이가 아마도 5살정도... 한참 엄마 아빠 손길이 필요한 나이인지라... 같이 살던 할머니한케 아빠 보고 싶다고 언제 아빠랑 같이 사냐고 징징 울었네요... 그렇게 일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아빠와 함께 살 수 있는 집으로 가니 막내삼촌과 삼촌 약혼녀 그리고 아빠와 내가 같이 살게 되었네요. 알고 보니.. 아빠가 락스를 마신후 신장병에 걸려 투석을 매주 하며 일도 못해서 갓 신혼 생활 시작한 삼촌 숙모와 아빠 내가 같이 살게 됐네요. 그러고 또 한 일년 있다가 삼촌 숙모는 다른 곳으로 이사하면서 아빠랑 저도 다른 곳으로 이사해서 단 둘이 살기 시작했어요 그때가 초등학교 들어가기전..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캐나다로 이민 가셨던 할머니가 잠깐 한국으로 나오셨어요 초등학교 입학식날 다른 아이들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학교에 왔는데..난 할머니랑 아빠 손을 잡고 싶지 않았어요. 입학 사진을 찍는데 나는 절대로 카메라를 보며 사진을 찍기 싫어서 다른 곳을 향해 보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는 훨씬 그전에 부터 난 행복한 아이가 아니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거라는걸 느꼈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인데 하루는 아빠가 공부하라고 새벽 2시까지 책을 읽게 했습니다. 어떤 날은 캐나다에서 고모가 사다준 이쁜 하얀색 주름 치마를 벗기고는 손으로 갈기갈기 찢어버렸어요. 내가 가지고 있던 옷들중 가장 이쁘고 제일 좋아하던 옷이었는데.. 하루는 아퍼서 열도 나고 토더 하고... 아빠가 약을 사오셨는데... 제가 먹다가 토를 하니.. 화를 내며 욕을하고.. 앞으로 아퍼도 약을 안사주겠다며 화를 냈어요.. 그리고 또 하루는 아빠가 투석을 하고 돌아와야 할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오지 않아 .. 혼자 밥을 차려 저녁을 먹고 ... 아마 그때가 추운 겨울이었는데.. 빆에서 덜덜 떨며 몇시간을 아빠를 기다리며 혹시라도 아빠가 안올까봐 마음을 조리며 10시까지 기다렸네요.. 다행히도 아빠가 와서 아빠가 날 버리지 않았다는 안도했답니다. 아빠랑 살던 집은 큰 모가나무와 대추나무가 있는 큰 집이었는데 우리는 그 옆에 작은방을 세 들어서 살았어요. 주인집엔 큰오빠가 두명이 있었는데.. 작은 오빠는 중학생정도 였던 것 같아요. 보통 낮에 이픈 아빠라거 일도 못해 직은 아빠드롼테 생활비를 받아서 생활하고 투석도 했는데도 왠지 아빠는 낮에 집에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가끔은 주인집 작은 오빠가 나랑 놀았는데 하루는 나를 그집 지하로 데려가 바닥에 누우라 했어요 그러도는 내 배위로 올라가서 자기 몸을 내 몸레 문질렀어요.. 이 오빠가 뭐하는건지도 모르고 그냥 하라는데로 난 잘 따랐어요. 그때가 초등학교 1학년 그리고 하루는 아빠가 먼 이웃 사촌 .. 아빠가 어릴적 가족과 친하게 지내던 아줌마...난 고모라고 불렀는데 우리집에 놀러왔는데 그날 아빠가 고모한테 밤이 늦었으니 우리집에거 자구 가라고 하고 저도 우리집에 손님이 온적이 없었어서 너무 봏아서 고모한테 우리 집에거 자구 가라고 졸랐습니다. 그날 밤에 자다가 일어나니.. 아빠가 고모 몸 위에 올라가 있고 이상한 소리가 끊임 없었습니다.. 저는 그소리가 너무 무서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그러고 몇달 뒤 그 고모가 자기 사촌 언니라고 하면 남편과 사별하고 딸래미하고 둘이 우리 동네에 사니 우리 부녀에게 소개 해줬어요. 그후로 우리 가깝게 지내다가 같이 살게 됐어요. 