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때 부터 그렇게나 죽고 싶어했습니다.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공황|상담|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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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아주 어릴 때 부터 그렇게나 죽고 싶어했습니다. 3살 때 부터의 기억이 있는데 첫 기억부터가 가정폭력을 당하는 기억입니다. 기억이 있는 시점 전에도 저는 가정폭력을 당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가장 옛날 기억이 3살 때 언니 두명에게 밀쳐져 넘어져서 울고 있었는데 피곤해서 낮잠울 자다가 잠에서 깬 모친이 시끄럽다면서 저를 때렸습니다. 손으로 뺨과 머리를 여럿대 맞았고 옷걸이로 다리를 맞았습니다. 모친이 안방에 들어가 문을 세게 닫는 소리가 들렸고 저는 아파서 울고 있었는데 언니들이 계속 울면 시끄러워서 더 맞을 거라고 했습니다. 집이 가난해서 생일이라던가 크리스마스라던가 하는 기념일에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운이 좋으면 케이크를 먹었습니다. 케이크가 좋아하는 맛이 아니었던 때가 많았습니다. 용돈을 받아본 적도 없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같이 가서 사야했습니다. 또래아이들은 용돈으로 놀러가거나 무언가를 사먹거나 버스를 타거나 할 때 저는 아주 가끔 저금통에서 200원에서 500원 정도 몰래 가져가서 문구점에서 불량식품을 사먹거나 분식점에서 피카츄라던가 컵볶이라던가 떡꼬치같은 500원에 팔던 가장 저렴한 간식을 먹었습니다. 버스는 같이 타는 게 아니면 그냥 걸어다녔고 정말 먼 거리로 갈 때에나 부친의 차를 탔습니다. 아프다고 말 했을 때 진짜 아픈 걸 모친이 알아채면 아프다는 이유로 맞았습니다. 돈이 나간다고 맞았습니다. 아파서 아프다고 하면 큰 대학병원에 응급실에 가보라고 사람들이 죽어간다고 엄살 피우지 말라는 소리를 4살 때 부터 계속 듣고 살고 있습니다. 5살 때 아픈 걸 숨기고 있다가 독감에 걸려서 40도 41도 열이 오른 적이 있었는데 병원에 가지도 않고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방에만 있었기 때문에 그 후유증인지 지금도 폐가 아픕니다. 폐에 모래가 한두어줌 정도 들어있어서 쌕쌕 거리는 듯한 통증이 느껴집니다. 학교를 다니지도 못하는 어린 나이 때 부터 밥을 먹거나 옷을 사거나 할 때 마다 어른이 되면 이자까지 배로 갚으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가정폭력으로 인해 저는 사회성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친구가 없습니다. 어릴 때 부터 친구가 없었습니다.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계속 학교폭력을 당했습니다. 괴롭힘을 당한다고 하면 맞았습니다. 매년 하는 학교폭력 실태 조사에서 고학년이 된 5학년에서야 겨우 신고가 들어갔는데 교사들이 전부 막았고 모친은 저를 때렸고 가해자들에게 사과를 하라고 강요했습니다. 그렇게 학교폭력은 멈추지 않은 채 졸업을 했고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제대로 무너진 사회성과 정신상태로 인해 상처를 받았고 피해를 주기까지 해서 2학기 때 부터 등교거부를 하다가 2학년 때 출석일수 부족으로 유급신청으로 자퇴해서 다음 해 부터 검정고시를 볼 수 있길래 16살 때 4월은 중졸시험에 8월은 고졸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그 뒤로 집을 벗어나려고 이런저런 노력은 다 해봤는데 올해로 19살인데 1년하고도 8개월째 집 밖에 나가지를 못 하고 있습니다. 방 밖에도 겨우 나가서 하는 게 화장실에 가거나 부엌에서 무언가 먹을 것을 방으로 가져오는 게 전부입니다. 심지어 그 마저도 겨우 겨우 합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쓰러져 공황발작으로 중학교 위클래스에 간 적이 있었는데 모친이 저를 때렸습니다. 위클래스에서 감정표현을 하는 방법과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처음 배웠었는데 모친의 폭력으로 전부 못합니다. 위클래스에서 연계해서 정신과에서 상담치료를 받고 약물치료도 받았지만 상담치료는 상담 내용을 모친이 전부 알게 되어있던 곳이었던 데다가 모친과 같은 학교 학생들인 가해자들에게 감사하라는 말을 포함한 다양하고 수많은 2차가해에 상처를 받아 그만두었고 약물치료는 알약을 삼킬 힘도 물을 마실 힘도 없어서 그만두었습니다. 쉼터로 가출을 한 적도 있었는데 3주만에 강제 가정복귀 당했습니다. 제가 모친에게 비위를 맞추는 행위들을 보고 그렇게 된 거였습니다. 저는 모친이 두려워서 비위를 맞춘다고 다 말했고 쉼터에 온 상태지만 비위를 맞추기 위해 연락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전부 말했는데도 사이가 좋아보인다며 가정복귀를 강제적으로 당했습니다. 심지어 저에게는 말도 없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울고 싶은 데 울 수가 없습니다. 우는 것을 들키면 맞습니다. 모친의 손에 물건이 던져질 것이고 저는 그 물건에 맞을 수도 있습니다. 옷걸이 같은 물건으로 맞을 것입니다. 소리 내어 울어보고 싶습니다. 딱 한 번이라도 소리 내어서 울고 싶습니다. 원하는 만큼 울어보고 싶습니다. 저도 제가 행복해봤으면 좋겠습니다. 한 번이라도 행복해봤으면 좋겠습니다. 평범한 것을 동경하고 부러워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흔하고 당연한 것을 바랄 힘 조차 이제는 없습니다. 저도 제가 살고 싶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제가 살고 싶어했으면 좋겠습니다. 안 아픈 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진통제를 많이 먹어도 안 아프진 않고 덜 아플 수도 있고 그대로 일 수도 있고 더 아파질 수도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평소에는 안 아프다가 몸에 이상이 생기면 그제서야 아프다고 하는데 왜 저는 평소에도 심하게 아프다가 몸에 이상이 생기면 아픈 무언가가 늘어날 뿐이라는 게 비참합니다. 제가 살고 싶어하는 상태가 아닌 살고 싶어지기를 바라는 상태라는 게 비참합니다. 웃어보고 싶고 울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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