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자살)도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지 않나요?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고민|자살|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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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자살)도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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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고등학생 때 진로 고민으로 방황하다 뒤늦게 제가 원하고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길이 음악 계열이라고 판단해서 그 후에 지금은 어찌저찌 음대생이 됐습니다. 다행이 음악이 그나마 제 적성에 맞는 거 같기는 합니다만, 문제는 그에 대한 저의 열정과 의지가 음악적으로 무언가 성취를 해내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음악에 대한 관심도나 선호정도가 음악취미생의 수준에서 더 나아가질 않습니다. 사실 인문계에서 음악쪽으로 진로 고민을 할 때도 느꼈지만, 저는 워낙 욕심도 없고 설사 욕심이 생겨도 가지지 못할 것 같으면 큰 아쉬움 없이 쉽게 포기해서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이뤄본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음악 쪽을 생각하기 전까진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었고, 무언가 열심히해서 이뤄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습니다. 이는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래왔고요. 삶 자체에 의욕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 어쩌다보니 태어났는데 죽지 못해서 그냥 살고 있는 느낌? 결국엔 그나마 시키는대로 하던 공부도 고등학생이 되면서 공부의 양이 늘어나니 점점 하기 싫어졌고, 정말 내가 원하는게 뭔지 생각해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죽음이었습니다. 죽으면 생존을 위해서 무언가 열심히 해야 할 필요가 없잖아요? 하지만 그 당시엔 최대한 덜 아프게 죽을 마땅한 자살 방법이 없었고, 여러모로 용기도 부족했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제 마음을 애써 묻어두고 산다는 가정하에 다른 길은 뭐가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게 바로 음악이었고요. 하지만 늘 죽음에 대한 미련은 있었던 거 같습니다. 결국 음악도 공부처럼 한계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는 제 솔직한 마음을 억지로 외면하는 것도 이제는 지치기도 하고요. 만약 돈많은 백수가 돼서 평생 일하지 않고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면 저는 죽음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단지 살기 싫어서 죽고 싶다기 보다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죽고 싶은거니까요. 물론 제 가족과 몇몇 지인들께 말 못할 큰 상처가 될 거라는 걸 잘 압니다. 그 때문에 망설여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런 이유로 계속 살아가기엔 제가 너무 지칠 것 같습니다. 결국 또 한계가 오겠죠. 어떻게든 의욕없는 저를 묵살하고 열심히 살아보려고 발버둥쳐봤는데 이젠 그만하고 싶네요. 무엇보다도 시도해볼 만한 괜찮은 자살방법을 찾아내기도 했고요. 원해서 살게 된 삶도 아닌데 방법도 찾았겠다 이제 그만 내려놓고 싶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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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verfrog
· 4년 전
여기에 저정도 글을 적을 정도면 살 의지가 내면에는 있다는 뜻입니다. 힘내시고 저랑 더 얘기 하고 싶으시면 얘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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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글쓴이)
· 4년 전
@beaverfrog 늦은 시간에 말씀 감사합니다. 제가 여기에 열심히 글을 쓰게 된건 잠이 안와서이기도 하고 죽음에 대한 제 마음이 확실한지 확인해 보고 싶어서이기도 했어요. 그저 충동적으로 우울감에 죽고 싶은 건 아니거든요. 중요한 선택이니까 제 마음에 대한 다른분들의 얘기도 들어보고 싶기도 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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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1young1
· 4년 전
목표의식만있으면되겠네요 글로만봤을땐 잘하는걸해보세요 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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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mewhy
