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너무 응석을 부리고 싶다. 남에게 내 감정을 풀고 싶지 않은데도 누군가를 붙잡고 얘기를 하고 싶은 기분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내가 속상하다고 남 붙잡고 하소연하는 거였는데. 친구들에게 용건이 있는 것처럼 슬쩍 말을 꺼내고, 그러다 말고 싱겁게 식어선 마인드카페 앱을 갈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남이 날 붙잡고 한 시간, 두 시간 감정 풀이 하는 거에 지쳐 난 절대 안 이래야지. 다짐하고 거리를 뒀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염치도 없다. 그리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간신히 참았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서 맥락 있게 글을 전개하지를 못한다. 누군가 봐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니 뭐라도 최소한의 배려는 해야할텐데, 어쩐지 그런 걸 신경 쓰면 아무것도 못 적고 말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아무도 안 봐도 상관 없다는 생각으로 그냥 풀어 적어보려고 한다.
우리집은 돈이 없다. 내가 4학년 때 아빠가 해고 당하시고, 할머니가 병상에 누우셔서 병원비와 생활비가 무지막지하게 나갔다. 수입이 없어서 우리집은 얼마간 대출을 하며 생활을 꾸렸다. 나중에 아빠가 택시를 장만하여 택시 기사가 되고, 수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택시도 다 빚을 내어 샀지만. 아무튼 그렇게 생긴 빚이 아마 2억쯤 될 거다.
엄마는 처음 가세가 기울었을 땐 많이 힘들어하셨다. 원래도 잘 사는 집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만큼 눈처럼 불어나는 빚과 함께 엄마의 한숨소리는 더욱 깊어졌다. 엄마도 그렇게 돈이 없던 건 처음이었을 거다. 엄마는 내 앞에서, 오빠 앞에서, 언니 앞에서 돈 걱정을 많이 했다.
이제 9년이 지난 지금은 엄마도 쪼들리는 생활에 익숙해지셔서인지, 아니면 심리 상담가가 되시며 경제적 궁핍을 자녀 앞에서 이야기하는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어서인지 더이상 그런 이야기를 안 하셨다. 하지만 우리집안이 어렵다는 지각은 계속 있었다. 언니 오빠가 어른이 되며 가끔 나오는 빚 얘기, 엄마가 카드가 막혔으니 뚫릴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잘하고, 우리집 우편통에 카드사 우편이 잔뜩 꽂혀 있는 걸 보면 아 우리집은 돈이 없구나. 빚이 많구나. 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성인이다. 작년이 수능을 치고, 어른이 되었다. 내킬때 언제든 마트에 가서 술을 사 마실 수 있는 나이다. 언니 오빠는 수능을 치자 마자 바로 알바 자리를 구해 자립 했다는데, 나는 코로나 핑계로 알바가 안 구해진다며 아직도 알바경험이 없다. 얼마전에 면접을 봤지만 내가 내성적이라 말도 조금 더듬고, 무엇보다 경험이 없으니 당연하게도 안 뽑혔다. 나는 돈이 없고, 최근 카드가 막혀 곤란해 하는 어머니도 돈이 없다. 아버지도 코로나 때문에 장사가 안 되신다고 한다.
나는 안방에서 엄마와 함께 잠을 잔다. 그래서 엄마가 하는 말을 어찌되었던 남들보단 듣기 되는 것이다. 엄마는 어려움을 티를 내시진 않지만 늘 쪼들리고 계신다. 엄마는 아빠가 더 돈을 더 많이 벌어오길 원하신다. 그도 그럴게, 아빠가 가져오는 돈은 웬만한 알바만큼의 수입인 것이다. 하루 종일 택시를 돌려 나오는 돈이 그정도다.
오빠는 그런 아빠의 수입에 아빠가 가장의 역할을 못한다며, 10년 전부터 아빠를 보고 배울 건 하나도 없었다며 화를 냈다. 오빠 말로는 아빠가 그렇게 돌고 돈을 그만큼 버는 게 말이 안 된다고 한다. 적어도 200은 벌러와야 하는 거 아니냐며 화냈다. 오빠는 요즘 취준을 위해 공부를 하고 있는데, 시기가 시기인지라 더 민감한 것 같다. 오빠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집 애들은 다 부모님 도움 받아 취준을 하는데 왜 나는 이렇게 쎄빠지게 알바를 해서 돈을 벌고 공부를 해야하냐고. 가뜩이나 한쪽 눈이 잘못돼서 남들이 물어보는 게 스트레슨데 왜 이렇게 악착같이 돈을 벌어 공부를 해야하냐고.