저는 그여자분도 고모라고 부르고 그분의 딸은 저보다 7살 위여서 언니가 날 너무 귀엽게 잘 봐주웠어요. 아빠는 자기가 아프니 얼마나 살수 있을지도 모르고 날 캐나다에 살고 있는 큰아빠와 고모 그리고 할머니한테 보내서 캐나다에서 자라리를 원했지만.. 생각 처럼 쉽지 않았어요. 매번 인터뷰에서 떨어져서 내가 캐나다에 못 가게 되었어요. 그리고 하루는 같이 살던 언니가 내가 갖고 있던 이쁜 연필을 내게 선물 해줬는데... 왠지 니도 모르게 더 많이 같고 싶어서 언니가 갖고 있는 연필을 훔쳤다가 고모한테 걸려서 엄청 혼이 났어요..그후론 고모는 날 이뻐하지도 그전 처럼 내가 잘 대해 주지도 않았어요. 아침에 학교를 가기위해 고모가 날 깨웠는데 항상 날 자기 발로 흔들며 말도 안하고 깨웠아요. 아침을 언니랑 고모랑 나 셋이 밥을 먹는데 고모기 언니에게 " 너는 남의 집에 가서 저렇게 더럽게 소리 내며 밥 먹지마라"며... 그냥 나한테 소리 내지말고 조용히 먹으라고 가르쳐 주지.... 2학년이 되서는 내가 사랑 받게 잘 해야지 싶어 학교 갔다오면 빨래도 하고 집도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엄청 노력했어요. 그래도 고모는 항상 날 눈을 흘기며 처다 보고 심부름 시키때면 발로 내 몸을 흔들고 ... 하지만 내가 고모보다 더 싫은 사람은 라빠 였어요. 이엏게 고모한테 멸시 당하면 사는데..아빠라는 사람은 딸은 조금도 생각 안하고 고모랑 희희낙낙 ..아삐에 삶은 좋아 보였어요. 아마도 고모가 돈도 벌어서 생활을 하고 아빠에게도 여자가 필요했겠죠... 우리집엔 명절때 마다 큰아빠 집으로 가서 제사를 지냈는데 거기엔 큰오빠가 한명 있었어요. 오빠가 나보다 6살 나이가 많았는데... 장난꾸러기였어요 어느때 처럼 명절때 갔는데 오빠가 자기 방으로 들어오라 해서 갔는데... 예전에 세 살던 주인집 오빠 처럼 내 바지를 벗으라 하고 자기몸과 내 몸을 비벼 댔어요 그때 내가 초등학교2학년... 오빠방 바로 밖에선 어른들이 다같이 모여서 티비보고 얘기하고.... 왜 아무도 날 그런 상황에서 지켜 주지 않았을까요.....아빠도 큰엄마 큰아빠도.... 이전 해 명절엔 갑자기 외할머니가 큰아빠집으로 찾아왔어요.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가지고 ... 내가 5학년때 . .. 아빠가 신장 이식 수술을 한다고 몇주 동안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있게 되어 나 혼지 집에 있는게 무서워서 밤이 될 때까지 밖에서 있다 몰래 집으로 들어가 다용도실에서 몰라 캔볶음밥을 먹었는데 고모한테 걸려서 뺨을 맞았어요... 내가 뭘 그렇게 잘 못 한걸까요? 난 한참 전 부터 어린 나이었지만.. 빨리 ..어른이 되기전에 죽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시시때때로 아빠와 고모 사진을 보며 칼로 사진을 찍고 찢고.. 사랑 보다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과 증오들로 가득 차있었어요. 내가 중학생이 될 때쯤 아빠가 일지리를 찾고 둘이 따로 이사 나와 살게 되었는데 아빠는 일주일에 한번쯤? 들어올까 말까.... 거의 혼자 살났어요 어떤 때는 집에 쌀이 없고 돈도 없고....학교에 도시락도 싸기지 못하니..하루는 담임선생님이 빵 사먹으라고 친구들 앞에서 500원을 주더라구요... 너무 챙피하고 자존심 상해서...다이어트 한다고 했어요. 친하게 지내던 친구 하나가 있었는데.. 그친구는 나의 사정을 잘 알았어요 내가 속임 없이 내 얘기를 했죠...어느 하루 하굣길에 친구가 할머니가 명동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을 받는다길래 우리 아빠도 신촌 세브란스에서 수술 받았다고 하면서 서로 세브란스 병원은 명동에 있다 아니 신촌에 있다...비보 처럼 싸웠어요 지금 생각하면 넘 웃긴데.... 