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호흡 왔었던 일, 그리고 극복 #1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상담|고민|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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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호흡 왔었던 일, 그리고 극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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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심심해서 나무위키의 여러 문서를 왔다갔다 하다가 과호흡증후군 문서에 들어가게 됐다. 순간 2년 전에 겪었던 일들이 떠올라서 이렇게 글을 써본다. 어렸을 적부터 사람들한테 미움받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던 나는 쓸데없는 부분에서도 이상할만큼 책임감을 느끼곤 했다. 혹시라도 나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를 보고 내 흉을 볼 것을 항상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물론 점차 나이를 먹으면서 모든 사람들한테 사랑을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씩 자신과의 합의점을 찾아가면서 이는 조금씩 나아졌다. 그렇게 나 자신은 생각하고 있었다. 일은 2년 전 내가 고3 때 일어났다. 수시전형으로 입시를 준비하던 나에게 고3 1학기는 굉장히 중요한 때였다. 부족했던 봉사시간을 조금이라도 메꾸기위해 동아리에서 진행하는 단체 봉사를 지원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는 기숙형 고등학교였기 때문에 봉사를 위해서는 기숙사 외출증 혹은 외박증을 끊어야했다. 이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담임선생님과 학년부장 선생님께 허락을 받아야만 했고, 때문에 나는 함께 봉사를 가려했던 동아리원들과 학년부장 선생님께 갔다. 우리가 그 분께 가기 직전 우리보다 먼저 외출증에 싸인을 받고 있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은 무사히 싸인을 받고 웃는 얼굴로 돌아갔고 우리는 그들이 나오고 바로 선생님께 말을 걸었다. 우리는 선생님께 사정을 차근차근 설명하며 외출증을 보여드렸다. 그러나 이상하게 선생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날이 금요일인지라 평소보다 '외출 외박증을 끊으러 오는 학생들이 많긴 많아서 일일히 확인하시는게 힘드셨나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날이 서있는 그 분의 질문들에도 최대한 부드럽고 자세하게 대답해드렸다. 그러나 그 분은 대체 무엇이 마음에 안드셨는지 점점 언성이 높아지시더니 화를 내시기 시작했다. 여기서 재밌던 것은 그 화를 우리가 아닌 나에 한정하여 냈다는 것이다. 너가 지금 봉사 시간을 조금 더 채운다고 대학 갈 수 있을 것 같냐, 그 시간에 차라리 공부를 더 해라, 너 때문에 이제부터 3학년은 외출 외박 일절 금지다. 그리고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니 얼굴 기억해두겠다'. 같이 봉사활동 가는 부원들이 나보다 성적이 좋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당시 나도 학교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선생님들께는 항상 예의바르게 행동해서 어렸을 적부터 칭찬을 많이 받아왔었기에 혼난 경험도 없었다. 더구나 이렇레 얼척없는 이유로는 더더욱. 왜 그분이 하필 나한테 그렇게 하셨는지는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그리고 그 땐 그런 선생님의 행동보다도 그냥 그 상황이 충격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말 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큰 타격을 줬던 건 '너 때문에 3학년은 외출 외박 일절 금지다'라는 말이었다. 싸인은 결국 해주셨지만 펜으로 마구 갈겨 한 후 내던졌다. 나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외출증을 주웠다. 교무실을 나오고 나서 빨갛게 상기된 내 얼굴을 본 부원들은 나를 달랬다. 