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 여학생 입니다,얼마전 옛날부터 쌓여있던 스트레스들이 터져 학교에서 컴퍼스로 첫자해를 했습니다,그 후로 뭔가 아직은 무섭지만 용기가 생겨서 친구와 우결자,반모자들에게 들키고 혼도 많이 났지만 결국 오늘 저녁에 가족들 몰래 커터칼,붕대,약을 챙기고 방에서 혼자 자해를 했습니다,근데 손을 긁으려 하는데 너무 손이 덜덜 떨리는 겁니다,하지만 에라 모르겠다 느낌으로 결국 3개정도 긁었습니다,전 좀 따갑다고 느꼈는데 보니까 피만 조금씩 나고 자국이 남지 않을 정도로 얕게 베인겁니다,긁고나선 손이 계속 떨리고 호흡이 잘 쉬어지지 않거나 갑자기 머리가 너무 아파지는 그런 증상들이 나왔어요,하지만 제가 너무 밉고 현재 너무 괴로워 자해를 계속 하고싶습니다,제 마음을 알기가 너무 아쉽고 그냥 저 같은 사람은 더 고통받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며 자해를 시작한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지만 계속 자해가 생각나고 안하면 뭔가 불안합니다,이런 상황에선 제가 뭘해야될지 모르겠어요,그냥 제가 ***사람이 된 것 같고 저를 상처입히고 싶어요
진짜 예민하고 정말 살기 죽을만큼 힘드네요 하.. 정말 슬프다 진짜 어떻게 살지..?? 극복이 안되고 날이갈수록 더 힘들고
- 3살, 사교성이 없어 어린이집에 혼자 가만히 있었다. 내게 다가와준 친구는 없었다. - 유치원 때, 그때도 같이 다니거나 노는 친구 하나 없었다. 어느날 소풍을 갔었는데 바위에 혼자 가만히 앉아있던 내게 한 친구가 다가와 풀꽃으로 만든 반지와 화환을 주었다. 감동이란 단어를 이해하게 된 날이었다. 이와 별개로 다소 충격적일 수 있으나 다른 날 같은 반 애 1의 눈을 찔렀고 같은 반 애 2에게 *** 없다고 말했다. 내가 이랬던 이유를 아직까지도 모른다. 이런 내게 내려진 처벌은 동생 반으로 쫓겨나는 것이었다. 미안하다고 울고불고 사과했는데 쫓겨난 게 억울해서 구석에 웅크려 흐느끼고 있었는데 동생 친구들이 날 쓱 보곤 동생한테 저기 구석에 니 언니 아니냐 하니 동생이 와서 언니 여기서 뭐해? 라고 물었고 난 쪽팔려서 아는 척하지 말라고 했었다. 이제보니 사교성만 없는 게 아니라 사회성도 없었다. - 8살, A 초등학교를 입학했다. 1학년.. 이땐 내가 줏대가 없어서 친구들의 행동들 중 마음에 드는 걸 많이 따라했다. 그중 한 친구가 나의 이러한 행동이 마음에 안 들고 기분 나쁘다면서 따졌다. 이런 식으로 엄청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하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이게 몸에 영향이 갔는지 병원에 출석도장을 찍었다. 그러다 이사를 하게 되면서 이 초등학교를 떠났다. - 9살, B 초등학교의 1학년으로 재입학했으나 행동이 느리고 눈치가 없어 담임선생님께서 자주 혼내셨다. 특히 알림장을 쓸 때면 책상과 문 사이 바닥에 앉아서 쓰게끔 하셨다. 뭐 그래도 나혼자 그런 게 아니니 괜찮았다. 그리고 약한 몸 때문에 병원에 자주 가니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진료 접수를 해주셨다. - 10살, 2학년.. 앞서 서술했듯 몸이 약해 약을 달고 살았는데 한약도 포함이었다. 그날은 마침 먹던 한약이 다 떨어져 학교에 교과서랑 준비물만 갖고 등교한 날이었다. 그런데 담임쌤이 아까부터 어딘가에서 '너무 기분 나쁜' 한약냄새가 난다며 냄새의 근원지를 찾을 때까지 수업을 안하겠다고 하셨다. 계속 킁킁거리시다가 결국 여자애들에게 화장실로 따라오라 하셨고 그곳에서 옷을 벗겨 확인하셨다. 수치심이란 단어를 이해한 날이었다. 엄마에게 얘기했지만 왜 그러셨을까 이상한 선생님이네 라고 넘기셨다. 엄마의 이런 태도에 어이가 없었지만 참았다. 엄마도 직장인이라 일 키우지 않고 쉬고 싶겠지 생각하며 화를 억눌렀다. 그래도 꼭 이런 날만 있진 않았다. 친구와 수업시간에 심부름을 잘 수행해 칭찬받은 날도 있었고 알림장을 쓰다 잠들어버려서 친구가 대신 써준 날도 있었다. (친구야 미안ㅎ) 깨보니 보건실 침대였다.. 분명 책상에 엎어져 잠들었었는데.. 보건쌤께 여쮜봤더니 담임쌤이 옮겨주셨다고 하셨다. (죄송합니다ㅜ) 그래.. 이런 날들도 있었다. - 11살, 3학년.. 정착한 무리없이 여전히 겉도는 아이였던 나는 대체 내가 뭐가 문제여서 친구를 진득하게 사귀지 못하는지 몰랐다. 정확히는 내 성격이나 행동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쉬는시간에 나혼자 반에 있었고 이때를 틈타 담임선생님께서 내게 어떤 문제가 있어 진득하게 친구를 못 만드는지 그 이유를 말씀해주셨다. 