어려서 몰라서.... 세브란스 병원이 하나 인불 알고...원래 그 병원이 명동에도 신촌에도 있는건데... 근데 친구랑 내가 서로 말이 맞다고 다투다가 친구가 내뱉은 말이 "엄마도 없는 주제에..." 친한 친구였는데 .. 내게 그런 소리를 한걸 듣고 이세상에 오직 내편이었던 친구였는데 .. 사실은 아니었나? 내가 불쌍해서 친구인척 해줬나.... 그 이후로 나와 그친구는 함께 하지 못 했어요. 그리고 친구를 사귀기가 힘들었어요. 가끔은 학교가 가기 싫어서 무단결석도하고 몰래 집안에 장롱안에 숨어서 학교 간것 처럼 .. 아빠는 신장이식 수술 후에 자기 몸을 돌보지 않아 합병증이 생겼어요. 당뇨병 때문에 발이 썩어서 뭉글러지고... 그런 몸으로 중학교 2학년 여름에 아빠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백운대로 등산을했어요 그리고 한달 반쯤 후에 일하시다가 짐깐 휴식 시간에 잠든 상태로 돌아가셨어요 심근 경색으로.. 캐나다에 사시던 친할머니가 힌국으로 오셔서 산재 처리와49제를 마치고 내가 살던 아파트에 어떤 노인 목사부부에서 맡기고 바로 캐나다로 돌아가셨어요. 처음 보는 목사부부한테 인사만 시켜주고 그렇게 지내다가 학교에서 자꾸 헛구역질만하고 입맛도 없고...환청도 들리고 ... 넘 힘들어서 작은엄마한테 학교 자퇴하고 싶다고 했어요 당분간 작은엄마 집에서 몇달을 지내다 중학교 3학년 5월달에 학교에 돌아갔어요 그때 2학년 담임선생님 절 잘 붙들어주신 덕분에 다시 학교에 다니면 제가 배우고 싶었던 무용선생님을 소개해주셔서 무용을 시작 하면서 재미있는 무용친구들을 만나게 됐어요. 생각해보면 내 어린시절중 가장 좋았던 순간이네요. 그러다 갑자기 친할머니가 캐나다에서 오셔서 밴쿠버에 사는 고모한테 가자고 짐을 싸고 무작정 친무비자로 밴쿠버로 오게 되어 학교도 다지도 못한테 친고모 가족과 일년을 살게되었는데 친고모 친구가 하는 미용실에서 아르바이트하고 번 돈을 친고모가 내가 정식으로 캐나다에 사는게 아니라 고모 이름으로 은행***를 열고 일해서 번 돈을 그 ***에 모으고 있었어요 친고모가 은행카드를 주면서 ***만 고모 이름으로 한거니까 직접 은행카드 갖고 있으라며 .. 그렇게 일년이 지나고 나니..조금씩 불언했어요... 무비자여서 한국으로 돌어가야할 텐데.... 맨첨엔 이민오기전에 고모부가 내가 어떤 아이인지 만나보고 싶다했는데 . .. 일년이 지나도 이민이고...입양이고 아무 서류도 없이... 그러던중 어느날 밤에 침대에 누워 있는데 빙인은 깜깜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여자 목소리가 내 침대 옆에서 났어요. " 문경아!너 지금 한국에 가야해"라고 ....분명 난 깨어 있는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아 보니 깜깜한 방에 자로 내옆에서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반짝거리는 눈이 보였어요... 아직까지도 그게 누구였는지.. 뭐였는지는 몰라요.. 하지만 전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친고모한테 한국에 가야 할것 같다고 했는데 모두들 내가 한국으로 가는걸 반대했어요..딱히 반대할 이유가 없는데...오히려 여기 밴쿠버에 무비자도 만기되어가는데... 어쟀든 무작정 한국으로 나와 작은아빠 댁에서 지내면서 아르바이트로 동네 소아과에서 일하게 됐어요 일년쯤 있다가 막내작은 엄마가 우울증이와서 가족들이 힘들다고 큰엄마 집으로 가서 지내라고 하더군요 .. 미침 중학교때 담임선생님이 아버지돌아가시고 자퇴하려던걸 결석 처리로 해서 중학교졸업을 못 했으니 졸업을 하려면 날짜를 채우라고 해서 다시 중학교를 몇달간 다녔어요 어른들은 곧 캐나다 이민 갈테니 기다리라 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를 진학을 못 한 상태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친고모한테 전화가 왔어요 친고모 실수로 차 사고 나서 현금이 필요하다고 ...