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ru210·4년 전
나는 내가 정말 싫었어.
왜 나는 여자를 좋아하는 걸까.
이게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건 알았어.
그런데 아 그냥 이거 좀 뻔하니까.
내가 힘들 게 뻔하고, 괴로울 게 뻔해서 싫었어.
당당하게 살아라지만, 아직까지는 동성애자에 거부감이 많은 한국 사회에서 그러기란, 수 없이 많은 기회와 인간관계를 포기하는 일일 수 있음을 알았기에.
도저히 당당히 살기가 좀 그렇잖아.
그럼 그냥 남자를 좋아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정말 생각 없이 말하는 인간들도 있더라.
난들 안 그러고 싶겠냐.
마음대로 안 되니까 이러고 있지 인간들아.
나도 남자애 좋아해 보려고 얼마나 노력해 봤는지 알어 이것들아?
아무튼.
그러니까 그런 내 앞에.
걔가 나타난 거지.
내 눈에만 너무 예뻐 보이고, 사랑스러워 보이고.
긴 말 필요없고, 그냥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
세상에나, 걔를 좋아하면 할수록 내가 남자가 아니라는 게 싫어지는 거야.
왜냐면, 그냥 그 감정이, 걔를 좋아하고 있는 내 감정이, 너무 예쁜 감정이었거든.
결과가 어떻든 간에, 걔한테 이 예쁜 감정을 말해주고 싶을 만큼.
근데 용기가 안 나더라고.
‘아 이거 차이면 어쩌지.’가 아니라,
‘아 걔가 날 이상하게 보면 어떡하지.’
그런 감정이었어.
좋아하는 애한테 모멸의 눈빛을 받고 싶지 않았던 거야.
그렇게 거의 일 년이 흘러갔고.
나는 어찌어찌 걔랑 사귀게 되었어.
나도 알아.
기적같은 일인 거.
그리고 아주 불안정한 관계인 거.
왜냐면 걔는 이성애자였거든.
인류애로 가득찬.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래.
그 애는 그냥 힘들었던, 내 시간을 보상해 주고 싶었던 거야.
그냥 나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었던 거야.
그 애는 조금은 바보스런, 그런 애거든.
그렇게 예쁘게 일 년 동안 만난다가 헤어졌어.
취향이 아니라고 그러더라.
음.
알고 있었지.
그 취향이, 아마도, 정말 아마도, 내가 여자여서.
그래서 그런 것일 거란 거.
언젠가는 있을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늘 혼자 준비했는데.
잘 안 되더라.
아니.
그냥 아예 안 되더라.
나는 너무 많은 감정을 그 애랑 공유해 버렸거든.
그래서.
그냥 울었어.
헤어지고. 혼자 집에 와서.
절대 걔 앞에서는 울고 싶지 않아서.
동정심은 받고 싶지 않았거든.
세 달인가 지났는데 아직도 그래.
달라지겠다고 다짐했는데 아직도 그래.
밤마다.
침대에 누울 때마다.
나는 펑펑 울어.
이유는 아마 그런 걸거야.
그동안 그 아이가 내게서 모든 슬픔을 가져갔었거든.
너에게는 이런 감정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이제 좀 웃어도 된다며.
나에게 행복, 즐거움. 감격.
이런 예쁜 감정들을 주고.
나에게서 슬프고 힘든 감정들을 잠시 들고 갔었거든.
우습지만 그런 것 같아.
그 아이가 나를 떠나고, 다시 그 감정들을 돌려준 거지.
그러니, 아마 그 슬픔을 맡겨 두었던 일 년 동안은 이렇지 않을까.
그런데도 말이지,
나는 그 애를 위해서는 뭐라도 해주고 싶어.
그래서 나는 행복하게 살아보려고 매일 노력해.
그게 그 아이가 원하는 것일 테니까.
나는 나만의 행복으로.
그 아이는 그 아이만의 행복으로.
그래서 그런가.
나는 더 이상 내가 싫지 않아.
이조차도 아름다운 나인데.
나를 좋아해주고 아껴주기에도 모자란 시간인데.
나를 향한 부정적인 감정에 에너지를 쏟고 싶지는 않아서.
그리고 그냥 이젠 알았거든.
나란 녀석도.
대상이 여자이긴 하지만.
그런 예쁜 감정을 가질 줄 아는, 멋진 사람이라는 거.
그러니,
알려줘서 고마워.
우리 꼭 행복하자.
약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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