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이제와서야 할 수 있는 말이네요.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왕따|성추행|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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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이제와서야 할 수 있는 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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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열심히 살아요. 안열심히 살고 싶은데, 정말 아등바등 살아요. 어렸을 때는 하고 싶은 게 없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내가 너무 하고 싶은 게 생겼는데 과거의 나때문에 그 일을 하게 되지 못할까봐 그게 싫어서 남들처럼만 했어요. 특별히 노력하진 않았어요. 그렇게 지내다 정말 소설같은 사건이 발생했고, 그걸 계기로 현실이 너무 지겹고 싫어졌어요. 마침 이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보이면서 정말 처음으로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 때가 고등학생 되면서 부터였어요. 공부는 안했어요. 운이 좋게도 그건 따라 주더라구요. 성적은 남들이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였고 친구들 내에서도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평판은 최우수. 근데 그거 아세요? 사실 저 중학교 3학년 때 왕따였어요. 소설같은 이유. 제 친구가 좋아하는 오빠가 저를 좋아한대요. 제가 꼬리쳤대요. 저는 아직도 그 분의 성함도, 얼굴도 몰라요. 매일 같은 버스를 탔대요. 참 재미있는 게, 아침마다 저랑 같은 버스를 타서 매일 제 옆자리에 앉아 웃고 떠든 내 친구가 그렇게 말했대요. 졸업하고 알았어요. 그랬구나. 꿈같게도 중학교 3학년 축제가 있던 금요일, 그 주말이 지나고 맞이한 월요일부터 졸업할 때까지 왕따였어요. 진부하네요. 부모님도 모르셨어요. 아실리가 없죠. 말씀도 안드렸고, 언니 대학 입시로 바쁘셨으니까요. 그 가난한 살림에 아버지는 1년~3년 주기로 퇴직을 반복하셨어요. 어머니가 참 힘드셨을 거예요. 다는 아니지만 이해해요. 그래서 외고안가고 실업계갔어요. 돈이 부담되니까요. 다행히도 길을 찾았지요. 성적이 좋으니 다들 저를 좋은 대학교에 보내고 싶어하셨어요. 저도 배우는 걸 좋아해서 잘 되어가고 있었어요. 다들 그러시잖아요. 대학가면 예뻐진다, 남자친구 생긴다, 좋은 대학가면, 자격증이, 스펙이, 회사가, 배우자가, 미래가. 아, 그 나이의 저에겐 얼마나도 절대적이고 절실한 말들이던지. 그래도 혹시나 해서 회사 면접도 봤어요. 와, 운이 좋게도 붙었네요. 별 거 아니예요. 그냥 대기업이요. 이제 저는 선택할 수 있어요. 한달 합숙 연수를 받고 입사하느냐, 수능 최저 2과목 4를 맞춰서 y대를 가느냐.(병원 있는 곳 맞아요.) 왜 선택을 해야 하냐면, 수능날과 합숙연수 날이 겹치거든요. 앗 근데 아뿔싸, 아버지가 또 퇴사를 하셨네요. 이번에는 좀 길어요. 1년 넘게 무직이세요. 이런, 등록금을 못내겠네요. 회사에 갈게요. 집 도와야지요. 괜찮은 삶이였어요. 돈만 보는 친구들도 거르고 이상한 사람들도 많다는 경험도 했지요. 살면서 처음으로 입원도 했어요. 온몸이 염증이래요. 후두염, 위염, 장염(소장에 난 염증이라 11m짜리 장기가 부어서 처지니 아프더라구요), 신우신염, 뼈와 힘줄에 염증. 뼈에도 염증이 생기나봐요? 처음 알았어요. 