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보니 상당히 긴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유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고민|스트레스|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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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콩_레벨_아이콘VyLet
·3년 전
...쓰다보니 상당히 긴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유의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는 21살의 여대생입니다. 어릴 때부터 다소 완벽주의자적이고 음침하고 염세적인(pessimistic) 성격이었습니다. 침울한 성격은 고등학교를 여고로 가면서 그곳의 열린 분위기에 동화되어 차츰 극복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제가 가진 가치를 사랑하고, 긍정적이며, 자존감도 있는,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였습니다. 저에게는 불과 2년 전, 그러니까 고3이었던 2019년 10월에 만났던 친구가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만난 1살 연상의 헝가리인 친구였습니다(편의상 G라고 칭하겠습니다). 시차 때문에 G는 제가 정규 수업을 끝내고 저녁을 먹을 때쯤 일어났고, 그때부터 제 야간자율학습이 끝날 때까지 담소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고민이 많고 우울한 모습을 많이 했지만, 그외에는 저와 상반된 가치관 및 생각을 지닌 그는 매력적인 이야기 대상이었습니다. 저는 그에게서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야를 배웠습니다. G는 제 고3 시절을 극복하게 해 준 든든한 정신적 버팀목이자 선생님이었습니다. 저희의 사이는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비록 실제로 만나본 적도 없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강하게 의존했습니다. 연인관계가 된 것이죠. 저의 의존성은 수능을 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수능 당일 아침에도 G에게 '오늘 도로가 엄청 혼잡하고, 경찰차도 나와 있어!' 라고 이야기한 것이 기억날 정도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일들이 잘 풀리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대학에 진학하고 코로나 사태로 비대면으로 수업을 듣기 시작했을 때부터였습니다. 저는 기대 이하의 수업 질과 기타 부분에 대해 실망했습니다. 제가 원하고 바라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에게 연락을 자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제 나태함을 가려줄 이유를 스스로 만든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저는 G에게 항상 스트레스 섞인 한탄만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G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말입니다. 저는 제 스트레스 해소의 대상으로 그를 이용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연락은 더더욱 뜸해졌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에게서 통보를 받았습니다. 연인 관계를 정리하자고요. 저는 펑펑 울었습니다. 하지만 전 알고 있었습니다. 저와 그는 둘 다 사랑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것을 베풀기에는 너무 어렸습니다. 그래서 그 날 이후로 저는 사랑하는 사람(연인)을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책임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지키고 있고요. G와는 여전히 친구 사이였습니다. 조금 서먹해졌지만 그것은 문제될 게 아니었습니다. 저희는 친구 사이가 더 어울렸고 편했고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러다 그와 사소한 것 때문에 서로 자기 말만 하다 둘 다 토라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자세한 것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때의 언쟁은 마음 속 한구석에 자리잡아 응어리졌습니다. 나를 이해하려고 해주지 않는 G가 미워서, 멋대로 연락을 두절했습니다. 몇 개월이 흐르고 속상했던 마음을 풀 기회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그는 최근 심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제가 어째서 몇 개월 전의 일을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서 진작 이야기를 하지 못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저는 몰랐습니다. 논리적인 G의 성격상 정당성을 부여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에 장황하게 입장표명을 한 게 오히려 독이 되었습니다. 저는 상처를 받았습니다. 내 딴에서는 노력했는데. 그걸 알아주지 않아서 속상했었나 봅니다. 그와의 연락은 다시 두절되었죠. 시간은 더 흘렀습니다. 그동안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제가 G에게 자주 연락해주지 못한, 아니, 연락하지 '않은' 것을 후회합니다. 저는 아직도 G에게 좀 더 친절하게 대해주지 않았던 것을 후회합니다. 서로 처음 만났을 때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가자" 라고 말한 것에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받기만 하고 정작 주려는 노력은 안 했던 것 같습니다. 사소한 것에 지고 싶지 않아서 내 주장만 박박 우겼던 과거의 행동이 너무나 어리석었습니다. 인간관계는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닌데, 저는 너무 이기적이었습니다. 전 말로는, 머리로는 '사랑', '정의', '배려', '친절' 과 같은 가치를 되뇌었지만 정작 그 가치들을 잘 실천하지 못한 것 같다는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제 자신이 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나에게는 과분한 가치인데 어째서 그것들을 포용하는 '척' 하려고 한걸까. 지키지도 못할 것들인데. 내가 가장 사랑했던 친구에게조차 따뜻하게 대하여 주지 못했으면서. 나는 대단한 광대구나. 나 자신까지도 속였구나. 나는 결국 아무도 사귀면 안되는구나. 겉의 친절한 모습 속에 남을 상처입히는 내가 있구나. 결국 나는 혼자이고 혼자여야만 하는구나. 그것이 모두에게 이로운 방향이리라. 아무도 상처입지 않으리라. 작년 가을, 10월 이후부터 이 생각이 저를 쭉 괴롭혔습니다. 저는 주변의 친구들을 정리했습니다. 저는 친구를 사귈 자격조차 없었으니까요. 하소연할 곳을 스스로 없애버린 것입니다. 애초에 내 슬픈 감정을 하소연하기 위해서만 친구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매우 이기적이고 편향적인 구조겠지요. 그럴 바에야 친구가 없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겁니다. 