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때부터 안경과 교정을 했는데 엄마에게 가장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스트레스|고등학교|고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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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어렸을때부터 안경과 교정을 했는데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돈이 많이 든다'였다. 동생이 태어나고 할머니 손에 자랐다. 어린나이에도 버림받았다 느낀건지 지금 생각하면 자해라고 생각밖에 안될 행동을 했었다. 다들 내 행동을 볼때마다 말렸지만 그 행동을 하면 안심이 되어 초등학교 올라가고도 종종 나도 모르게 했다. 습관처럼. 초등학교 저학년 기억으론 x-마스 쯔음, 그 빽빼한 사람의 숲에서 슬그머니 놓던 내손.. 애써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보았지만 뒤한번 안돌아보고 앞으로 사라졌다. 나만두고.. 엄마를 놓첬다는걸 깨달았을때 제일 먼저 생각난건 주소랑 전화번호 기억해야지. 만약 집에 어떻게든 갔는데 안열어주면 어떻게하지?였다. 번화가 입구에서 간신히 만났지만 절실함은 나뿐인듯, 안기는 나에겐 잘 따라오지 못했단 타박뿐이었다. 그때부터였나보다 가족이 가족으로 안느껴지는게.. 불평불만이라하면 솔직히 끝도 없다. 유치원 다니던 내게 친구가 준 지우개 받았다고 훔친거라며 몇시간을 훈육한일이나.. 훈육이라고 바둑돌을 던져 앞이빨이 깨졌으나 대외적으론 잠버릇이 험해서 깨졌다고, 거짓말하게 하더니.. 나중엔 그 거짓말을 진실로 생각하고 돈든다고 구박한 일.. 모든걸 이해해보려고 노력도 했다 객관적으로 이해는 하지만 주관적으론 안되더라. 초등학생 고학년때부터 스트레스성 위염을 달고 살아야했고, '돈 많이 드는 애','애가 뭐가 힘들다고 위염에 걸려'를 듣고 자라야했다. 아빠는 전형적인 무관심? 삶이 너무나 고되 나에게 신경써줄 여유는 없었나보다. 좋아하는 휘트니스는 남동생과 잘 다녔으면서.. 고등학생 때 쯔음엔 혼자있는데 종소리가 들려 무섭다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의지가 된 일이었다. 20살 성인의날 몇일 전, 엄마와 속깊은 이야기를 하고싶었다. 서운함과 상처받음을 이야기하고 위로와 공감을 원했으나 결과는 좋지 못했다. '이쁨받는것도 너 하는 탓이다.' x-마스 이후로 표현을 안하고 방에서 나오지 않으려하는 음침한 아이가 되어갔다. 더군다나 몸까지 약하고 예민하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느순간 이해하려고 하는 나 자신조차 싫어졌다. 소위 말하는 왜 날 태어나게해서 괴롭게 하는지. 이럴꺼면 날 놔버리지 그랬냐고 많이도 원망했다. 추억이라면 내가 고로케 좋아하는거 알고 있었구나 기뻤던거랑 고등학교때 무서워할 때 일도 그만두고 같이 있어준거.. 거의 매해 여름 놀러가고, 가끔 눈썰매도 타고 당시 즐거웠을꺼 같은데 왜 난 공허할까..
슬퍼혼란스러워불면속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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