밴쿠버에 있을 때 친고모가 고모는 형제중 혼자 여자이고 막내이고 오빠들은 다 결혼하고 외롭게 지냈다며 나와 서로 의지하고 친고모 조카지만 때로뉴엄마 딸 처럼 그리고 자매 처럼 지내자고 내 인생에 그런 따뜻하고 힘이 되는 말은 처음 들었어요 그래거 전 친고모와 의리를 지키고 싶어서 다른 친족 보다 더 가깝게 지냈고 이렇게 고모에게 일이 있을때 마다 내일 처럼 도왔습니다. 몇년이 지나도 연락이 없고...친척집에 이집 저집 돌아다니는게 넘 싫고.. 이렇게 살나야하나...싶기도해서 약국 여기저기서 수면제를 모아 자살 기도를 했어요. 몸이 나른해지더니.... 갑자기 여러 사람들 목소리가 들리는데... 남자목소리 여자목소리... 아직은 때가 아니니 기다리라는 말이 들렸어요 작은아빠가 절 발견하고 병원으로 가 위세척하고...정신을 차렸네요 만 19살 바로전에 캐나다 초청이민이 받아져서 뎌우 밴쿠버로 오게되어 친고모 가족과 일년정도 살았어요.돌아오자 마다 예전에 가지고 있던 은행카드를 사용하니 이미 돈은 다 없어지도 ***도 앖어졌지민 고모에게 이무말 못 했어요. 고모 고모부 덕분이 캐나다로 이민 올수 있었던 거였으니까요. 그래서 나이 차이 나는 친척 동생들 열심히 베이비시트도하고 저녁 되면 목욕시키고 피아노 레슨도 해주고 아르바이트도하고 맞벌이 하는 고모 고모부 대신 집안 살림까지 도맡았어요 힘들다 전혀 생각 하지 않았어요 늦은 고등학교도 다니고...그러다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고모부가 무척 싫어했어요.저는 고모부가 날 딸 처럼 생각하기에 뭐 아빠가 딸 남자 친구생기면 질투하는? 뭐 그런거라 생각했어요. 근데 어느날 고모부와 단둘이 있는데 난 거실에있거 고모부는 샤워를 마치고 안방문을 열고 벌거 벗은체로 날 보며 웃고 있었어요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그리고 가끔은 고모가 늦게 까지 일을하고와서 보통은 내가 저녁 준비를 했는데 가끔은 귀찮으면 친척동생들과 고모부와 함께 외식을 나갔는데 고모부 팔과손을 내 허리에 휘둘러 안았어요.꼭 우리가 부부인 양.... 너무 불편했어요 . 고모는 고모부가 프렌치캐네디언라 그렇다고 하는데... 나와 내 남자 친구가 점점 가까워질 수록 이상하게 대했어요 내가 항상 아침에 샤워릉 했었는데 .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 없다고 컴플레인 시작으로....그리고 고모집 밑엔 할머니란 먼 고모친적도 살았었는데... 친고모는 그 먼친척 모모를 경계했어요 고모부랑 관계가 이상하다고.. 사실 내그 학교 방과후 집에 들어갔는데 고모부랑 그 먼친척고모도 어두운 방에서 깜짝 놀래서 나오는데 분위기가 이상했어요. 하지만 친고모한테 말 할 수가 없었어요 어쨌든 그런 관계속에서 친고모는 없는돈을 긁어 모아 식당을 오픈하고 저도 컬리지 다니면서 틈틈이 친고모 가게 일을 도왔어요. 식당엔 그 먼친척 고모도 일하고 있었는데... 매일 일 끝나고 나면 친고모는 먼친척 고모를 뒷담화를 했어요 저는 물론 항상 우리 친고모 편이 되어주면서 저도 점점 먼친척 고모와 사이가 안좋아졌어요. 사실 우리 친고모는 사람은 너무 좋은데 우리 가족이든 누근든 항상 서운하게 많고 험담을 많이 했어요. 그래도 저는 항상 고모 편 되어 주웠는데...알고보니 친고모는 내 뒤에서 다른사람들한테 내 함담을 하고 다녔어요 그걸 나중에 알게됐는데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친고모가 물질적으로도 힘들 때마다 항상 내가 옆에서 도와줬었는데 ... 그렇게 이민생활 가운데...가족간에 갈등도 생기게되어 고모집에서 독립하려 맘 먹고 고모한테 지금은 고모 곁을 떠나 독립하지만 나중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면 받아주세요라고 애교 섞어 말했는데고모는 퉁명스럽게 지금 집나가면 들어 올 생각 말로 끝냈습니다.. 