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하소연주의))결국 자기혐오로 돌아온다.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부부|상담|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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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하소연주의))결국 자기혐오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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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난 기본적으론 남혐이다. 물론 세상에서 떠들어대는 그런 의미가 아니고 내 남성혐오는 아빠와 동생만을 대상으로한다. 그리고 자존감도 낮고 모든것에 의욕을 가지지 못한다. 패륜아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전에 내 얘기를 들어주었으면 한다. 우선 아빠라는 놈은 친가에서도 내놓은 자식이다. 결혼전에는 다정하게 대해줬을지는 몰라도 결혼하고서는 사람이 달라져 폭력,폭언,무능력의 끝을 보여준 사람이다. 사업을 한답시고 여기저기 돈을 빌리고 외할머니에게도 반 강제로 돈을 뜯어간 사람이다. 제대로 갚지도 않고 뻔뻔하게 그 돈을 날려먹고 거기에 대해 지적하면 살벌하게 구는 놈이다. 일은 잘할지는 몰라도 내가 어려서부터 월급을 전부 꼬박꼬박 가져온적은 별로 없고 심하면 자기 사리사욕 채우는데 다 쓰고 아예 안가져온적도 있다. 그래놓고서 엄마에게는 돈 쓰는거 하나하나 감시하고 예민하게 군다. 부부싸움할때 그만좀 하라고 엄마도 힘들어한다 왜그렇게 욕을 하느냐 라고 했을땐 그 이후로 날 투명인간 취급했던적도 있었고, 하도 엄마를 괴롭히길래 ***끼라고 욕을 했더니 죽일기세로 보기도했다. 그날 살기라는걸 처음으로 느꼈다. 교통사고를 내놓고 피해자쪽에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지금도 심심하면 반 협박으로 사리사욕을 채우려하거나 되도않는 사치를 하고 겉으로만 착한인간인 척을 한다. 동생놈은 중학생때 일진놀음하다가 중퇴하고 올해 검정고시에 붙어서 고졸이 됐다. 그런데 그동안 본인은 집안의 돈을 쓰기만할 줄 알고 갚을 줄 모른다. 자기가 알바해서 버는 돈은 다 자기 돈으로 쓰면서 집에서 추가로 돈을 수시로 뜯어간다. 안주면 크게 짜증을 내거나 집에 며칠 안들어오거나 하는 식으로 반항을 한다. 말을 걸면 짜증이 반이상 섞인 말로 답한다. 조금만 답답하게 굴면 화를 낸다. 그런 동생이 또 엇나갈까봐 엄마는 더이상 심하게 터치를 못한다. 부부싸움할때 난 항상 그 현장에 있었고 모든걸 목격하고 만다. 심한 폭언과 폭력으로 엄마를 괴롭히는 아빠. 이제 그만하자고 말려도 독하게 아빠를 쏘아대는 엄마. 그런걸 볼때마다 난 내 자신이 갈기갈기 찢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무서웠다. 누구라도 좋으니 달려들어서 살려달라고 매달리고 싶었다. 그게 동생이었다. 동생에게 엄마아빠가 싸우니 제발 밖에서 놀지말고 돌아와 말려달라고 매달렸었다. 하지만 동생은'그냥 그새끼 죽이고 감방에 갈게' 라고만 답했다. 더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꼴에 동생이라고 네가 그러지 말라고만 했을뿐.. 그 뒤로는 매달릴 사람이 없어 혼자 싸움을 말려야했다. 그것도 처음 한두번만 그렇고 나중에가서는 말릴 의욕도 잃었다. 어차피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으니까. 말린다고해서 안싸울것도 아니니까. 결국엔 울기만했다. 한심하게도 울기만했다. 싸우는 그 소리를 듣기만해도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미쳐가는 기분이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한마디 한마디 들을때마다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전부 죽이고 싶었다. 날 괴롭히는게 아무것도 안남을때까지 전부다 불태우고 싶었다. 그런데 동생은 내가 겪은 일의 반도 겪지 않고서, 제대로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지도 않고서 '그놈 죽이고 감방 간다'라고만 말하는데다 내가 이렇게 고통받는데 밖에서 자유를 느끼다니 원망스러웠다. 미치도록 원망스러웠다. 내가 아빠와 동생을 결정적으로 싫어하게된 원인은 따로 있다. 동생이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엄마가 학교에 다녀왔던 날이었다. 아빠는 갈 수 있었음에도 가지않았다. 