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일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고민|자살|이혼]
알림
심리케어센터
마인드카페 EAP
회사소개
black-line
초등학교 때 일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비공개_커피콩_아이콘비공개
·4년 전
제 아버님과 어머님은 원래 각각 가정이 있으셨던 분들이십니다. 아버님은 이혼을 하시면서 아들과 딸 중 딸을 대려오셨고, 어머님은 사별을 하시며 하나 있던 아들은 시부모님이 대려가시고 그렇게 홀아비가 된 아버지와 혼자가 되신 어머님이 만나서 결혼하셨습니다. 그 사이에서 제가 태어나게 되었고요. 사랑보다는 필요해서 한 결혼이었는지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계속 심하게 싸우셨습니다. 어릴 적 기억으로는 가위나 의자가 날아다닐 때도 있었고 천장에 있던 전구가 깨지거나 경찰이 들어오기도 했고, 자식들 앞에서 이혼 서류 내밀기도 했으니 상당히 심했다고 생각되네요. 그런 집안이어서인가 아들이 따돌림 당하는 걸 눈치 못 채신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이름으로 불린 기억은 거의 없고 저 새끼 왜 아직 살아있냐, 왜 태어났냐, 죽기 무서우면 죽여 주겠다 등의 말을 매일같이 듣고 살면서 집 안에서는 부모님이 원하시는 좋은 아들을 연기하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학비 문제로 고등학교를 못 가셨던 게 한이었는지 제 공부에 신경을 많이 쓰셨고, 초등학교에 들어간 날부터 매일 영어단어 외우기, 책읽고 독후감 쓰기 등을 지정해 주신 분량만큼 하고 보고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은 부모 말에 무조건 따라야 된다며 '예 알겠습니다' 이외의 대답을 싫어하셨습니다. 제가 힘들다고 넌지시 말할 때면 기도하면서 지혜롭게 하라고 말하시고는 제가 무언가 실수하면 지혜롭게 하라고 했는데 왜 말을 듣지 않느냐며 혼났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저 아이들 손에 살해당하겠다 싶어서 살던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서 떨어지려고 했습니다. 가끔씩 열려있던 옥상 문이 그날은 잠겨 있었고, 어쩔 수 없어서 15층 난간으로 다가가니 팔을 최대한 뻗어도 난간에 손이 닫질 않았습니다. 혹시나 될까 싶어서 뒤로 물러섰다가 뛰어서 올라가 보려고도 했지만 평소 운동도 싫어하던 제게는 무리였습니다. 그 날 15층과 옥상 사이 어두운 구석에서 울었습니다. 혹시나 우는 게 다른 사람에게 보여서 부모님 귀에 들어갈까 봐 입을 틀어막고 소리죽여 울었습니다. 다 울고 시간이 좀 더 지나서 부은 눈이 괜찮아질 때 쯤, 날이 좋아서 걷고 왔다며 웃으면서 집에 들어갔습니다. 따돌림이 점점 심해져서 제 물건이 시라지거나 부서지는 건 예사 일이고, 화장실에 다녀오면 노트는 찢어지고 연필로 잔뜩 그어져 있거나 책상이 엎어져 있었습니다. 정말로 못 참겠다 싶어서 하교시간이 지난 이후 선생님 한 분께 정말 죽을 것 같아서 그러니 이야기 좀 들어 달라고 하자, 선생님은 퇴근시간 지났다면서 그대로 나가셨습니다. 한 번은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제 팔 다리를 붙잡고 미술 시간 준비물이었던 조각칼로 위협한 적도 있었습니다. 다리 한 쪽에 두 명, 팔 한 쪽에 한 명씩 잡고 한 아이가 제 머리채를 잡고 안경을 벗긴 후 조각칼을 한 쪽 눈에 닫을 만큼 들이대며 웃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안구 한 쪽 파열된다고 죽을 리도 없고, 고작 초등학생 팔 힘으로 두개골까지 닿을 리도 없으니 죽을 위기까지는 아니었겠지만 당시에는 정말로 무서웠고, 죽기 싫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서 버둥거리면서 살려달라고 소리쳤습니다. 쉬는시간이 끝나고 아이들은 제자리로 돌아갔고, 여전히 떨면서 울고 있던 저는 선생님께 수업 시간에는 자리에 앉아 있으라고 야단맞았고, 종례 시간에는 교실에서 소리를 질렀다며 한 번 더 야단맞았습니다. 이후에도 4층 교실 창들에 올라가게 해놓고 돌아가면서 발로 걷어차기, 팔 다리 붙잡은 채로 연못에 얼굴만 박아 두기, 학교 담장 철조망에 얼굴 박기 등 여러 괴롭힘이 이어졌고, 그럴 때마다 주먹을 날리든 소리를 지르든 살고 싶어서 저항하고 그 때마다 저희 부모님은 오셔서 아이가 주먹질을 해서 죄송하다며 사과하셨습니다. 한 번은 정말로 이러다간 저 애들 말대로 내가 죽겠구나, 저 말대로 나도 내 부모도 저 에들이 죽이려 들겠구나 싶어서, 제 인생은 망치더라도 가족은 살려야겠다 싶어서 학교에 식칼을 가져간 적이 있었습니다. 집 안에서 가장 큰 식칼을 가지고 신문지에 몇 번을 감싸서 교과서 사이에 집어넣고 가져갔습니다. 나 혼자서 죽일 수 있는 사람은 한계가 있겠지만 내가 잡히거나 죽기 전까지 최대한 죽이자고 다짐하면서 학교로 갔습니다. 그 날 조례 시간에 선생님께서 너희들이 잘못하면 너희들 엄마 아빠가 대신 처벌받는다며 겁을 주었고, 학교가 끝날 때까지 수 백 번을 고민하다가 결국 한 번도 꺼내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서 부모님이 오시기 전에 칼을 다시 주방으로 가져다 정리했습니다. 