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할 돈을 모은다는 것.
나는 죽게된다면 최대한 고통이 적게, 그리고 남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방식으로 가고싶다.
다행히 영어를 잘하기 때문에 스위스에서 외국인에게도 시행해주는 의사 보조 자살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조사해보니까 한 1년 간 돈을 모으면, 비용은 얼추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살고 싶어지고 싶을 수도 있으니까, 1년 동안 돈을 모으면서 뭐 하고 싶은 일들 하면서, 살아보긴 할 것이다. 취미생활도 해보고, 운동도 해보고, 공부도 해보고 뭐 다양하게 해보긴 해야겠다.
사람들은 가족 때문에 많이 죽고싶다고 하는데 나는 가족이나 친구들은 좋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도 이렇게 우울함이 반복되는 것은 계속 악화되는 건강때문이다. 더 이상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 그래도 1년은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내가 죽고난 뒤에 남겨진 사람들이 느낄 슬픔이다. 특히 똑똑하고 감성적인 우리 아버지. 아버지가 너무 슬퍼할 것을 생각하면 그게 제일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강인한 엄마랑 같이 잘 살아가실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남자친구, 조금 걱정이 되긴하는데, 사실 크게 걱정은 안된다. 워낙 일을 좋아하니까, 자기가 이루고 싶은 게 뚜렷하고 그걸 이뤄낼 능력도 있는 사람이니까 그곳에 집중하면 잘 이겨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랑 가장 친한 남사친. 나를 사랑한다고 말한 이 친구도 걱정이 된다. 마음이 정말 너무 예쁘고 또 상처받기 쉬운 사람인지. 죽기 직전에 가짜로라도 싸우고 다시는 연락하고 싶지 않다고 거짓말이라도 해야할까? 아.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게 더 좋은걸까?
그냥 이렇게 세 사람이 걱정된다. 다 생각해보면 남자들이다.
나머지 사람들, 내 친구들, 다른 가족들은 괜찮게 잘 살 것 같다. 다들 똑똑하고 강한 사람들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유서를 최대한 밝고 긍정적이게 쓰고 떠나는 것이다. 내가 그들과 함께해서 행복했음을. 그리고 그들이 있었기에 내 짧은 생이 더 길어졌고 더 풍부해졌음을 꼭 적어야겠다. 그들의 사랑에 보답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도 꼭 적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