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떤 길로 가야하는 걸까요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불안|이혼|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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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떤 길로 가야하는 걸까요
커피콩_레벨_아이콘bibizza
·4년 전
우선 저는 올해 서른이 되었고 통잔잔고엔 적금포함 200이 전재산입니다. 아버지는 신불자이고 빛이 아직 많이 있으시고 밑으로 여동생이 한명있습니다.어머니는 5년전에 폐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어릴적부터 저는 아무 재능도 의욕도 없는 보잘것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건 지금도 변함이없지만 그에비해 동생은 개천에 용이었습니다 학업성적도 우수하고 컴퓨터자격증과 한문자격증을 초등학생때 모두 다 땄을 정도로 똑똑했으니까요 부모님은 성향이 극과극 이셨습니다 어머니는 과할정도로 엄하고 체벌이 많으신 편이었고 아버지는 애써 집안에 울리는 고성을 무시하곤 하셨죠 저는 대학생때까지도 잘못을하면 빰을 맞고 머리채를 잡혀 방 이곳저곳을 끌려다녔고 발로 몸 이곳저곳을 차였습니다 가장 심했던적은 초등학생 때였는데 일기장에 맞은 일을 썼다가 담임선생님과 면담하고 오신 어머니가 칼을 들고와 둘다 같이 죽자며 하셨던 일이었던것 같습니다 동생과 저는 6살정도 차이가납니다 초등학생때까지 늘 상위권이던 동생의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한 중학교 시절부터 체벌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대학생이고 아버지도 일을 하러 가시면 제가 맞던것처럼 동생에게도 무차별적인 폭행이 이어졌습니다 대부분의 이유는 성적이었던것같습니다 저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핑계로 서울로 도망쳤고 2년가까이 서울에서 일을 하다가 어머니 건강이 않좋아지셔서 울산으로 내려와 쉬면서 간단한 간병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6개월을 못넘기시고 돌아가셨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부터 서서히 저희가정은 무너져 내리고있었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동생은 갑작스럽게 자신을 다그치던 존재가 사라지자 학교도 나가지않고 밤을 세워가며 게임만했습니다 어머니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저는 부산으로 일을 하러갔고 아버지도 정신이 없으셔서 신경을 쓰지 못했던게 화근이었던것 같습니다 가까스로 동생 담임선생님께서 집에 찾아와주시고 전화도 해주시면서 동생은 겨우겨우 졸업일수를 맞추고 부산에있는 대학의 카지노딜러과를 지원했습니다 당시 아버지와 저는 둘다 동생을 뜯어말렸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허락을 하시고 부산에 자취방을 얻어주시며 생활비도 보내주시면서 공부에만 집중할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녹녹찮게 많은 비용이 동생밑으로 들어갔지만 동생은 1학기 강의를 2주만에 포기했습니다 집으로 성적표가 날아왔을때 전과목이 F였습니다 아예 학교를 안간거죠 이유는 외모차별이었습니다 교수님들이 몸매예쁘고 얼굴예쁜 애들만 차별하는게 싫어서 그랬다고 하더라구요 더이상 등록금은 낭비인것 같다고 아버지와 저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무엇보다 본인이 할 마음이 없어 보였습니다 학교는 자퇴를 했고 중간에 나가는거고 동생때문에 장판과 열선이 다 박살났다며 오히려 보증금을 못돌려준다는 집주인분 때문에 날린돈만 1000만원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도 부산에서 일을 그만두고 울산본가로 돌아와 가족들과 같이 지냈습니다 울산에서 직장을 구해서요 동생은 눈뜨면 게임을하고 자는시간외엔 먹기만했습니다 1년정도 본가에서 지내다가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이 불편해서 다시 서울에서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그맘때쯤에 집에 둘만 남겨진 동생과 아버지가 많이 싸웠고 결국 동생은 공장일이라도 하겠다면서 경기도에 올라갔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김포에 있을때 친구과 함께 살고있는 집에 친구의 권유로 동생이 잠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혼자사는 집이 아니어서 함께 사는 내내 친구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신경써야해서 