· 4년 전
사고가 충동적이지 않고 논리정연하게 잘 정돈돼있네요 이성적이고 지적능력이 높으신 분 같군요. 기록에 남아있는 많은 철학자들도 죽음에 대해서 그대가 생각하는 것처럼 접근했었죠. (일단, 증명할 수 없는 사후 전개의 형이상학 개념들은 죽음의 손익을 합리적으로 가늠함에 있어 근거가 될 수 없는데, 삶에 근거한 상태로 죽음의 손익을 판단해야 하는 한계적 특성상 직접 죽지 않고는 사후 전개를 목격할 수 없으며 또한 삶에서 죽음으로의 전환은 불가역적이므로 사후 전개는 삶에 근거하는 이상 완전히 미지수일 수 밖에 없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미지수는 판단의 근거로 합당하지 않으므로 논외로 하겠습니다.) 죽음이라는 중대한 상태의 변화/ 생명 개체의 물리적 소멸은 사후에도 지속될 업적이나 흔적을 남기지 않는 이상, 언제 어떻게 그것이 발생하든지 관계없이 삶 위에 존재하던 기억도 생각도 느낌도 모두 소멸되고 빠른 시간 내에 세상으로부터 잊혀지게 된다는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단명하나 장수하나 이래죽나 저래죽나 결과적으로 사라지고 잊혀지고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게 똑같죠. 죽음의 결과는 이 하나의 점으로 수렴하는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판단 기준으로서의 의미가 없고, 그 동일 점에 이르기까지 경로와 과정의 차이를 판단의 기준으로 잡아볼 수 있겠죠. 삶을 선택할지 아닐지의 기준이 될수 있는 지표들이 있다면 a.남은 주어진 시간에 수반되는 고통을 초과하는 가치/쾌락/기쁨이 그 시간 안에 있으리라 판단하는지 또는 b.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소멸한 뒤에도 사라지지 않을 자신의 업적/흔적을 물리적 세계에 남기고 싶은지, 혹은 c.인위적 죽음에 수반되는 짧은 순간의 극심하고 자발적인 고통과 공포의 체험을 하는 대신에 아주 잘게 쪼개서 익숙하고 장기간 누적되는 수동적 고통을 선택하고 싶은지, 이 3가지 정도로 정리가 됩니다. a, b가 지속의 원인인 삶은 능동적인 것이고 c만이 지속의 원인인 삶은 동물적 본능에 의한 수동적이고 도피적인 것인데 대체로 많은 이들이 살았고 살고 있는 삶의 유형은 c로 보입니다. 삶을 선택한게 아니라 단지 죽음을 회피하고 유예하는 결과로서의 삶, 사는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고, 그렇게 둘 중 어느 선택도 하지 않은 채로 말이죠. 인간의 무의식에는 삶의 욕구와 죽음의 욕구가 모순적으로 상존한다고 심리학에서도 보고 있는데 그처럼 모순되는 두가지 욕구로 삶과 죽음 둘 중 어느것도 선택하지 못해서 징징대면서도 죽지 못해 꾸역꾸역 사는 삶, c 유형의 삶이 가장 흔하고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c는 직관적이고 흔한 기준이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민해 봤을 기준이므로, 가치의 지표인 a와 b가 나에게 살아야 할 목적을 주는 기준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볼까요. 개인마다 답은 다를 것입니다. 그리고 시도해볼만한 방법이라는건 어떤건가요 의료기술의 도움을 받는 안락사가 아닌이상 고통스럽지 않은 방법은 희소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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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rc
· 4년 전
저는 미래가 너무두려워서 죽고싶었어요 남들이 보면 뭐라할수있지만 저는정말 미래가너무두려웟어요 그렇다고 현재가 나쁜상태고아니었고요 저는 행복한일이있더라도 불행한일이있을텐데 저는 아무것도 느끼고싶지않았어요 하지만 그런제가 어째선지 요즘 그냥 살아가고싶다고느끼고있어요 자퇴를하고 거의 6달을 폐인처럼지내왔어요 나아질기미가보이지않아 계속 하루에한번씩자살시도를했어요 고통이없는 자살시도는없죠 있다면 많은이들이 이미 많이죽었을테니까 목을매달아보고 칼로도그어보고 그러면서 자살시도를했을때 처음으로느낀감정은 아프다였어요 이아픔을 더는느껴보고싶지않았어요솔직히 아픔을 느끼고싶은 사람은 극소수일거예요 제생각에는 마카님은 아픔을느끼고싶지않아보여요 사는데이유가없지만 죽는데도이유가 없으니까 살아가는사람이많죠 저는 아프고싶지않았어요 저는 행복을 느껴보고싶었어요 그래요 저는 살고싶었어요 살아서 보란듯이 신앞에서 웃을수있게 그렇게 행복한삶을 지금은 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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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 전
@whymewhy 웬만한 상담사분보다 더 나은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해주신 거 같아요. 많이 공감하면서 댓글 읽었습니다. 말씀대로 제가 사는 삶의 유형은 완전히 c였거든요. a나 b에대해서 항상 고민도 했고요. 하지만 a와b가 제게 살아야할 목적을 주는데 도움이 되진 않더군요. 고등학생 때는 음악이 a와 b의 기준을 충족하면서 저에게 살아갈 이유가 되줄 거라고 판단했는데 그러기엔 말씀드린 것처럼 취미생이상의 노력을 하지 못했습니다. 음악으로 느끼는 기쁨이나 이를 통해 무언가 이뤄보고자 하는 마음은 다른 것에 비하면 꽤 있는 편이었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땐 그정도가 미미해서 살아가는 원동력으로 잘 작동하진 못했거든요. 그리고 시도해볼만한 방법이라는건 헬륨이나 질소같은 비활성기체로 질식을 유도하는 방법입니다. 고통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스위스의 안락사 기구인 디그니타스가 안락사 약에 대한 대체제로 시도해봤을 만큼 신빙성 있는 방법인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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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 전