중학교는 거리가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고, 600명이 넘는 졸업생들 중 저를 포함해서 4명만이 제가 가는 중학교로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이름으로 불러주는 아이들을 만났고, 비웃거나, 때리거나, 죽으라는 말 대신 웃으며 말을 걸어주는 아이들을 보고 제발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죽여달라고, 죽는다면 이렇게 행복할 때 죽여달라고 매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기도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살고 싶다는 게 이런 느낌이었구나 느끼고, 사람과 대화한다는 걸 배우고, 내일도 살아있게를 바라는 저를 보고 내가 이럴 수도 있었구나 하며 놀랐습니다. 그 즈음에 제가 당했던 일들 태반이 법적으로는 죄가 아니며, 제가 그 날 그 자리에서 칼에 맞아서 한 쪽 눈이 실명하거나, 그 자리에서 죽어도 그 아이들이 법적으로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아이들 실명을 거론하며 많은 시람들 앞에서 말하면 제가 법적으로 처벌을 받는다는 것도요. 헌법상 만 10세 미만은 무슨 행위를 하더라도 범죄성립이 불가능하며, 나는 아무리 사실을 말한다고 해도 사실적시 명예회손으로 처벌당한다. 사람을 죽이고 그걸 웃으며 떠들어도 죄가 아닌데 살려달라고 소리치면 그건 범죄라니 이건 무슨 소리인가 싶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게, 살아가며 노력한다는 게 다 의미없는 짓으로 보였고, 나중에 어른되면으로 시작하는 다른 어른들의 말이 어이없게 들렸습니다. 나는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언제 길 기다 칼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데 왜 십 년, 이십 년 뒤에 당연히 살아있을 거라는 듯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차라리 행복할 때 자살하자고 다짐해 놓고 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중학교 때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걸어주는 아이들을 보며, 정말 시답잖은 대화 하나하나까지도 잊기 싫어서 매일 밤마다 낮의 대화를 되새기고, 기록하고, 꿈 속에서도 그 아이들을 보면서 하루만 더, 하루만 더 살자, 하루만 더 저 아이들과 대화하자 하다 보니 졸업식 날 까지도 죽질 못하고, 졸업식이 끝난 다음에도 고등학교에 저 아이들 중 일부는 같이 간다며 죽질 못했습니다. 부모님이 골라 주신 집에서 지하철로 사십 분이 걸리는 고등학교에 가고 나서, 내가 왜 아직도 살아있지 의문을 품으며 그냥 습관적으로만 살았습니다. 그렇게만 살아도 칼도, 주먹도, 발차기도 날아오질 않았으니 죽지도 않는구나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이들에게 시선이 가고, 조금 시끄럽지만 내게 아무런 짓도 하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도와주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싸우고 난 뒤 한 쪽씩 가서 이야기를 들어주던 것에 비하면 쉬워서 계속 해 주다 보니, 고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게 신기하고 놀랍고, 그 말 한마디가 잊혀지질 않아서 그렇게 남 위로하기를 계속하며 살다 보니 이렇게도 살아진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스물 네살이나 먹어버린 지금도 제가 내년에 살아 있을 거라고 믿지는 않습니다. 어릴 적에 그랬고, 그 아이들 중 누구도 처벌받은 적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지금 다른 사람들 중에는 어린아이를 재미로 칼로 찌르면서 웃고 그걸 자랑할 수 있는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겠구나, 자기 자식이 칼 맞아 죽어간다는 소식에 자식 앞에서 기뻐하는 부모들이 더 많겠구나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여전히 누군가를 위로해주고 그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이걸 위해서 아직 살아 있구나 느끼면서도, 위로해 줄 게 없으면 도망쳐버리는 제가 어색합니다. 남에게 뭘 기대하거나 위로해 주는 것 말고도 대화하는 법을 익혀 보려고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부모님 말에 따르다보니 학점은 엉망이라도 괜찮은 대학에 왔고, 사지도 눈 귀 내장도 어디 결손된 부분 없이 멀쩡하니 살려고 노력하면 어떻게든 살 수 있다는 희망은 있습니다. 다만 저와 비슷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저만 이런 게 아니라는 확신을 얻고 싶었습니다. 길고 두서없고 지루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염치없지만 혹 본인이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계시다면 답글로 조금 적어주시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사랑해트라우마공허해불안해무서워
지금 앱으로 가입하면
첫 구매 20% 할인
선물상자 이미지
따옴표

당신이 적은 댓글 하나가
큰 힘이 될 수 있어요.
댓글을 한 번 남겨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