문제는 내 웃음소리였다. 반 친구들이 내 웃음소리가 마녀같이 무섭고 이상해서 다가오지 않는 거라고 하셨다. 난 그저 하, 허, 호, 후, 흐, 히, 헤 이 7가지 단어를 내 웃음소리에 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쌤 말씀을 듣고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좀 많이 ***년같은 웃음소리인 것 같았다. 근데 그게 그렇게까지 질겁하며 피할 일인가 싶었다. 아,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그때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의 양엄마이자 왕비에게 흠뻑 빠져있던 시기여서 그런 생각을 하고 그걸 실천했나보다. 왕비의 얼굴이 꽤 예쁜데다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이 엄청 매력적이어서 따라하고 싶었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이 미안하다. 이맘때 동생이랑 자주 싸웠는데 항상 나만 맞았다. 엄마가 손 내라고 했을 때 안 냈다간 여기저기 맞을 것 같아 한 대만 맞고 끝내겠단 생각으로 당당하게 손을 냈는데 세게 여러 대나 맞았다. 동생은 무서워서 못 맞겠다며 요리조리 피해다녔고 그 덕에 단 한 대도 못 아니 안 맞았다. 괘씸해서 몇 달 뒤에 싸웠을 때 뺨을 때렸었다. 좀 놀라 사과했는데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것 같다. - 12살, 4학년.. 이번엔 꼭 무리에 정착하리라 다짐하고 한 무리에 들어갔다. 나를 포함해 총 3명이었다. 엄마한테 얘기하니 홀수는 안된다고 했다. 꼭 1명이 홀로 남는다고. 그 1명이 내가 될까 걱정되긴 했지만 아닐 가능성도 있기에 그 가능성에 희망을 걸었다.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친구 둘이 남자친구가 생겼고 커플끼리 더블데이트도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나는 친구들에게서 심적으로 멀어진 느낌을 받았다. 내가 모르는 친구들의 시간이 하나 둘 생겨나자 난 자연스레 혼자가 되었다. 이걸 엄마한테 말하니 그렇게 될 것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영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친구가 생겼으니까. 그 친구랑 같이 있고 싶고 얘기하고 싶어서 영어학원을 다녔다. 가기 싫을 땐 그 친구를 생각하며 학원을 억지로 갔다. 뭐 숙제는 잘 안해갔지만ㅎ 내겐 숙제가 문제가 아니라 친구와의 우정이 문제이자 중요한 무언가였다. 그 친구랑 있으면 행복했고 즐거웠고 기뻤다. - 13살, 5학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불행하기 시작했다. 난 이과머리가 단 1도 없어서 수학과 과학을 잘 하지 못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분수를 가르쳐 주셨는데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 골치가 아팠다. 과학도 마찬가지로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았다. 이 상태로 도형 수업을 들었는데 단 하나도 이해하지 못해 미궁에 빠졌다. 시험이 다가오자 이과인 아빠가 나를 붙잡고 내가 여태껏 이해하지 못했던 분수부터 전개도와 겨냥도를 가르쳐주셨는데 숫자에 대한 개념과 도형에 대한 개념이 당최 이해되지 않았던 나는 문제를 계속 틀렸고 이런 내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던 아빠는 나를 다그치고 때렸다. 매를 들어야 이해하겠냐며 40cm 자를 들고 오라 하셨고 두려움에 덜덜 떨며 자를 가져오자 문제 하나 틀릴 때마다 머리, 뒷목, 등, 양 팔, 양손,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양 발 순으로 차례차례 때렸다. 무서웠다.. 그렇게까지 화난 걸 본 적이 없었다. ***냐 이걸 왜 이해못하냐 ****** ***같은 거 ***도 니보단 잘하겠다 이런 말들을 쏟아내는 아빠가.. 공포 그 자체였다. 놀랍게도 엄마는 그 옆에서 방관했다. 옆에서 그걸 왜 이해를 못하지 왜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맞고 있는 날 지켜보았다. 이 순간 너무 숨 막혔고 쥐구멍으로 숨고 싶었다.