@akrc 저도 물론 물리적인 고통을 느끼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이게 죽음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저는 죽고 싶지 않은게 아니라 죽음로 인한 고통을 겪고 싶지 않은 거니까요. 고통이 없거나 최소화된 죽음을 택할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죠. 현재의 의학과 과학 수준으로는 충분히 안락사가 가능하고, 국내에서는 불법이지만 재기불능의 환자들에겐 종종 안락사가 이뤄지니까요. 때문에 안락사의 원리를 이용한다면 육체적인 고통을 최소화하면서 죽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알아본 결과 비활성기체를 이용한 질식사가 제가 할 수 있는 방법 중에 그나마 가장 고통이 덜하다는 걸 알게 됐고요. 하지만 이건 그냥 제 경우에 해당되는 이야기고, 아직 akrc님은 행복한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하셨으니 앞의 제 얘기는 그냥 흘려들으시면 될 거 같아요.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분들께 폐를 끼치고 싶진 않으니까요. 저와는 다르게 꼭 행복한 삶을 사시길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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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mewhy
· 4년 전
실은 위에 안락사를 언급할 때 스위스를 떠올렸었는데 당신은 이미 그에 대해 인지하고 정보수집까지 많이 하셨군요. 예상치 못한 찰나에 인식의 교집합을 발견해 반가우면서도 그 대상이 삶의 고통이라는 점이 웃프기도 합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누군가 죽음을 확고히 결심했을 때 혹은 삶에서 남은 카드가 그것 한장+ 고통 뿐인게 확정됐을 때는 당연히 안전한(?) 의료서비스의 도움을 받아 수행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고 불필요한 고통과 공포, 스트레스를 최소화할수 있는 최선책이죠. 그러나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걸림돌이 되는 것은 그 서비스에 소요되는 비용일 것입니다. 돈이 넉넉해서 문제가 안되는 상황이라면 누가 직접하겠어요 첨단기술 전문서비스에 의탁한다고 하겠죠 아무도 직접 하겠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돈없는게 고통스러워 죽음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죽는 문제마저도 돈없음이 고통과 고뇌의 원인이 된다니 잔인하지요. 죽음이 고통의 일*** 완납이라면 삶은 시간을 얻는 대출이고 시간 소유에 대한 비용은 삶에 수반되는 고통으로서 이자를 납부하는거죠. 그래서 죽음을 고심하는 이가 생존을 좀 더 연장하는 것은, 약간의 고통을 약간의 시간을 더 얻는 것에 대한 이자로 지불하는 것 뿐입니다. 삶과 죽음은 중대한 선택이기 때문에 후자로 마음이 끌린다고 해도 약간의 고통을 시간에 대한 이자로 더 지불하면서 고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전략이지요. 정세와 상황은 늘 변하기 때문에 a, b 기준의 결과값이 언제든 현재와 다르게 나올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은 기회나 은인, 행운 등 변화의 전환점들을 살아서 만났을 때의 경우이고 만일 그가 지속적으로 c유형 그대로 수동적으로 산다면 시간이 지나면지날수록 상황이 점차적으로 또는 극적으로 좋아질 확률보다 더 나빠질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고통이라는 이자는 이자대로 매순간 지불해야 하며 전체적인 정세는 점점 더 궁지에 몰리는 상황이 되는게 십중팔구입니다. 그렇기에 만일 누군가 죽음의 선택에 앞서 시간을 좀 더 소유하고 그 반대급부로 고통이라는 이자를 좀 더 지불하며 삶과 죽음 사이에서 좀 더 고심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면, 현재의 자신의 위치라는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방식 그대로 c유형의 삶을 이어갈 경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황은 더 악화되고 경험해야 할 고통의 총량과 절망만 늘어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a와 b의 판단 기준으로부터 결과값을 다르게 얻기를 기대하며 삶을 연장한다면, 연장한 시간동안 모든 방면에 걸쳐 변화를 추구하고 획득해야 합니다. 사고의 변화와 물질적 환경 변화를 이끌어내는 외부 환경 요인들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얻어내야 합니다. 여기에는 장소, 대화하는 사람, 시간을 쓰는 방법, 효율적인 호르몬 통제 등이 있습니다. 