동생 빨래며 설거지 모든 어질러진 집안을 두달동안 말없이 치웠습니다 그러다 사실상 동생혼자 있는 원룸 전기세가 평상시보다 3배정도 더 나오게되자 친구와 크게 다투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그간 동생이 말없이 자신의 물건을 써서 화가나있는 상태였고 저는 더이상 동생을 품어줄 힘이 없어져서 동생을 울산으로 내려보냈습니다 한두달이 지나고 동생은 다시 경기도 공장이 일을 구했고 저는 당시 인천에 있으면서 간간히 동생과 시간을 보냈습니다 당시에는 동생이 벌이가 저보다 괜찮아서 밥을 종종 사주기도하고 돈을 빌려주기도 했었습니다 같이 살지 않으니 부딪힐 일이 없어 사이는 곧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던중 외로워하시던 아버지가 어플로 만난 여성분과 2달연애끝애 혼인신고를 하셨고 여자분쪽도 아들딸이 있으니 울산집엔 어쩌다 하루이틀 머무는것 외엔 내려오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당시 동생은 울산본가로 내려가 편입공부를 하고싶다고 아버지께 얘기했단 상태였습니다 더불어 결혼자금이나 물려줄 유산은 하나도 없을것이라고 딱잘라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받을 생각도 없었지만 아버지에게 버림받는 느낌이었습니다 냉정하게요.. 아버지는 재혼하신지 얼마 지나지않아 새어머니와 유치원사업을 하셨고 결과는 빛과 이혼이었습니다 중간중간 돈을 빌려달라거나 대출을 빌려달라고 하셔서 잠시 연락을 피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도 여러가지 사건으로 믿었던 사람들에게 심하게 상처받게되어서 다시 울산으로 돌아와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동생도 두달 후 일이없어 그때부터 지금까지 같이 살고있습니다 벌써 6개월째네요 처음 3개월은 그저 좋기만했슴니다 외로움도 많이타고 우울감이 좀 심해서 동생이 옆에있는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작년부터 일하고있던곳이 올해 새로운 사장님이 계약하실거라 작년4개월가량 알바로 일했습니다 그러다 올 1월 리모델링을 해야해서 1월부터 벌이도없이 적금을 깨서 살아가고 있었숩니다 2월초 출근이 공사문제로 넷째주까지 밀려났고 출근하자마자 코로나가 터지면서 3월초 다시 무기한 무급휴가에 들어갔습니다 사정상 실업급여도 받을수없고 수중에 돈은 떨어져가고 월세낼돈이 버거워 보증금에서 까먹고있는 중입니다 알바라도 알아보려하니 저리가없어 전전긍긍 중입니다 5월이면 계약만기인데 지금 집이 직장에서 출퇴근만 버스로 두시간이라 회사근처로 가려해도 보증금이 모여질지 불안하고 심지어 집천장에선 물도 세서 지금도 바닥에 박스를 매일매일 깔았다 교체하길 반복하고있습니다 집주인분께는 말씀드렸지만 본인이 공사를 하겠다고 하시더라구요 아직도 공사는 하시지않으셨습니다 이래저래 나가야만 하는 상황인데 6개월내내 집안일조차 돕지않고 가끔도와주는것도 성질을 내가며 게임만 하는 동생때문에 결국 화가나서 방금 대판 싸웠습니다 마음이 좋지 않네요 물론 동생도 일이 구해지지않아서 집에 있는거겠지만 동생이 공장을 들어가서도 최대로 일한 기간이 3개월일 정도로 의지가 많이 약합니다 당연히 모아놓은 돈도 없고 돈생기면 쓰기 바쁨니다 돈은 없지만 먹고싶은건 많아서 1월부터 식비로만 200정도가 나갔습니다 이제 저도 잔고를 보고 너무 불안해져서 이상황을 어떻게 해야할지.. 제가 뭘 얼마나 더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대학등록금도 국가대출로 빌려 제가갚았고 이제껏 잘 살지는 못했어도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물론 20대 방황을 많이하면서 모아놓은 돈이 없어 동생을 품어주지 못하는게 많이 미안하지만 언제까지 제가 이렇게 살아야하는지 언제나 동생을 다그치면 일이 안구해지는걸 자기가 어떻게 할수있나며 오히려 화를 내는 동생에게 무슨말을 해주어야 하는지.. 상의할 부모님도 도와줄 가족도 없는 상황이 참 답답하네요 아버지와는 작년 12월 밥을 한번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조금은 풀렸습니다 돈50을 쥐어주시면서 미안하다고 하시더라구요 올해는 꼭 날아간 집도 되찾고 다시 우리집을 일으켜 세울거라고 하시면서요.. 그런 아버지에게 차마 입이 떨어지지않아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에 길게 한풀이 해봤습니다.. 그냥..괜찮다고 누가 한마디만 해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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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kik1
· 4년 전
꼭 잘 사셨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너무 너무 잘 해오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