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하게 들었다. 동생도 눈치보며 숨죽여 숙제만 했다. 이 날 이후로 아빠와 스킨십을 하지 않았다. 엄마와도 가급적 스킨십을 하지 않았다. 사실 내가 피했다. 아빠를 보면 나에게 ***듯이 화내며 숨도 쉬지 않고 계속 때리던 그때가 생각나서. 엄마를 보면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과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눈빛이 떠올라서. 부모에 대한 애정이 애증으로 바뀌었다. 이 날 덕분에 두려움, 무서움, 공포, 숨막힘 같은 단어들이 무엇이고 어떤 느낌인지 빠삭하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학년이 바뀌며 새로 알게 된 친구들이 있었는데 왠지 묘하게 내가 겉돈다는 느낌이 들었다. 친구들과 얘기하고 놀기 위해 다가갔는데 내가 올 줄 몰랐던 건지 토끼 눈을 뜨고 날 쳐다봤다. 애써 무시하고 무슨 얘기 중이었냐 물으니 내가 모르는 얘기라고 했다. 이런 상황이 2번, 3번 되풀이되고서야 확신했다. 나는 이 무리에 온전히 속한 상태가 아니라는 걸. 이 사실을 알고 힘이 쫙 빠져버렸다. 난 그때 무기력함이 뭔지 이해하게 되었다. - 14살, 6학년.. 우정에 미쳐있던 나는 저번처럼 실패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친구 만들기에 몰입했다. 며칠간 공들여 작업한 결과, 친구 6명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집에 와서 엄마한테 얘기하니 그럼 니 포함 7명이네 홀수는 안되는데.. 왜 그렇게 됐노 친구가 그렇게 중요하나 나중에 시간 지나면 다 멀어질 건데.. 이미 겪어봤잖아 홀수 무리는 어떻게 되는지. 라는 말만 했다. 상처를 또 준 엄마는 내 상태가 어떤지, 내 마음이 어떻게 될 지 이런 건 신경쓰지도 않았다. 나는 엄마가 좀 더 부드럽게 말할 수 있었을텐데 일에 치여 피곤해서 그랬을 거라고 되뇌이며 나를 다독였다. 엄마의 말이 또 사실이 되는데는 단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나를 포함해 7이었던 무리 내에선 나를 제외하고 둘 둘 둘 씩.. 더 친한 상태라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이 관계가 더 명확해진 건 방학식 날이었다. 방학식을 맞아 친구들에게 놀자고 제안하려 했는데 이미 자기들끼리 수영하러 가자는 약속을 잡고 있는 중이었다. 서운함을 누르며 나도 끼워달라고 했다. 다행히 끼워줘서 기쁘게 준비하고 약속장소로 갔고 신나게 놀았다. 그러고 해산하는 줄 알았는데 애견카페를 갈 거라고 했다. 다소 놀랐고 그닥 내키지 않았지만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게 더 중요했던 나는 같이 가겠다고 했다. 가고나서 알았는데 나는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어린이집 다니던 시절에 친가의 별장에 갔을 때 할머니께서 만져보고 안아보라 하셔서 만져보고 들어보고 안아본 뒤 곧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그곳으로 갔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은 개에 대한 기억이었다. 귀엽긴 하지만 내 마음에 성에 차지 않았던 생명체. 딱 내 눈엔 그랬다. 근데 그 생명체가 하나도 둘도 아닌 여러 마리... 난 곧 얼어버렸다. 이런 나를 본 친구들마다 반응이 다 달랐다. 걱정해주는 친구 한 명, 그럴 거면 왜 왔냐는 친구 한 명, 집에 갈래? 라고 묻는 친구 한 명, 그저 보고만 있는 친구 3명. 적어놓고보니 반응이 다 비슷한 거 같기도 하네... 그래도 우정이 중요했던 나이기에 그 친구들이 강아지 고양이들과 충분히 다 놀 때까지 기다렸다가 해가 지기 시작할 때쯤 헤어졌다. 그리고 집에서 우정에 대해 깊이 생각한 끝에 이런 식의 우정에 몸과 마음이 지쳐서 2학기는 혼자 지내보기로 결정했다. 개학 후 난 정말로 혼자 지냈다. 쉬는시간에 혼자 복도를 돌***니거나 창밖의 운동장을 멍하니 보고 있거나 학교 구석구석을 돌***니는 식이었다. 그러다 담임쌤의 조언으로 쉬는시간에 책을 읽기 시작하며 불안했던 시간이 평화로운 시간으로 바뀌었다. 담임선생님 덕분에 텅텅 비어있던 마음의 곳간에 양식을 채우고 싶은 만큼 채운 뒤 안정된 상태로 무사히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자다가 중간에 심장이 ***듯이 뛰면서 숨이 막히는 느낌에 계속 깨는데 이건 불안증세일까요?