사고의 변화를 위해서는 서적, 대화, 매체, 기록물들을 최대한 활용해 현존하는 그리고 역사로 남겨진 인간들과의 다양한 방향으로 정신적 교류를 추구하며 최선의 사고를 얻기 위해 고민해야 하고, 물질적 환경/사회적 입지(돈/명예)의 변화를 위해서는 나에게 강점이 있고(천재가 아니라면 적어도 남들만큼은 할수 있겠다 싶은)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을 찾고 노력과 꾸준함, 시간을 투입해 외부세계가 인정할 수 있는 스스로의 생산성 또는 차별적 가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리적 환경의 변화도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는데 사는 곳을 현재 문화/제도/기후와 많이 상이한 곳으로 이주하는 것이 되겠고 그것이 힘든 경우엔(대다수 여기에 해당되는데 여행과 이주의 자유를 아무 제한없이 누릴수 있는 인간은 a기준에서 죽는것보다 사는게 이득이라는 결론이 나올 확률이 그렇지 않은 인간의 확률보다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여행이나 방랑을 통해 임시로 다른 장소들을 경험해본다면 사고의 전환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요인들을 다소 거칠게 요약하면 인간이 극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는 방법은 장소를 바꾸는 것,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 시간을 다르게 쓰는 것 이 3가지 밖에 없습니다. 사고의 변화는 금전이 뒷받침되지 않더라도 지적능력과 운, 노력으로 만들어 낼수 있지만 장소와 사회적 입지는 물질적 능력에 비교적 더 좌우되지요. 달리는건 고사하고 출발선 위에 서는것조차 초기비용 때문에 힘들 수 있습니다. 트랙 위에서 선순환의 원을 만드려면 관성과 동력이 필요한데 금전이 없으면 내가 나의 미래를 위해 사는 것을 세상이 쉬이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더 힘들어지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정리하면 일단 돈이 없으면 a의 답이 아니오로 나올 확률이 매우 높고 b의 실현을 하는 과정에도 험난함이 따르기 때문에 a와 b를 포기하고 그냥 c로 살거나, c마저도 고통의 총량으로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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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mewhy
· 4년 전
빠른 죽음보다 손해이기 때문에 a,b,c 다 노답이고 그냥 죽는게 답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식이지요. 그렇게 돈이 없어서 소외되고 희망도 없고 부자유하고 고달퍼 죽겠다는 결론에 이르러서 마저도 금전이 넉넉했다면 안락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용 때문에 더 많은 고통과 스트레스와 극심한 공포감이 수반되는 스스로 수행하는 방식을 고민하게 된다는걸 보면, 어째서 인간들이 그렇게 밥그릇쟁탈과 경제성장, 헤게모니 투쟁에 죽기살기로 매달리고 싸우는지 이해할수 있습니다. 문자그대로 죽기살기, 잘 죽는데에도 잘 사는데에도 물질적 능력이 큰 관건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돈이 쪼들려 금전적으로 억압받게 되면 살아도 더 고통받고 죽을때마저도 더 고통받게 됩니다. 그 외에도 a,b 결과값을 죽음이 아닌 삶의 방향으로 내놓는데 도움이 될수 있는 요인들은 금전뿐만 아니라 지적능력, 재능, 외모, 건강, 정서적능력, 스트레스 저항, 회복탄력성 등을 모두 포괄하는 유전자의 질(선천적으로 누군가에겐 행운이고 다른 누군가에겐 불운. 매우 큰 비중을 가지고 있습니다), 후천적인 운, 절실함, 사회와 국가와 국제정세의 변화, 경험의 질 등이 있지만 스스로 통제가 어렵거나 불가능한 요인들이죠. 반면 금전은 일단 소유하거나 창출하고 굴릴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과학적으로 예측하고 통제하기가 쉬운 요인이기 때문에 인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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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글쓴이)
· 4년 전
@whymewhy 답글이 많이 늦었습니다 죽음을 어느정도 결심한 후로는 손 하나 까닥하고 싶지 않은 날이 종종 있어서요ㅎ.. 여튼 생각해볼만한 좋은 화두들을 많이 던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삶과 죽음에대해서 많이 성찰하시고 고민하신 흔적이 보여 글을 읽을 때 여러모로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아무래도 자본주의로 돌아가는 사회다보니 돈이 참 중요하게 작용하는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죽으려고 할 때마저도 돈에서 자유롭지 못하니까요. 하지만 다행이도 제가 찾은 방법을 실행하는데에는 넉넉히 잡아도 30만원이면 충분하겠더군요. 물론 의사의 전문적인 도움하에 죽는 것보다는 못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성급하게 떠나지는 않을 겁니다. 앞으로 1년 정도는 지금까지의 삶을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요. 말씀대로 a,b의 결과값이 죽음이 아닌 삶을 가리키게 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많이 존재하니까요. 물론 그 방법을 실천하기 위해선 능동적인 변화를 꾀하려는 저의 의지와 행동이 필요하겠지만요. 어쨌든 덕분에 제 죽음에 대해서 여러방면으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정성스럽게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