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에 강아지를 버린 적이 있어. 벌써 십여년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스트레스]
알림
심리케어센터
마인드카페 EAP
회사소개
black-line
비공개_커피콩_아이콘비공개
·4년 전
어릴적에 강아지를 버린 적이 있어. 벌써 십여년이 다 되어가는데 종종, 아주 생생히 기억이 나. 강아지 이름은 멍이였어. 아주 작았고, 털이 거친게 삽살개 같았고, 아랫턱이 조금 튀어나와 가만히 있어서 이빨이 보이는게 귀여웠어. 아주 활발했지. 어느날 언니가 나를 동물병원에 데려가선 '같이 데려가면 아빠도 뭐라 안할거다'라며 무료 분양하던 새끼 강아지를 한마리 데려왔던게 멍이였어. 그땐 강아지를 어떻게 키워야하는지도 몰라선 거실에 철장을 두고 가둬 키웠어. 나는 잘 키울 자신이 없어서 언니한테 책임을 전가했어. 데려올때부터 언니가 키우는거라고 신신당부를 했었거든. 나는 중학생이라 아침부터 방과후까지 하면 저녁 늦게까지 학교에 있다가 집에 오면 밥만 챙겨주고 숙제부터 하고, 또 약속 있으면 친구 만나러가고, 언니는 언니대로 학교에 친구만난다고 바쁘고, 결국 멍이는 부모님이 돌봤어. 나는 가끔 내가 내킬때면 놀아주는게 다였어. 그런데 항상 갇혀있으니까 애가 뭐로 소통을 하겠어? 짖지. 그거에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스트레스를 받고, 나는 제발 짖지말라며 꾸짖기만 했어. 그러다가 아빠가 멍이 철장을 화장실로 옮겨버렸어. 도저히 관리가 안된다고. 냄새도 너무 나고 시끄럽다고. 나는 뭐라고 할 수가 없었어. 맞는 말이니까. 그때엔 언니를 원망했어. 자기가 키운다고 같이 데려와놓고 나한테 떠맡기듯이 해서 나는 신경쓴다고 챙겨도 늘 내가 혼나니까. 그런데 지금 말하자면 내가 신경쓴건 별것도 아니였어. 그게 너무 후회가 돼. 좀 더 알아보고 좀 더 보살폈어야했는데. 그렇게 멍이는 화장실에 살게 되었지만 변한건 없었어. 똥은 제때 치우지 않아 철장에서조차 냄새가 났고, 아무도 없는 찬 화장실에서 혼자 짖었어. 나는 그땐 연민과 애정도 있었지만 솔직히 짜증이 났었어. 그러다가 어느 날 아빠가 말했어. 개 버리고 오라고. 저렇게 키울거면 그냥 길에 버리고 오라고. 나는 잘 키우겠다. 그러지말아달라고 빌었지만 아빠가 매를 들며 위협하는게 너무 무서웠어. 결국 멍이 목줄을 채우고 밖에 나갔어. 산책을 했어. 멀리 멀리. 평소에 안갔던 곳으로. 문득 발길이 닿는 곳까지 가니 엄마가 일하는 식당 근처더라. 엄마한테 가서 매달리고 싶었나봐. 분명 엄마는 멍이를 다시 집에 데리고 가겠지. 그리고 아빠랑 시끄럽게 싸울거야. 또 멍이는 화장실에 갇혀 그렇게 살겠지. 멍멍 서럽게 짖으며. 그렇게 생각하니 그냥 차라리 길에 풀어주는게 멍이를 위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비겁한 자기합리화였어. 멍이한테 술래잡기를 한다고 했었어. 목줄을 풀어주고 달렸어. 오랜만의 자유에 신이난 멍이도 달렸어. 나보다도 더 앞으로 멀리 갔지. 나는 골목 사이로 들어가 빙빙 돌다 나왔어. 멍이는 보이지 않았어. 보이지 않으니까 울음이 터져서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어. 그리고 기다렸어. 혹시 나에게 와주지 않을까. 노을이 지도록 벽에 기대 쭈그리고 앉아 기다렸어. 오지않았어. 멍멍 짖는 소리도 들리지않았어. 나는 집으로 향했어. 멍이도 나랑 있는게 싫었나보다. 맨날 가둬둬서 그랬겠지. 밖에 훨씬 더 좋은가봐. 차라리 잘된 일이야. 하고 끊임없이 자기합리화를 했어. 집에와선 녹이 쓸고 똥 부분 부분 굳어 떼어지지않는 철장을 정리했어. 강아지 용품도 정리하고. 엄마가 돌아와 상황을 알고 결국엔 아빠랑 싸웠어. 그리고 나한테 왜 엄마한테 데려오지 않았냐고 혼냈어. 솔직히 그 말 듣는데 아무 감흥도 없었어. 나는 뻔히 예상되는 시끄러운 상황과 반복될 악순환이 싫었어. 그런데 십여년이 지나고서도 드문 드문 생각이 나. 신이 나 보였던 멍이 표정. 멀리 골목 사이로 뛰어가던 뒷 모습. 철장에 갇혀 울던 모습. 이름을 부르면 항상 반가워하던 그 맑은 아이. 어떻게 내가 그럴 수 있었을까. 왜 그랬을까 . 어떻게 그 천사같던 아이를 그리 쉽게 놓아버릴 수 있었을까 지금 또 되새겨도 후회가 돼. 아니, 머리가 굳고 생각이 많아질 나이가 되니 더 미칠 것 같아.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 후로 그 골목 근처조차 가질 못했어. 혹시라도 다시 만나도 나는 다시 데려올 수가 없어서 늘 피하다니다가 최근에야 종종 가봤지만 멍이 같은 아이는 보지못했어. 마치 내가 그 아이를 죽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 죽인 것과 다름이 없다고. 길 위의 삶이 얼마나 힘든데 태생이 집강아지인 그 아이가 어떻게 멀쩡하겠어. 내가 죽였다고. 나 이젠 강아지에 대해 많이 알아보고 공부했어. 멍아, 너무 늦었지만 나한테 다시 한 번만 더 와주면 내가 정말 행복하게 해줄게. 혼자 두지도, 굳지 짖지 않아도 다 알아봐줄게. 미안해. 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데 미안해. 정말 미안해.
지금 앱으로 가입하면
첫 구매 20% 할인
선물상자 이미지
따옴표

당신이 적은 댓글 하나가
큰 힘이 될 수 있어요.
댓글을 한 번 남겨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