며칠전에,친구가 추천해준 정신병원에 다녀왔어요. 증상이, 우울한 아이,우울증이 성격화가 된 상태라고 하더라고요. 불면증도 있어서, 수면제도 같이 처방을 받았어요. 그런데, 가족은 제가 이것으로 사는게 의욕이 없고, 흥미도 없이 그냥 하루하루 버티면서 살고 있는데, 가족은 제가 성격이 우울화가 된것이 잘못이라는 듯이 말하네요. 대학교도 저번달에 졸업하고, 22살인데, 아직 취업을 하지 않안 상태인데, 저도 돈을 벌고 싶고, 가족을 도우고 싶지만, 정말로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 상태에 제가 일이라던가 알바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라는 의심이 많이 들어요. 23살이 되고나서라도 취직이든 알바든 무언가를 해야하는데 말이죠. 그래서, 이런 자신이 싫고, 살아온 자체가, 제가 살아있는 것도, 이런 증상에 걸려서,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 오는 조차도 어려워, 가족에게 도움조차 못하고 있는 것들이 뭔가 죄책감이 느껴지네요.
괜찮다고해주세요 자해한거 들키면 엄마가 손 붙잡고 엄마가 커터칼로 그을것같아서 지금 불안해요...진짜 제발요 너무 불안해서 미칠것같아요 진짜 아무나 살려줘요
충동이 들 때마다 죽어라 참고 나 자신을 지키는 중
안녕하세요. 최근 이사를 왔는데요 지금 부모님과 함께 거주중이고 아직 학생 입니다. 요즘에 아빠가 폭력적 인걸 알았는데요 예전에는 볼일이 별로 없어서 몰랐는데 이사를 온뒤로 아빠가 하던 일을 그만 두어서 학교늘 갖다온 뒤 볼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볼일이 많아 지다보니 다툼이 일어날 때가 많아 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자기가 잘못한 일에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폭력적이게 됩니다. 그런 사실을 엄마 한테 말해도 엄마는 무시해 라고만 합니다. 하지만 그럴 수록 아빠한테 저는 *** 없는 년 이라고 욕을 먹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엄마 한테 정말 하테 정말 힘들다고 하소연 해보았지만 들려온건 너만 힘든줄알아? 였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나 우울증이래 엄마가 말한것 이었습니다. 저는 이말이 당황스러웠습니다 당황스러워서 어떤 말을 해야하는지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한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엄마 였습니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는 저에게 늘 이 말을 합니다 행복하지? 이 말을들으면 속이 울렁 거립니다 이 일이 일어난후 저는 사람들과 대화를 잘 못 하겠습니다.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하는 일도 많은데 그것 때문에 나*** 못하는 제가 고장난 사람 같습니다 저 이제 어떻게해야 될까요?
'죽을 용기로 살아라' 저는 이런 말이 싫어요. 저는 죽을 용기도 없고 살 용기도 없는 그런 용기 없는 인형인데...
옛날처럼 모든 게 즐겁고 하루하루가 행복했으면 좋겠네요…. 지금은 모든 게 괴롭고, 지루하고,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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