저의 밤은 외로움과 회의감과 눈물로 얼룩져갔습니다. G에게 속죄를 하는 동시에 그가 저에게서 상처입지 않도록 밀어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12월 즈음에 어렵게 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G는 다행히도 이전보다 훨씬 안정되었고 밝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의 곁에는 이제 다른 연인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저와는 정반대였습니다. 전 그저 침울하고 무력한 아기였고 그는 행복하고 성숙한 청년이었습니다. G는 제 이야기를 쭉 듣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 보니 마음이 아파. 우선 이 일을 하루빨리 극복해 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 비록 네가 나를 밀어내려고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사이를 유지했을지도 몰라. 그럼에도, 난 우리 사이가 결코 슬픔, 분노, 언쟁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너는 내가 힘들 때 충분히 나에게 행복과 도움을 주었어. 이제는 내가 널 도울 차례야. 그러니 네가 죄책감이라는 짐을 짊어지질 않길 바래." 전 울컥했습니다. 죄책감, 기쁨, 슬픔, 안도, 후회, 열등감, 그 모든 감정이 뒤섞였습니다. 처음엔 위로를 받고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곧 화가 났습니다. 그에게 부인당함으로써 몇 개월동안 매일 밤을 지새면서 후회에 눈물 흘리고 고뇌하던 시간이 다 헛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차분하고 어른스러운 그 태도를 보고는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만 것입니다. "나는 내 소중한 가치관을 지켜내지도 못했어. 사랑, 우정, 배려를 말로만 얘기하고 실천은 전혀 못했지. 난 이런 고결한 덕목들을 감히 생각할 가치도 없는 사람이야. 어릴 때부터 쭉 똑같아. 친구를 사귀고, 내 고집으로 말싸움을 하다 헤어지고. 사람만 바뀌었고, 패턴은 똑같아. 내가 친구를 사귀지 않는 것이 결국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야. 나랑 친구가 되면 모두가 이렇게 상처만 입고 헤어지니까! 너도 한 명의 피해자일 뿐이야! 가해자는 나고! 그러니 너도 나를 떠나야 해. 더 상처입고 싶지 않으면 말이야." 저는 흥분해서 말을 이었습니다. "이렇게 고뇌하는 시간을 보내보니까 알겠어. 매일 나처럼 잠 못자고 머리맡에서 울다가 퉁퉁 부은 눈으로 새벽에 잠드는 분들이 이해가 돼. 이제는 내가 그 처지니까! 정말로 안타까워. 차라리 내가 그런 사람들 몫까지 아팠으면 좋겠어. 고통받는 사람들은 모두 더 나은 삶을 살 권리가 있으니까." "너도 마찬가지야." 전 당황했습니다. 아주 많이요. 그런 대답이 돌아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혔습니다. 전 그가 저에게 차라리 화를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G가 나를 싫어한다면 정말로 미련을 떨치고 그를 확실하게 밀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이상했습니다. 옛날의 그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내가 나은 삶을 살 권리를 가진다니. 당신을 상처입힌 나인데도 어째서 미워하지도 화내지도 않은 것인지. 저는 이해할 수가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때 깨달음을 얻었단 겁니다. 세상은 내가 바라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구나. 세상 어딘가에는 나를 이렇게 봐주는 사람이 있구나.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구나. 용서라는 건 정말로 존재하는구나. 나는...... 편협하게 내 멋대로 남들을 정의했구나. 그 말을 듣고 제 기세는 한풀 꺾였습니다. 그를 거세게 밀어낼 이유를 더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G의 말은 전부 절 정말로 위해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예전같으면 쿨하게 돌아섰을 텐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냐는 저의 물음에 그는 '글쎄, 너에게는 내가 노력을 다하고 싶은가 봐.'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다운 짧고 굵은 말이었습니다. 지금도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니나, 그때 G가 해주었던 그 말 한마디 이후로 저는 놀라울 정도로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저는 본래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기보다 회피하고 잊기를 선택하는 성격입니다. 그래서 이 생각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찾지 못했습니다. 완전히 극복한 것도 아니고요. 뭐... 결국 중요한 것은 제가 안정과 건강을 되찾았다는 사실이겠지요. 깨달음도 함께요. 지금 이렇게 생각해 보면, 저는 참으로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나락으로 떨어지던 제 손을 잡아준 친구가 있으니까요. 더 놀라운 건, 예전에 G가 힘들 땐 제가 똑같이 도왔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기억나지 않지만요. 그러니 알아야 합니다. 내 존재와 행동과 말은 누군가에게 지옥 끝에서 비추는 한 줄기 빛 같은 희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희망을 언젠가는 내가 받게 된다는 사실도요. G는 저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저 또한 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면 좋겠습니다. 그는 저에게 있어 좋은 친구이자 정신적 스승, 멘토, 버팀목으로서 남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쭉. 이상 새벽감성에 젖은 장문의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마워, G.
사랑해감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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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oxoioi
· 3년 전
그거 알아요? 저는 G도 G이지만 전 당신이 더 대단해요 스스로를 아주 객관적으로 통찰하려고 하며 자신을 점점 성장하게 만드니까요 분명 그에게도 결국엔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된건 당신몫입니다 당신은 빛이 될 수 있을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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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yLet (글쓴이)
· 3년 전
@xoxoioi 감사합니다. 지금 이렇게 '객관성' 을 가지는 것도 이전의 일방적인 '자기비하' 에서 조금 더 나아진 것 뿐입니다. 저는 아마 앞으로도 계속 성찰하고 생각하고 변화하겠죠. 이런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시간 들여 쓴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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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phone
· 3년 전
늙어서도 G와 긍정적인 관계를 이어나가길 응원해요! 앞으로의 나날들이 황금같기를.. Like Go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