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부모 #가정폭력 이십대 중반 경상도의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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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이십대 중반 경상도의 장녀입니다. 세살 때 여동생이 태어나고 일곱살 때 남동생이 태어났습니다. 금쪽같은 막내 아들을 낳기 위해 너네가 태어났다며 웃는 부모의 얼굴을 아주 어릴 때부터 보고 마주 웃어야만 했습니다. 부모는 네살 무렵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를 알기 전부터 포기하고 양보하는 것부터 가르쳐주었습니다. 언니가 되어서, 누나가 되어서 동생들을 위해 희생하고 양보하는 것이 당연한 미덕이라 다그쳤습니다. 마음 속 피어나는 욕구를 내비치면 이기적이고 못된 년이라고 소리지르는 부모덕분에 자책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의 의견도 없고 원하는 것도 없어진 흑백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아홉살 여자아이는 아주 어리고 작습니다. 제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아프게 맞았던 나이입니다.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가족 여행을 가다 휴게소에 들렀습니다. 그날따라 구슬아이스크림이 너무 너무 먹고싶던 저는 부모에게 온갖 아양을 떨며 허락을 받아내는 것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느 때와 같이 아이스크림의 맛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진 사람은 동생 두명, 제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여분의 숟가락이었습니다. 가족의 체계에서는 늘상 있어왔고 당연한 것이지만 그날따라 처량한 여분의 숟가락이 견딜 수 없이 서럽게 느껴졌습니다. 조금 더 성숙했다면 대화로 잘 풀었을 수 있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숟가락을 던지며 울어버렸습니다. 나도 내 아이스크림을 먹고싶다는 말을 끝내지도 못한 채 숨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건장한 성인 남성이 여자 아이의 허벅지를 쎄게 발로 찹니다. 두 세번 차고도 성에 안차는지 손바닥을 들어 머리를 내칩니다. 사실 그 뒤로는 생각이 안납니다. 허벅지에 내 머리보다 큰 멍이 한달동안 없어지지 않았던 것, 일주일동안 할머니의 지팡이를 짚고 다녔던 것, 울지 못했던 것만이 기억이 납니다. 보통 이런 성장 소설에서 엄마는 혼자 방에 울고있는 아이를 위로해주러 방에 들어오더라 하지만 현실은 소설과 달랐습니다. 아홉 살은 방학 일기를 써야 하고 머리 속에는 그 것 외에는 쓸 이야깃거리가 없네요. 부모는 귀신같이 알아챕니다. 나의 엄마는 자던 아이의 가방을 뒤져 일기를 읽고 매서운 얼굴을 하고 아이를 깨웁니다. 아이는 일기를 지우개로 다 지우고 엄마의 감시 하에 스탠드 불 밑에서 일기를 다시 씁니다. 울면 한 대 더 맞습니다. 아홉살, 눈물을 흘리지 않고 우는 법을 배웠습니다. 뺨을 맞았다 머리를 맞았다 라는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풀어놓는 게 자랑도 아니고 일화를 서술하는 일은 그만하겠습니다. 맞았다는 사실보다 마음의 상처를 잊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천진난만한 이야기로 가득할 줄 알았던 저의 초등학교 일기장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가득 차있습니다. 남동생은 내가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기어코 해서 사고를 냅니다. 전자 기기를 부수고 집안 물건을 박살냅니다. 부모는 나를 혼냅니다. 난 내가 왜 혼나냐고 묻습니다. 니가 잘못한 게 뭔지도 모르냐며 소리를 지르고 또 맞고 손을 들고 벌을 섭니다. 울면 한 대 더 맞습니다. 확인하러 들어옵니다. 잘못했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억울하고 답답해서 조용한 곳에서 혼자 쉬고싶습니다. 하지만 내일도 그 다음날도 남동생은 아빠가 있는 곳에서 장난감 골프채로 나를 때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나의 소중한 물건들을 가져가서 박살내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그만하라고 소리지르면 남동생은 울음을 터뜨리고 나는 또 매를 맞습니다. 눈을 부라리며 욕을 섞어가며 때립니다. 이제는 왜 혼나냐고 묻지 않습니다. 엄마와 여동생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남동생을 위로하며 괜찮냐고 묻습니다. 이제 아빠한테 손을 모아 죄송하다고 다 빌고 나면 엄마 차례입니다. 엄마한테 다 혼나고 나면 여동생이 핀잔을 줍니다. 마치 모두 연극인 것처럼. -12.27(수) 제가 너무 슬픈 것은 부모가 나를 때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나는 그래도 엄마 아빠 동생을 사랑해요 라고 적혀있는 일기가 쓰기 싫어 시를 썼던 그 시의 구절 때문입니다. 초등학교만 일기를 의무로 썼던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시에 실패하여 재수를 하고 상경할 때까지 저의 흑백 세상은 옅어지지 않았으니까요. 부모의 말에 따르면 나는 이기적인 사고 방식을 가져 뜯어 고쳐야만 한답니다. 너무나도 이기적이라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부족하고 못되 쳐먹었습니다. 내 장점도 없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없네요. 그나마 가졌던 건 따듯하고 여린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학교의 고마운 친구들이 벅찼습니다. 학교도 벅찼습니다. 그래서 놓쳐버린 것이 많습니다. 너무나도 힘든 기억은 뇌가 빨리 잊으려 노력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솔직하게 이 시절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 고마운 친구들을 절대 놓지 않을 겁니다. 서울로 대학을 온 뒤 세상은 흑백에서 컬러로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기는 나를 아무도 꾸짖지 않고 있는 그대로 봐주기 시작합니다. 내가 그사람을 좋아하면 그사람도 별 일이 없는 한 나를 좋아해줍니다. 그것이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부모의 끔찍한 세상속에 날 가두는 것이 아니라 작지만 나의 세상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희망이 보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미친듯이 노력해서 살아갈 만 합니다. 저는 카테고리의 다짐을 선택하였습니다. 이 글을 고민 상담이 아닌 다짐 글로 올리기를 선택하였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세가지 독립인 신체적 독립, 경제적 독립, 정신적 독립 중 경제적 독립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제 곧 경제적 독립을 합니다. 대학 시절 너무나도 많이 울었습니다. 본가에 내려가면 아무리 아등바등해도 내 머리채를 잡혀 끌려 내려가 니 자리는 여전히 여기야 라고 알려주는 거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 허무할 정도로 의미가 없습니다. 이렇게 간단하고 아무렇지 않게 해결이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잊지 않기를 다짐합니다. 10년이 30년이 지나도 절대 잊지는 않을 것이라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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