열이 39도 넘지만 조퇴 한번 안하고 한달 동안 일 잘 했어요. 바빠서 쉴 수가 없었어요. 저 쉬면 안된대요. 그러다가 쓰러졌어요. 대상포진이 자꾸 심장쪽으로 올라오면서 재발해요. 자꾸 의사선생님들이 겁주세요. 죽는다고. 안죽는 거 알아서 괜찮아요. 열심히 버텨서 4년차예요. 작년부터 대학 쓸 수 있었는데 작년에 아파서 미처 준비를 못했어요. 제 탓이죠. 올해에 대학을 썼어요. 수시 최종발표 전이지만, 제일 가고 싶었던 학교 붙었어요. 다른 분들 발표 다 안났을텐데 죄송해요. 자랑하는 건 아니였어요. 그냥, 그랬어요. 오늘 다른 대학 면접도 있었는데 늦기 싫어서 다섯시부터 일어나서 준비했어요. 다들 주무시니 조용히 화장실에서 준비했어요. 아, 저는 제 방이 없어요. 아주 어릴 때부터 없었어요. 언니랑 부모님 방은 있어요. 저는 거실에서 제가 제일 사랑하는 우리 멍멍이랑 같이 자요. 이제 머리만 하면 되는데 아버지가 화장실에서 안나오시네요. 이런 전철에 늦겠어요. 제가 늦을 거 다 감안하고 훨씬 일찍 일어난 건데. 후다닥 준비하고 뛰어나왔는데, 이런 세상에. 수험표를 놓고왔네요. 늦어버렸어요. 사실 아버지께서 역까지 차로 태워다 주시면 안늦는데, 제 탓이죠. 면허나 따놓을 걸. 괜히 생일 늦어서 만 17세부터 주말근무하면서 일해서 면허도 못따고. 이거 다 핑계예요. 죄송해요. 제 잘못이예요. 그러면서도 늦은 거 다 아는데 전철 타봤어요. 혹시나 해서요. 우리 어머니 가장 가고 싶었던 대학교래요. 저도 여기 두번째로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꼭 면접 보고 싶었거든요. 못봤지만요. 사실 같이 원서 쓴 친구는 첫번째 대학도 두번째 대학도 떨어졌어요. 그래서 어디가서 말도 못해요. 미안해서요. 저는 자격없는 사람이예요. 지각이네요. 옛날 생각이 나요. 어릴 때의 나. 초2 때 거리에서 모르는 아저씨에게 성추행당했을 때 아무도 제 말 안믿어줬지요. 초4때도. 중학교 2학년때 길에서 성추행당하고 그 범죄자가 집 앞까지 쫒아와서 너무 무서워서 가족들에게 애타게 전화하지만 아무도 안받았었지요. 겁에 질려서 떨면서 집에 왔는데 언니랑 아빠랑 게임하고 있고 제가 울면서 말했더니 언니는 으이그 라고 했고 아빠는 들은체 만체 게임만 했잖아요. 나 사실 다 기억해요. 중3, 고1, 고3 때는 가족들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다 있었잖아요. 범죄자들 얼굴, 목소리, 입었던 옷, 심지어 우산의 색이나 안경의 유무, 시계가 있는지 없는지 있으면 가죽인지 메탈인지까지 다 기억해요. 그리고 내가 그렇게 애타게 울 때 내 편 없었던 것도 기억해요. 비가 오네요. 해가 오르는 게 노을 같아요. 실업계 고등학교 간다고 너는 우리 집안의 수치라고 ***, ***년, 제발 나가 죽어달라고 말씀하시는 엄마아빠, 그래도 난 갈거야라고 당차게 말해놓고 뒤돌아서 혼자 울던 16살의 나. 대기업 붙었어요, 라고 하자 너는.. 귀찮게 왜 또... 다른 학부모들 연락오면 말해야하잖아. 창피하게. 라고 한숨쉬는 엄마와 게임만하시던 아빠, 아무말도 못하던 19살의 나. 쓰러져서 입원했을 때 창피하다며 한숨쉬는 아버지와 그렇게 살거면 제발 사라지라는 어머니, 미안해라고 웃는 22살의 나. 대학에 붙었어요, 면접보러가요. 하고 덤덤하게 말하는 오늘의 나. 응 하고 대답하는 부모님. 저 사실은 나 외고 가고 싶었어요. 배우는 거 좋아하구요. 대학가고 싶었어요. 저 잘 할 자신 있었어요. 실업계는 과목도 다르고 매일 선생님들 도와드리느라 정규과목 수업 못들었지만 저 수능도 최저 맞출 수 있었어요. 저 언니보단 못해도 그렇게 멍청하고 쓸모없지 않아요. 그 때에 회사붙은 것도 올해에 학교 붙은 것도 잘했다 고생했다 축하받고 싶었어요. 인정받고 싶었어요. 저 기댈 곳이 하나도 없는 걸요. 학교에서 그 분위기 알아요? 다들 날 좋아하면서 나를 싫어해. 그러더라구요. 저 때문에 본인들이 상을 못받는 거래요. 공부를 못하는 거래요. 