오빠는 아빠의 무능과 별개로 아빠가 돈을 어딘지 모르지만 헤프게 낭비하고 있을 게 분명하고, 자신은 그게 마음에 안 든다고 한다. 역겨우니까 열심히 노력했는데 그만큼 벌어오는 것처럼 포장하지 말라고 했다. (물론 이 말은 아빠가 없을 때 나왔다.)
나는 오빠가 힘든 시기에 지원을 못 받으니 서럽기도 하고, 아빠의 무능, 그리고 아빠의 정직성에 대한 강한 불신을 품고 있어서 그런갑다 싶었다. 하지만 오빠의 토로는 나에겐 한가지 변화를 만들었다. 서로 말도 없고, 정도 없지만 그래도 싫어하지는 않는 평범한 가족 관계일 거라는 내 생각이 오빠의 말로 무너져내린 것이다.
아빠는 가끔 우리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과일이나 음식을 잔뜩 사오신다. 과일 10만원어치, 고기 10만원어치를 말이다. 돈이 없다고 아이 소지를 안해야하는 건 아니다. 하지난 겨우 그런 과일에, 고기에 10만원씩을 턱턱 내시는 걸 보면 아직 금전 개념이 고등학교 시절이고, 카드값에 한숨을 내쉬는 어머니와 같은 방에 살고, 바로 얼마전 아빠를 싫어하다못해 혐오하는 오빠의 고성을 들은 나로서는 어쩐지 그런 걸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집안 살림을 모르는 걸 역력히 티내듯 냉장고 빈공간은 생각치도 않고 그냥 물건을 턱하니 사오는 모습을 보면 더 그렇다.
나야 과일도 좋고,고기도 좋고, 어찌되건 집안의 식량이 되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집안 살림을, 어른의생각을 아직 모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뜯어말리지는 않는다만, 최근의 갈등을 생각하면, 심정이 복잡해진다.
아마 오늘따라 정신이 불안정해진 것도 이 탓인 것 같다. 오늘은 엄마의 생일이었고, 엄마는 카드값을 막아야한다며 생일 선물로 돈을 받길 원하셨다. 나는 설거지로 받는 용돈이 내 수입의 다였지만 쥐꼬리만한 주급을 봉투에 담아 드렸다. 그리고 오늘 아빠는 가리비 20kg어치를, 원래 20만원짜리를 친구를 통해 헐게 샀다는 말과 함께 떡하니 가져오셨다.
어린아이 몸통만한 가리비 상자를 봤을 때 내가 어떤 느낌이었을까? 나는 아직 이걸 잘 생각을 못하겠다.
나는 한 냄비 가득 가리비를 퍼다 삶아서 총 16개를 먹어치웠다. 그리고 속이 불편해서 죄다 게워냈다. 17개를 삶았는데 1개는 먹지도 못했다. 가리비를 입가에 가져다내는데 그 냄새, 그 꼬릿한 냄새를 맡자마자 구역질이 났다.
언니는 오빠가 아빠에 대해 원망을 쏟아낼 때 아빠가 바람을 피고 있을 거라며 확신조로 말했다. 증거가 있는 건 아니다. 최근 심해진 언니의 피해망상적 성향과 히스테리, 그리고 유아퇴행이 의심될 정도의 편협성을 감안했을 때 다분히 과장된 면이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언니가 돌아와 가리비 상자를 가리켜 이게 무엇인지 묻고, "아빠가 진짜 돈 주기 싫어하는가 보다." 라고 말하는 걸 들었을 때. 외도의 진위여부와 별개로 속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게 있는 것이다.
이건 아빠에게 진실되게 터놓고 요구사항을 이야기하면 해결될 사소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집안은 대화가 그리 자연스러운 집안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이게 안 좋은 쪽으로 가면 어쩌나 걱정도 된다. 내가 나설 일이 아닌 것 같다.
나의 경제적 자립도가 낮고, 능동감이 떨어진 지금 과도하게 예민하게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나는 평소보다 더 정신을 부여잡기 힘들었고, 결국 마인드 카페에 들어서서 이런 글을 쓰고 있다.
지금은 머리가 말끔하다. 횡설수설하는 글이지만 적어도 덕분에 감정이 정리된 것 같다. 내가 이 앱을 알고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