그들도 내가 왜 욕을 먹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좋지 못한 상황에 와서 일어난 일이라고 모두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로는 잘못이 없는 걸 알지만 마음이 이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애써 진정하려고 했지만 이는 마음처럼 되지 않았고 나는 반으로 돌아가 친한 친구들에게만 방금 겪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아주 조금이지만 마음리 추스려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점심 시간이 끝나고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자리로 앉았을 때, 교실 앞문을 열고 걸어오는 학년부장 선생님을 보자 내 심장은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심기가 불편한 표정으로 들어온 선생님은 오자마자 학생들을 정숙시켰다. 그리곤 말을 꺼냈다. 오늘부터 3학년의 외출 외박은 일절 금지라고. 그것도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원래부터 정기적으로 외박 외출을 하던 사람도 이제는 금지한다며 이 일은 모두 누구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며 날 겨냥하며 말을 했다. 당연히 이 말을 들은, 상황을 모르는 친구들은 모두 한탄을 하며 이런 일을 만든 '범인'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얼굴은 다시 미친듯이 붉어지기 시작했고 내 심장 박동은 미친듯이 크고, 빨라졌다. 나에게 있어 그 50분의 시간은 지옥과도 같았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불쾌함은 잊혀지지 않는다.수업이 끝나자 사건을 알고 있는 친구들이 찾아와 나를 위로해주었다. 하지만 이는 나를 진정시키지 못했고 결국 난 눈물을 보였다. 그땐 그냥 이렇게만 하루가 끝나는줄 알았다. 그러다 문득, 나는 외출증에 담임 선생님의 싸인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담임 선생님의 자리가 학년부장 선생님의 자리와 매우 가까웠기에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 나는 친구들에게 같이 가달라고 부탁했다. 친구들은 기꺼이 이 요청에 응해줬고 우리는 교무실 앞까지 갔다. 하지만 교무실에 발을 들이자마자 덜컥 숨이 안쉬어졌다. 살면서 이런 경험은 겪어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해서 굉장히 당황한 나는 재빨리 몸을 돌려 뛰쳐나왔다. 내 행동에 당황한 친구들은 나를 다시 교무실로 데려가려다 내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것을 보고 그냥 교실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말이 잘 안나와서 짧게 응이라고만 했다. 교실로 돌아왔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호흡이 하나도 조절되지 않았다. 규칙적이지도 않았고 멈춰지지도 않았다. 이내 다음 수업이 시작되어 선생님이 들어와서도 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이 시간이 당시에 내가 좋아하던 과목인 기하와 벡터였기 때문에 수업에 빠지기 싫었다. 그래서 사실 수업이 시작하기 직전까지 나는 이를 악물고 스스로를 제어하고자 미친듯이 애썼다. 하지만 이는 마음처럼 되지 않았고 손이 눈에 보일정도로 떨리는 것을 본 후에는 지금은 공부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선생님도 내 상태를 보고 이상함을 눈치챘는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아파서 보건실에 가야할 것 같다고 말하려 했지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간신히 한 두글자만 말할 수 있었다. 내가 말을 잘 못하는 것을 본 친구가 대신 눈치를 채고 대신 선생님께 보건실에 데려다주겠다고 말했다. 그 친구는 내가 몸이 아닌 마음이 아팠던 것을 알기에 상담실로 날 데려갔지만 문제는 거기서도 난 말을 못했다. 그리고 점점 심해지는 과호흡증상 때문에 손발 감각이 무뎌지기 시작한 나는 공포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상담사 선생님은 그런 내 상태를 보고 보건실로 날 데려갔다. 안정제를 처방 받은 후 학교를 다니며 3년에 한 번 누워볼까했던 보건실 침대에 누웠다. 약을 먹은 후에도 난 진정이 되지 않았고 계속해서 무뎌져가는 손발 감각에 이러다 손을 잃게 되는 것은 아닌가하여 더 공포에 떨었다. 취미를 위해서도 앞으로 꿈꾸고 있던 직업을 위해서도 나에게 가장 소중한 손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나를 더 미치게 만들었다. 나에게 그건 죽는 것보다 두려운 일이었다. 미친듯이 흐르는 눈물과 여러 생각들이 교차하면서 엉망진창인 머릿속, 잘 움직여지지않는 손가락을 보며 나는 패닉에 빠졌고, 이는 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었다. 보건선생님은 그런 날 보면서 진정하지 못하면 정말 큰 일이 날 수 있다고 하시면서 나에게 최대한 생각을 하지말라고 하시고 페이퍼백을 해주셨다. 처음엔 효과가 미미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아주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도 다시 불안해질려고 하면 과호흡증상이 돌아오곤해서 이를 반복했다. 