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종교, 교육, 문화,
그 외에 모든 분야를 볼 때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않는 것 같다는 무서운 생각이 든다.
사람은 원래 자기중심적이라
자기의 쾌락을 추구한다.
모두다 그럴듯한 명분으로
고상한 일을 하거나,
추잡한 일을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자기를 위로하기 위한 것 같다.
사람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들 모두가 말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알고있지않을까?
'나는 무가치한 존재'라는 것을.
생존욕구 때문에 죽지는 못하겠고,
사후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무가치한 존재로 사라지는 것은 공포 그 자체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자기의 존재 가치를 주장해야만 하는
애처러운 현실에 처해있다.
나는 많은 사람을 위로한다.
많은 사람을 축복한다.
그러나 공허하다.
나는 위로받지 못하고,
나는 저주받았다는 불안을 포기하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들의 말을 믿어줄 수가 없다.
사실 나는 위로가 필요하다.
누구나 사람은 위로가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을 필요로 한다.
사람은 사람으로 자위한다.
내 마음이 씁쓸하고, 또 나도 자유로울 수 없는데,
사람이 도구가 되고있다는건 사실인 것 같다.
어떤 좋은 정책도, 철학도, 숭고한 자기희생도,
자기자신의 만족과 쾌락, 보람을 위한 것이다.
그걸 위해 끊임없이 약자가 필요하다.
때론 짓밟고 침 뱉기 위해,
때로는 위로하고 도와주기 위해...
사람은 그렇게 자기를 괜찮은 사람으로 만든다.
그래서 나는 늘 약자를 찾아나선다.
비참한 나를 가치있는 존재라고 자위하기 위해서
나는 나보다 약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그런 불쌍한 사람은 실재하지않는다.
그들은 그냥 나와 같은 사람일 뿐이다.
사람은 자위기구가 아니라고 믿고싶지만,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않아서 당황스럽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별반 달라보이지않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착각이면 좋겠다.
나만 비뚤어졌고 ,
세상은 사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찼다고,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하고,
사람을 돕겠다는 행동이 자기 위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 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싶다.
나를 구원하는 것은 공감이겠지.
도구였던 존재가 인격체로 다가오고,
나와 교감할 수 있다면,
나는 더이상 자위기구를 상대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나는 그를 필요로 하고,
그는 나를 필요로 하고,
우리가 서로의 충만한 마음을 느낄 때,
나는 내가 사람과 교감하고 있다는걸 확신할 수 있을거다.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나'라는 프레임으로 판단하기를 멈추고,
'너'의 입장이 되어 느껴보자.
나는 제페토 할아버지 같이 되고싶다.
사람들을 나무 인형처럼 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나길 기대한다.
내가 자위기구처럼 여겼던 사람들이
피노키오가 되고, 장차 사람이 되어
나와 교감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