귀찮다는 이유로... 그날 저녁, 밥솥을 던지고 나무 막대기를 휘두르는 아빠의 모습은 악마 그 자체였다. 그런 망나니 자식을 자식이라고 감싸다 엄마는 머리를 맞아 피가 흘렀다. 피가 튀고 고성이 오갈때 난 뒤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공포에 떨며 경찰에 전화하고자 방으로 숨어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평소에 이런 상황을 몇번이고 상상했으면서 막상 전화를 했더니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서 설명을 잘 하지 못했다. 내가 무슨말을 하고있는지도 몰랐다. 주소를 제대로 말해달라고 몇번 말했던거같다.하지만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고 빨리 와달라고만 말했던거 같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전화는 끊어져있었다. 믿었던 경찰에게 배신당한 기분은 정말 뭐라 표현할 수 없다. 내가 말을 좀 더 잘했다면 좋았을걸. 그 사이에 엄마는 몇대 더 맞은 모양이었다. 경찰이 전화를 끊어버려 하는 수 없이 119에 전화를 걸었다. 난 아까처럼 전화를 끊을까 두려웠고 나만 매를 맞지 않아 죄책감에 죽을거같았다. 하지만 전화는 끊기지 않았다. 내가 진정할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다행히 전화를 받은 분은 내 얘기를 들어주었다. 그와동시에 매질이 끝난 모양이었다. 내가 119에 전화를 했음을 알리자 갑자기 아빠는 모습을 감췄다. 그 뒤에 경찰에서 뒤늦게 전화가 왔지만 난 이미 절망적인 상황에서 내 손을 잡아주지않은 경찰을 싫어하게 되었다. 119에 신고했으니 오지않아도 된다고 말했던거 같다. 지옥같은 상황에서 틀림없이 내 편이 되어줄거라고 믿었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119 대원분들이 도착해서 엄마와 동생은 간단히 치료를 받고 병원으로 가려고할때 아빠와 경찰들이 도착했다. 경찰들은 집 밖에서 기웃기웃거렸고 집안에 핏자국이 있는것, 뭔가 부서진 가구들이 있음에도 결국 아빠를 잡*** 않고 돌아갔다.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왜 악마를 잡*** 않은거지.. 아빠는 그 사이에 근처에 살던 외할머니를 데려왔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몰라도 자기 편이 되어줄거라고 믿었나보다. 모두가 돌아가고 할머니와 나 아빠만 남은 방에서, 난 원망에 가득차 왜 엄마를 때렸냐고 아빠에게 믈었다. 하지만 아빠는 소름돋게도 연기를 하며 자기가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는것처럼 말했다. 죽이고 싶었다. 아무도 이 놈을 잡*** 않는다면 내가 직접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난 무서웠다. 이깟놈 때문에 가뜩이나 절망적인 내 미래가 더 어두워지는게..무서웠다. 상담기관 한두군데에 전화를 걸었다. 한군데는 가정폭력 상담은 받지않는다고 거절을 했었고 다른곳은 부모님과 제대로 대화를 해봐라 라고 말했었다. 그런건 진작에 알고있다.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 수 있다면 진작에 풀었을것이다.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으니까 이 지경까지 온게 아닌가..! 그 뒤로 모든것에 의욕을 잃었던거 같다. 집도 가난하지 부모님 사이는 더럽게 안좋고 동생은 막나가, 대학도 전공도 포기하라는 말까지 들었으니...정말 눈물만 나왔다. 싸우더라도 전처럼 적극적으로 말리려고 하진 않았다. 어차피 내 말은 아무도 안들을테니까. 동생에게도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다. 어차피 철없는 말만 할테니까. 싸우는걸 보면 볼수록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남자가 좋고 모든 남자가 저렇게 막나가고 나쁜 남자가 아니라는건 잘 알고있다. 하지만 누군가와 만나 썸을 타더라도 자꾸만 아빠와 동생의 모습이 떠올라 제대로 연애에 집중이 되질 않았다. 엄마같은 경우엔 늘 고생을 하고있다는건 알고있다. 하지만...너무나도 고집이 쎈 나머지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내가 애원하는 그 순간에도. 그리고 내가 자존감을 잃게만든 원인이다. 날씬했을때도 날 보고 뚱뚱하다고 욕했으며 쇼핑을 하러가면 어울린다라는 말보다는 살을빼라 라는 말을 더 많이 했다. 난 또래에 비해서 좀 더 살이 있을뿐이지 돼지라고 욕을먹을 절도로 찐건 절대로 아니었다. 고등학생때는 그 갈굼때문에 쇼핑을 거부했고 거의 교복이나 체육복만 입고 살았던거 같다. 