그러다 점차 주기가 길어지고 증상이 완화되자 손의 감각도 돌아오기 시작했고 이후엔 불안감도 많이 줄어들어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내가 안정을 찾았다는 말을 들으신 담임 선생님은 수업을 하시다가 뛰어나오셨는지 조금 숨을 가쁘게 쉬고 계셨는데 솔직히 감동했었다. 내가 심각했을 때도 오셨던 것 같은데 그땐 정신이 없어서 잘 기억은 나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은 나의 상태를 물어보시고 조퇴를 할 것을 추천해주셨다. 하지만 나는 생기부에 기록이 남은 것을 우려해 처음엔 거절했다. 그러나 이제 정규수업이 끝나는 시간이라 조퇴기록으로 남지 않는다며 담임 선생님은 나에게 부모님께 연락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권했고 나는 이에 응했다. 솔직히 휴대폰을 받고 부모님께 이 상황을 어떻게 알려줘야할지 입이 열리지 않았지만 이는 보건선생님이 대신 말해주셔서 괜찮았다. 이후 부모님이 차를 끌고 오셨고, 나는 담임 선생님과 보건 선생님의 보호를 받으며 부모님차에 올랐다. 일을 하시다 급하게 달려나오신 아버지는 의외로 침착하게 나를 병원으로 데려가셨다. 거기서 나는 의사선생님께 간단한 상황을 설명하고 1주일 정도의 안정제를 처방받았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나는 숙제와 공부할 거리들을 학교에서 챙겨와야한다고 아버지께 이야기했고 아버지는 다시 학교로 날 데려다주셨다. 학교 앞에서 우선 담임 선생님께 연락을 드리고 나는 담임 선생님과 함께 3학년 층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복도로 발을 옮기는 순간 불행하게도 멀리서 학년부장 선생님이 날 보고 반갑다는듯이 뛰어왔다. 그리곤 나에게 다짜고짜 사과를 하실려고 했다. 그분을 보자마자 나는 다시 호흡이 불안정해지고 이를 눈치챈 담임 선생님이 그분을 저지하셨다. 나는 빨리 숨을 수 있는 다른 방으로 도망쳤다. 그곳에서 나는 혼자 진정하고자 최대한 노력했고 어느정도 다시 숨이 돌아올쯤 담임 선생님이 나의 짐을 챙겨오셨다. 나는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학교를 빠져나오려고 하는 도중 같은 반 친한 친구와 만났다. 그 친구는 점심때 일은 알지만 내가 과호흡증 때문에 보건실에 갔다는 사실은 아직 못들은 듯 했다. 친구는 나에게 몸은 괜찮냐고 물어보면서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냐고 물었다. 나는 최대한 웃으며 '솔직히 괜찮지는 않아. 그래서 오늘은 이제 집에 가려고'라고 대답했다. 살면서 안괜찮다는 말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꽤나 오랜 친구였던 그 친구도 그걸 아는지 표정이 싹 바뀌었다. 나는 다시 그분과 마주칠까 두려워 그 이상의 이야기는 하지않고 빨리 학교를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간 나는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워서도 혼자 펑펑 울었다. 울다가도 다시 숨이 안쉬어져 진정하려하다가도 또 울었다. 그러다가 겨우 잠이 들었고 11시쯤에 잠시 눈을 떴다. 직장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굉장히 속상해하면서 울고 계셨고 또 그걸 보고난 나는 같이 울었다. 너무 죄송했다. 내가 너무 약해빠져서. 그렇게 둘이서 한참을 울고나서 나도 어머니도 조금 감정을 추스렸다. 그리곤 이제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할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심하게 대한 선생님이 미웠지만 이것보다는 이런 스트레스 하나도 제대로 견뎌내지 못하는 내가 더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그분에게 책임을 묻기보다는 내적으로 내가 더 강인해질 방법을 찾고싶다고 이야기 했다. 부모님은 여기에 동의했고 우선 그분을 두려워하는 지금 내 마음을 최대한 가라앉힐 방법에 대해 함께 고민해주셨다.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에 추가로 올리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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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가 달렸어요.
커피콩_레벨_아이콘
123AU4
· 5년 전
지금은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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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cat3 (글쓴이)
· 5년 전
@123AU4 네 :)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