사실....제가 독립하려했던건 고모부가 저 방에 집 나가라고 제 가방과 편지를 남겼거든요 . 그런 고모부의 행동이 이해는 안됐지만 날 친딸 만큼 사랑했는데 남자친구가 생겨 질투라 생각했어요 모든게 꼬이고 꼬이고.. 우리 아빠 산재 보험을 고모가 이미 생활비로 다 쓴 바람에 저는 맨 몸으로 나와 혼자 살게 됐습니다 .그와중에 큰엄마도 식당을 운여아면서 한국에 사는 친척 오빠를 불어 같이 일을하는데... 혼자 사는 제 아파트에서 친척 오빠랑 닽이 당분가 지내라는데...싫다고 말을 못했어요. 예전에 어릴적에 친척 오빠가 한짓은 어려서 호기심으로 그랬을거라 내 맘을 토닥였어요 오빠도 어릴적 얘기는 하나도 안하고서로 모른척하면서...일년을 같이 살다가 오빠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어요 25살에 동갑내기 남편을 만나 6년을 연애하고 31살에 결혼했어요 남편 덕분에 결혼전에 평생 찾고 싶던 외갓집도 찾이 외할머니 그리고 외삼촌들 이모릉 만나게됐어요 엄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고 싶었지만...아무도 얘기해주지 않더군요.. 그냥 제 예상으론 자살 하신것 같아요. 큰외삼촌은 엘에이에서 사셨는데.. 제가 셋째 임신 했을적에 자살하시고 그리고 6개월 후에 외할머니도 돌아가셨어요. 셋째를 낳고 새집 장만해서 이사하고 너무 좋은 날들인데 ... 맘이 무겁고 자다가도 눈을 뜨는 순단 갑자기 지난 일들이 생각이나 무섭고 힘들어요. 왜 어른들은 내가 어릴때 지켜주 않았지? 내가 중학생때 명절이라 큰집에 갔는데 명절 음식하고 피곤해서 잠깐 낮잠 자는 사이에 큰엄마랑 할머니께서 나누는 말이 들렸어요 큰엄만 나도 그리고 자기 아들도 많이 커서 둘이 한방에 있으면 혹시나 무슨일이 있지 않을까 싶어 조심스럽다고 .... 저는 속으로 너무 속상했어요 왜 그런생각을 빨리 그전에 못하고 이제야 하냐고..... 지금은 멀쩡하게 남들 처럼 가정 이루고 사는데.... 행복하지가 않아요.. 자다가도 는을 뜨은 동시에 예전에 있었던 안좋은 기억들이 '레드썬' 하듯이 번뜩 생각이나면 한숨을 잘 수 없게되죠. 여기 제가 사는 곳에 교회에서 하는 어머니 교실 신청해서 서로 아픔을 나눌 때 ... 내가 품고 있는 아픔을 풀고 싶어 맘을 열어 나눴어요... 근데 다음날 친하게 알고 지내던 언니가 전화가 와서는 그런 얘기를 왜하고 다니냐고... 그런 쎈 얘기를 해서 다른 사람들은 할 얘기도 없었다고 .... 저는 너무 챙피하기도하고 사실 어머니교실에서 서로 얘기하는건 밖으로 나가지않게 비밀지키기로 서약도 했었는데.... 그자리에 없던 언니가 제게 이렇게 말을하니.... 너무 속상하고.. 이젠 사람들을 만나는게 무서워요 내 마음이 이런데 내가 아이들을 정상적으로 잘 키울수 있는건지.... 어릴적에 아빠는 본인이 아파서 모든 스트레스를 저에게 쏟아 부었어요 많이 맞고.....목도 조르고 칼로 찌르려하고 ... 어른이 되어 아이들이들 키우면서 잊고 살던 내 어린 시절이 자꾸 생각이나네요... 어찌보면 우리 아이들은 부족한 없이 잘 자라는데 ....괜히 내 어릴적 모습과 상황과 우리 아들과 비교하게 되면서 내 삶이 너무 억울해요 사람이 살아가는데 환경과 경험들 그리고 기억들이 내 성격을 만들어가요..내 나이가 41세인데 정신적 정서적 감성적인 모든게 정상으로 자라지 못한 어른되고 대인관계 사회생활하는데 문제가 많아요.이런 상황들을 대물림이 되는건 어닌가 무섭고 정되고..이런 럼마 밑에서 우리아이들이 정상적으로 잘 자랄수 있을지.. 머리로는 모든걸 털어내고 새로 살아 가야한다는걸 알지만 마음은 쉽세 변하지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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