고등학교 졸업하고서 57kg 나가던 나는 억지로 쇼핑을 갔다. 트라우마때문에 가게에서도 제대로 옷을 입어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며 자신없어했던게 기억이 난다. 가게 직원과 엄마가 계속해서 괜찮다 괜찮다 라고 말해주고 나서야 제대로 옷을 보기 시작했다. 살을 빼려고 노력을 하는 와중에도 갈굼이 사라지는건 아니었다. 단순히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살은 언제 뺄거냐 돼지 라는 말을 반복하는 사이에 난 점점 자신감을 잃었다. 남들이 한번쯤은 입을법한 화려한 외출복은 나따위가 저런걸 어떻게 입냐 라는 식으로 생각하게 됐다. 완전히 의욕을 잃고서 저때보다 살이 더 찌게 된 지금은 예전보다 더 갈굼을 받게 됐다. 돌이켜보면 마르진 않았어도 뚱뚱하진 않았었는데.. 그리고 내가 뭘 하든 칭찬을 해주지 않는다. 이건 가족 전부가 해당되는 일이지만.. 동생이 엇가가기 전부터 수학은 못했지만 전체적인 성적은 평균이거나 평균이상인 정도를 유지했었다. 그리고 중학생때 영어 100점을 받았을땐 너무나도 기뻤다. 친구들과 학원선생님들 모두가 칭찬했고 얼른 엄마에게 알리고 싶었다.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싶었다. 하지만 돌아오는건 '그래서?' '수학은?' 아...수학은 아직 잘 모르겠어...라고 전화를 끊을 수 밖에 없었다. 적어도 오~ 라던가 그런 감탄사라도 들을 줄 알았다. 돌아오는건 정 반대의 말일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 뒤로는 그냥 대충 점수를 받아도 상관없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거같다.. 내가 열심해서 전공으로 대회에서 상을 가져와도 한번도 기뻐한적없다. 오히려 너무 들뜬거 아니냐. 니 실력은 애매하다. 라는 말을 들었다. 동생은 원래부터 엇나가던 상태에다가 나보다 요령이 좋아서 뭘 해도 칭찬을 받는다. 나같이 할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는 애는 없는게 낫다라는 말을 듣기만할뿐.. 요리를 해도 난 맛없다는 말을 듣는데 동생은 맛있게 잘 했다 라는 평을 더 듣는다. 요령의 차이일지도 모르겠지만.. 한번이라도 듣고싶었다. 잘했다. 힘냈다. 수고많았다. 라는 격려와 함께 칭찬을 듣고싶었다. 중학생땐 정말로 힘들었다. 왕따를 당했으니까. 같은 학교에서 극 소수만 내가 다니던 중학교로 진학했는데 친구는 전부 다른반이라 긴장해서 저지른 실수로 인해서 2학년때까지 왕따를 당했다. 왕따일때 가족들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동생은 아마 같은 학교여서 어느정도 눈치는 챘을지도 모르겠다. 가뜩이나 분위기 안좋은 집에 그 사실을 알리기 싫어서 꾹 참았다. 대놓고 뒷담을 까도 뒤에서 돌을 던져도 책상을 띄워서 안닿게 하려고 해도 교과서를 빌려가서 안돌려줘도 여자애들이 내가 볼일볼때 훔쳐보려고 한것도 좋아하는 애 앞에서 대놓고 왕따라고 떠벌린것도 모두의 앞에서 나에게 창피를 준것도... 난 문제도 안일으키고 왕따도 극복하고 조용히 고등학교까지 졸업했고 취직도 해서 집안에 돈도 매달 바쳤고 아무것도 안하고 시킬줄만 아는 아빠랑 동생을 대신해서 집안일도하는데 왜 나만 혼나야하고 왜 나만 화풀이 대상이 되어야하냐고. 나만 집에서 겉돌고있잖아. 아무도 날 칭찬해주지않고 한심하게 봐. 나에게 아무도 관심이없다. 내가 스트레스로 머리가 빠지고 피부가 안좋아지고 혈변을 봐도...아무도 관심없어한다..... 그 지옥같던 왕따생활을 견뎠는데 돌아온건 가정폭력이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괴로웠다.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 의지를 하고싶었지만 그 사람한테 피해가 될까봐, 나한테 더 안좋은 결과가 될까봐 더이상 매달리지도 못했다. 스스로 아빠를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던적이 있었지만 엄마의 눈물섞인 반대로 하지 못했다. 하긴..그때 신고한다고 해도 얼마나 우리 편을 들어줄진 아무도 모르니까.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날 괴롭힌 인간들도 그때 내 손을 잡아주지 않은 경찰들도, 모든 의욕을 잃은 나도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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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or10
· 4년 전
응원합니다.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