제가 다 막고 있어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제가 다 막아버려서. 억울했는데 생각해보니까, 저 그렇게 열심히 노력 안한 것 같은 거예요. 억울할 자격이 없어, 나는. 근데 나 진짜 악착같이 산단 말이야. 아무도 그렇게 하라 안했는데. 왜 나는 열심히 사는 데 악밖에 안남느냔 말이에요. 독하게 사냐고, 왜 나는. 저 처음 면접 볼 때, 아무런 준비 못하고 머리도 개판이고 학교에서 친구들이 정리해준 머리로 선생님들 기대 등에 업고 회사 면접보고 왔을 때요. 다른 그 몇백명 애들 부모님, 선생님들이 마중나오셨더라구요. 인사하고 헤어지며 나 혼자 그 무거운 책가방메고 한시간 반 전철타고 돌아가는 그 저녁, 창 밖의 지는 해, 그 노을, 어머니께 전화했잖아요. '바빠, 끊어.' 결국 학교 포기하고 입사하여 합숙연수 끝나고 첫 지점 발령받아 처음으로 일하고 무거운 캐리어 들고 한달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날, 답지않게 데리러 와달라는 제 투정에 와주셔서 고마워요. 그런데 너만 힘드냐고 길 한복판에서 캐리어 던지실 거면 안오시는 게 나았어요. 어머니 그 날 기억 못하시죠? 어머니께서 캐리어 던지시던 날, 제가 미안하다고 막 그랬던 날, 제가 인생 처음 일했던 날, 그 날도 오늘처럼 비가 왔어요. 저는 이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아요. 그런데 있잖아요. 저한테 그러셨잖아요. '어렸을 땐 돈이 없어서 이것저것 못해줘서 미안하다. 지금은 여유가 좀 되니까 해달라는 거 해주고 싶은데 니네 언니가 말을 안한다.' 그래서 제가 언니한테 잘 말해보겠다고 우리 그 날 술 한 잔 털면서 이야기 했었지요. 그리고 또 말씀하셨잖아요. 저한테. '너는 돈만 드는 ***' 이라고. 가끔 힘들어서 목소리들으려 전화하면 성가셔하셨으면서 돈 달라고. 뭐 해야하니까, 여행가니까, 뭐 살거니까 돈 달라고. 저도 아프고 힘들다고 위로받고 싶었어요. 제가 누군가의 자리를 뺏은 게 아니라 제가 노력해서 얻은 거라고 인정받고 싶었어요. 죄송해요. 비겁한 말이지만, 그때의 저는 어렸잖아요. 부모님은 어른이셨잖아요. 알아요. 부모님도 부모님이 처음이신 거. 지금은 다 이해해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게 하신 모든 행동이 정당화되거나 제 상처가 사라지지 않아요. 저는 앞으로도 평생 제 쓸모를 찾아서 괴로워할 거예요. 이 기억들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제 마음에 붉은 선을 남길 걸 알아요. 죄송해요. 제가 더 나은 사람이였으면 이런 일 없었을텐데. 이제와서 새삼, 오늘 와서 새삼 옛날 생각이 나서. 그래서 그랬어요. 다들 잊었을 텐데. 나만 벗어나질 못해서. 별 거 아니예요. 그냥 그랬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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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ahh
· 4년 전
쉽지 않은 인생이였던 것 같네요...별거 아닌게 아닌 것같은 데요...마카님은 정말 대단한 사람인 건 같아요...저는 힘들어도 마카님 처럼 잘 대처하지는 못 했거든요..제가 마카님의 인생을 살아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마카님이 스스로를 좀 더 아껴주고 사랑해준다면 더 더 행복한 삶을 만들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오지랖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그동안 달려오는게 너무 지쳤을 것 같아서요...정말 정말 수고 많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