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볼에 까만색 털이 붙어 있어서 눈썹인 줄 알았다. 보니 원래 솜털이어야 할 털이 까맣게 한가닥 자라 있었다. 오늘 집단상담을 갔다. 처음은 '화를 내자'였다. 화를 연습하자고 가는 데니까. 선생님 얼굴을 안 보고 계속 화를 냈다. 고개를 숙이고 화를 냈다. 무릎을 쳐다보며 화를 냈다. 저번주는 그렇게 가식적이었는데. 한번도 이렇게 화낸 적이 없었다. 선생님이 울었다. 나도 울었다. 선생님을 믿지 못하겠다.  선생님 우는 것도 못 쳐다보겠다. 상담이 끝나고는 어디 떨어져 죽고 싶었다. 계속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제 왜 사람을 믿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믿음이 없다고 쓰레기가 아니잖아. 난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 매주 감사하다고 했고 편지도, 선물도, 마음도 다 드렸는데, 오늘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날 못 믿는 것 같았다. 아이같은 내가 지겨워. 의지할 곳이 없어서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행동하는 것도. 그냥 속은 것 같네. 나이 많고 경험 많은 어른을 믿는 게 아녔어. 질질 끌려다닐 뿐이야. '착하지'하고 이용당할 거야. 난 그 사람이 이렇게 힘들게 날 좋아한 줄은 몰랐지. 그래서 난 더 '응애응애'한 것 같네? 그 사람이 날 비아냥 거리는 게 좋지. 나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다면 가련하게 눈물 흘리는 것 보는 것보다 내가 욕 먹고 말지. 그래, 의지할 곳 없는 아이 괴롭히는 나쁜 사람으로 만들 거야. 그리고 사이가 안 좋아져서 떠날 거야. 난 계속 혼자일 거고. 그런데 그렇게 사람들이 양심이 있을까. 의지할 곳 없는 사람은, 더 괴롭히던데. 집단원들은 다 거짓말쟁이야. 그래, 다른 사람 나쁜 사람 만들면 편하지. 제발 나 좀 바꾸려 좀 하지마. 그냥 좀 병/신이라고 생각해. 너네들은 변덕도 심하면서, 내가 부모를 위한 좌절과 노력이나 사람들에게 질리게 붙는 애벌레 같은 짓을 해온 걸 알면서, 너네는, 실망하면 금방 토라지고 화내고, 난 그런 걸 잘 못한다고! 시/발. 난 가식적으로 남 가르치는 것도 그만하자. 정말. 정말 무서워. 변덕, 가식, 천진난만함... 남들이 나보다 좋아보이는 속임수야. 재미없고, 멍청하고, 호/구같고 남한테 진심으로 감사할 줄도 몰라서 미안해. 진짜로. 미안. 난 부모의 변덕에 익숙해져야 했거든. 감정이 없어. 그냥 좀 놓아줘. 그런데 내 진짜 모습을 알게 된 것 같애. 남 엿 먹일려고 믿는 척한 것 같애. 아니. 그게 아니라 난 남들이 이렇게 이기적일 줄 몰랐지. 적어도 다들 나처럼 솔직한 줄 알았지. 맞아. 난 항상 남을 개미 보듯 쳐다봤어. 감정없이. 근데 나도 고작 개미고 잘난 척 하는 남들이 이상한 거야. 있잖아, 근데 이젠 관찰도 그만하고 싶어. 애정이라고 생각한 마음은 믿음이 아니라 내가 사람을 너무 이해하고 싶어서 그냥 쏟아부은 느낌인 것 같고, 믿어보고, 이 감정을 하나하나 다 느껴보니 고통스러울 때마다 날 찌르고 싶고, 버겁네. 사람들에게 인내심을 가지고 존중을 얻어도 허무해. 고작 나를 위해 그 사람들이 애쓸 필요도 없고 사실 나도 그 사람들이 그렇게 좋진 않아. 아니, 그냥 그 사람들은 깊이 생각한 적이 없어보여. 시/발. 선생님 믿고 사람들에게 진지했다가 선생님을 신봉하거나 가톨릭 수녀가 될 뻔 했겠어. 마음도 없는데 말야. 20대 초반에 뭘 생각하고 싶냐면, 화 많고 눈물 많은 사람들이랑 나 같이 감정없는 찌/질이가 서로 어울리려면 재미가 필요하겠어. 사실 생각을 좀 해볼래. 좀 세밀하게. 내 생각엔 상담 선생님도 반성이 필요해. 정말 날 위한 감정을 보여주는 게 좋을 거야. 근데 그러면 무서울 것 같기도 하고. 그래, 무서운 사람인 거 알아. 그만할까? 집단상담을? 차라리 처음부터 '믿는 척'하지 말자. 왜 남이 소중한 척했지? 난 그냥 개미를 생각한 거지. 그냥 감정에 단순해지니 나타나는 엉뚱함이 어디가니? 감정은 복잡하고 아프잖아. 어쩌니? 이렇게 서투르면. 날 동정하기라도 하자.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